“계약금이라도 받으면 다행”
가계약금은 계약금 일부로 볼 때 배액배상 가능
[헤럴드경제=박자연 기자] 전세 세입자들이 계약을 파기당하고도 제대로 배상받지 못하는 경우가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배액배상은 언감생심이고, 이미 지불한 계약금을 돌려받기 위한 과정도 지난하기 때문에 세입자들만 가슴앓이를 하는 모양새다.
민법 565조에 따르면 매매의 당사자가 계약 당시에 금전 기타 물건을 계약금, 보증금 등의 명목으로 상대방에게 교부한 때에 그 행위가 이뤄지지 않으면 수령자는 그 배액을 상환해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이 법을 전세에 적용하면 전세를 주려는 집주인에 의해 계약이 파기될 경우 계약금의 두 배(배액배상)를 돌려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집주인 잘못으로 전세계약이 어그러진 상황에서 계약금을 배액배상하지 않는 경우도 상당수다. 특히 전세의 경우 이전 집 이사와 맞물려 있는 경우가 많고, 계약금도 매매에 비해 소액인 편이라 집주인의 '계약금만 받으면 바로 돌려주겠다’는 제안에 세입자 대다수가 응하는 것이다.
최근 전셋집 입주를 앞둔 A씨도 이사 직전 집주인한테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당했으나 계약금만 돌려받았다. A씨는 “짐까지 다 싸뒀는데 갑자기 계약을 못하겠다고 하니 청천벽력이었다”며 “집주인에 배액배상을 요구했지만 민사소송까지 가야 한다고 하고, 당장 이사를 위해 계약금이 필요해 배액이 아닌 그냥 원금만 받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세입자 B씨도 "대출 문제로 집주인에게 서류를 요구했는데 이럴 거면 계약하지 말자고 하더라”면서 “선심 쓰듯이 계약금만 돌려주겠다고 하는데, 당장 계약금을 받아 다른 집을 구해야 해서 배액배상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고 토로했다.
최근 서울을 중심으로 아파트 전세 가격이 오름세를 보이면서 전세금을 올려받기 위해 계약을 파기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세입자 C씨는 “이중으로 가계약금을 받고, 전세금을 더 많이 주는 쪽으로 집주인이 계약하려고 하더라”면서 “배액배상 요건에 해당하지만 시간이 소요될 것 같아 입금한 가계약금만 돌려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계약금 배액배상을 받기 위해서는 소송이 유일한 방법이다. 가계약금은 배액배상 가능 여부가 가계약금을 어떻게 규정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본질적으로 계약금과 법적 성질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별도의 특약이 없다면 가계약금은 일종의 증거금의 성질을 지녀 매도인(집주인)과 매수인(임차인)이 일방적인 계약 파기를 해도 가계약금을 반환해야 한다. 다만 협의 또는 계약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공인중개사가 가계약금 배액 상환을 언급하고, 이에 거래당사자들이 동의했다면 가계약금 역시 계약금의 일부로 취급되므로 법정에서 배액배상을 따져볼 수 있다.
엄정숙 부동산전문변호사는 “집주인이 계약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민사소송 말고는 배액배상을 받을 방법이 없다”면서 “가계약금은 본계약금의 일부로 봤을 때만 배상받을 수 있어, 이 부분을 확실히 하고 계약을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