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떡볶이 배달용기로 만든 비누라니”
배달용 그릇, 비닐봉투, 병뚜껑까지. 골칫덩이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이 개발됐다. 플라스틱에 열을 가해 비누나 세제로 만드는 기술이다.
기존 재활용 방법보다 훨씬 간단하고 경제성도 뛰어나다는 점에 주목받고 있다.
미국 버지니아 공대 연구진은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E) 등 플라스틱을 계면활성제로 활용할 수 있는 화합물질로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지난 10일(현지시간)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에 같은 날에 게재됐다.
PP와 PE는 플라스틱의 일종으로 일상에서 널리 쓰인다. PE는 방수, 보온성이 뛰어나 일회용 포장 용기로 주로 쓰이고 PE는 투명하고 견고해 비닐 봉투나 마스크 등에 활용된다.
이 두 가지 재질의 플라스틱은 국내 플라스틱 중 절반 이상일 정도로 흔한 소재다. 국내 전체 플라스틱 생산량(2016년 기준) 중 PP가 26.5%, PE가 31.8%가 차지한다. 그만큼 PP와 PE 쓰레기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가 늘어나고 환경오염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면서 재활용 플라스틱 수요도 커졌지만 그동안 기술이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플라스틱은 여러 고분자 물질로 구성돼 있어 이를 분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현재는 폐플라스틱 재활용 중에서 식음료용 페트병(PET)을 잘게 분쇄해서 다시 페트로 만드는 방식 정도가 국내에 상용화돼 있다.
이번 연구는 재활용 방법이 매우 간단하다는 점에서 주목 받고 있다. 기존에 값비싼 촉매를 넣거나 까다로운 화학반응을 일으켜야 했다면, 이번 연구는 플라스틱을 가열하는 수준이다.
연구진은 플라스틱과 비누의 화학 구조가 유사하다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플라스틱의 한 종류인 PE와 비누 등을 만드는 지방산은 모두 긴 탄소 사슬로 구성돼 있다. 차이는 지방산이 탄소 사슬 끝에 원자가 좀 더 있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PE를 가열해 지방산과 유사한 구조로 만들고 몇 가지 과정을 더 거쳐 세계 최초의 플라스틱 비누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새로운 촉매나 복잡한 절차를 사용하지 않고 플라스틱 재활용을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며 “플라스틱 재활용의 잠재력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의 또다른 성과는 플라스틱 재질을 분리하지 않아도 재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같은 원리로 PE뿐 아니라 PP도 비누를 만들 수 있고, 두 재질을 동시에 사용할 수도 있다. 버지니아공대는 “(재활용 과정에서) 오염되지 않도록 플라스틱을 신중하게 분류해야 하는 다른 재활용 방법에 비해 큰 이점”이라고 설명했다.
상용화 가능성도 크다. 비누나 세제의 가격이 플라스틱보다 비싸기 때문이다. 현재 비누나 세제의 가격은 t당 470만원(3550달러)으로 PE 가격(152만원·1550달러)의 3배 수준이다. 플라스틱 재활용 비누가 새 비누에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지 않는다.
이들은 “정교한 공정이나 복잡한 촉매가 필요 없는 단순한 공정으로 전세계 국가들이 (플라스틱 재활용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며 “플라스틱 쓰레기와의 전쟁을 위한 좋은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