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경남 하동군 쌍계사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사찰은 불교의 공간이면서, 우리 역사와 예술의 유산입니다. 명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사찰들은 지역사회의 소중한 관광자원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얻고자 할 때 우리는 산에 오르고 절을 찾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빼어난 아름다움과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 100곳을 소개하는 ‘내 마음대로 사찰 여행 비경 100선’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사찰기행 100선의 반환점, 50번째는 어떤 절을 갈까 고심했다. 유네스코 지정유산 산지 승원 중에서 아직 가보지 못한 ‘안동 봉정사’가 마음에 와 있었다. 하지만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발길 닿는 대로 갔던 것처럼 이번엔 ‘최치원’이란 이름 석 자의 흔적 때문에 하동 쌍계사에 발길이 머물렀다.
고운(孤雲) 최치원(857~908년)은 경주 최씨의 시조다. 당나라 과거에 장원 급제해 당나라 관료생활도 했고, 신라에 와서는 유명한 문장가이며 대학자로서 이름을 날렸다. 멸망의 길로 가는 신라를 위해 왕에게 ‘시무10조’라는 개혁안을 올리기도 했다. 말년에 진골 귀족들의 득세로 난세에 처한 현실을 비관하고 지리산 쌍계사 등을 돌아다니며 은거하다 가야산 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쳤다. 최치원은 왕명에 의해 887년 쌍계사의 ‘진각선사 대공탑비(국보)’를 짓기도 했다. 쌍계사의 아름다움을 화개동천(花開洞天)이라는 시로 표현함으로써 쌍계사는 ‘호리병속의 별천지’라는 별칭을 얻었다.
“우리나라 화개동은 항아리 속 별천지라네 선인이 옥베개를 밀치니 몸과 세상이 어느새 천년일세. 골짜기마다 물소리 우레 같고 봉우리마다 초목은 비에 새로워라 산속 스님은 세월을 잊고서 나뭇잎으로만 봄을 기억하네.”
쌍계사 초입, 정확히 말하면 쌍계사 일주문으로부터 400m 아래쪽 식당가 깊숙한 안쪽 계곡 옆에 수문장처럼 큰 바위 두 개가 길을 두고 양 옆으로 서있다. 한쪽바위엔 ‘쌍계’ 다른 쪽 바위엔 ‘석문’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예전엔 쌍계사 산문 역할을 한듯한데 옆으로 새 길이 나면서 숨겨져 버렸다. ‘쌍계 석문’ 도 최치원이 새긴 것이다.
경상도와 전라도가 만나는 화개장터에서 지리산 자락 오르는 길 화개천을 사이에 두고 화개로와 쌍계로가 있다. 심은 지 40~50년 수령의 굵은 벚나무가 가지를 길게 뻗어 터널을 만들면서 두 길은 쌍계사로 향한다. 봄이면 하동 십리 벚꽃 길을 형성하는데 편도 6㎞ 쌍계사를 돌아 나오면 12㎞가 된다. 봄이 되면 쌍계사는 벚꽃에 묻히고 섬진강도 꽃잎으로 덮혀 봄 벚꽃으로 워낙 많이 알려졌지만 지리산 가을 단풍도 비교불가의 멋스러움이 있다. 11월에 들어섰는데도 지리산 자락에는 아직 단풍소식이 없다.
육조혜능대사와 진감국사
대웅전 아래엔 최치원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쓴 쌍계사의 유일한 국보 ‘진감선사대공탑비’가 있는데 우리나라 4대 금석문(金石文) 가운데 으뜸으로 꼽힌다. 885년 헌강왕이 입적한 혜소(慧昭)에게 진감(眞鑑)이라는 시호와 대공영탑(大空靈塔)이라는 탑호를 내려줘 탑비를 세우도록 해 887년에 완성됐다. 탑비는 특이하게도 대웅전이 아닌 금당 쪽을 바라보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바닥돌만 남기고 보수 때문에 비문은 옮겨져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쌍계사는 개산(산문을 열다)과 창건으로 구분하는데 통일신라 723년에 의상대사의 제자 삼법(三法)화상과 대비(大悲)화상이 개산했다. 삼법화상이 당나라로 가서 대비화상을 만나 중국 선종의 육조(六祖) 혜능대사의 정상(頂相, 두상)을 돈을 주고 취해 귀국했다.
영묘사에 모시고 공양하던 중 “삼신산(三神山) 눈 쌓인 계곡 위 칡꽃이 피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속 계시를 받고 한라산·금강산 등에서 찾지 못하고 지리산에 오자 호랑이가 길을 안내해 지금의 쌍계사 금당(金堂) 자리에 이르렀다. 그곳이 꿈에 계시한 자리임을 깨닫고 혜능의 머리를 평장(平葬)한 뒤 이곳에서 수행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금당은 현재의 육조정상탑전(六祖頂相塔殿)이며 혜능의 정상은 지금도 이 자리에 있다고 한다. 예부터 금강산을 봉래산, 한라산을 영주산, 지리산을 방장산(⽅丈⼭)이라 하여 삼신산(三神⼭)이라 불렀고 쌍계사는 삼신산의 하나인 지리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창건은 통일신라 840년에 진감혜소(眞鑑慧昭, 774~850) 선사가 당나라 육조혜능조사의 선법을 잇고 귀국해, 육조혜능조사의 정상(머리)을 봉안한 곳에 영당(影堂)을 짓고 절을 확장해 옥천사(⽟泉寺)라 했다. 진감선사는 당나라에서 불교 음악인 범패를 도입해 이곳에서 선(禪)과 불교음악인 범패(梵唄)를 가르치기도 했으며 쌍계사에서 입적했다.
그 후 헌강왕(獻康王)은 이웃 고을 고성에 또 다른 옥천사가 있어 사람들이 미혹할까 염려해 산문 밖에 두 시냇물이 마주 대하고 있어 ‘쌍계사(雙磎寺)’라는 제액을 내려줬다. 쌍계사보다 먼저 670년 의상이 창건했다는 고성 옥천사(玉泉寺)는 지금 쌍계사의 말사로 존속하고 있다. 그 후 두 차례 화재로 절이 불탔으나 1632년에 벽암 각성(碧巖 覺性)을 비롯한 여러 승려들에 의해 복구됐고 1975년 고산대선사에 의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금당 내부에는 7층 석탑이 있고 그 밑에 혜능의 정상(머리)이 봉안돼 있다고 해 육조(혜능)의 정상이 있는 탑의 건물, 즉 육조정상탑전(六祖頂相塔殿)이라 한다. 최초 삼법이 혜능의 정상을 가져왔을 때에는 감실(龕室)을 만들어 땅 밑에 묻었고 나중에 진감선사가 그 위에 보호각을 지었다. 1800년대 인근 다른 절에서 탑을 옮겨와 감실 위에 올렸다.
금당 가는 길목 오른쪽 산길로 300m 정도 올라가면 삼거리를 만난다. 우측으로 2㎞ 가면 불일폭포, 좌측으로 300m는 국사암(國師庵)이다. 국사암 입구에는 진감국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가 느릅나무가 돼 1200여년동안 사천왕수(四天王樹)란 이름으로 국사암을 지키고 있다.
국사암 뒤 산언덕 녹차밭에서 일하는 노승의 모습이 햇살에 눈부시게 빛난다. 진감선사가 함께 만들었다는 불일암(佛日庵)은 청학동 불일평원을 지나 불일폭포 인근에 있다.
문화재의 보고, 지리산 쌍계사
쌍계사(雙磎寺)는 경남 하동군 화개면 지리산 명선봉과 삼신봉 남쪽 자락 비탈진 산지에 자리잡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이다. 국사암, 불일암, 도원암, 덕봉암, 응봉암 등 산내암자가 있고, 그 외에도 공부하며 농사짓고 사는 스님들이 죽기 전에는 나오지 말라는 ‘사관원’도 상·하 두 곳이 있다.
쌍계사는 ‘호리병 속의 별천지’라 했고, 그 옛날 이상세계를 꿈꿨던 사람들이 그 실현을 위해 살았던 곳을 ‘청학동’이라 했는데, 청학동은 쌍계사 바로 위 불일폭포 가는 길목 불일평전에 있고 그 곳에 불일산방도 있다.
오랜 역사가 증명하듯 일주문부터 대웅전까지 많은 문화재가 곳곳에 산재해 있어 국보 1점, 보물 13점등 국가 문화재와 수십 점의 지방문화재가 있다. 쌍계사와 주변 일대 자연 경관은 아름다움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리산 쌍계사와 불일폭포 일원’이란 명칭으로 대한민국 명승으로 지정돼 있다.
쌍계사는 호리병 입구에 해당하는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을 지나면 넓은 마당이 있는 팔영루를 거쳐 호리병 바닥에 해당하는 대웅전이 중심 영역이다. 좌측편 계곡 넘어 스님들의 수행공간과 청학루·팔상전·육조혜능조사의 정상(두상)을 모신 금당으로 이어지는 금당 영역이 있다. 우측 계곡의 해탈교를 넘으면 최근에 만들어진 대불과 문화예술관(템플스테이)이 별도로 자리하고 있다.
쌍계사는 이름처럼 양쪽 계곡을 경계로 세 영역으로 나뉘는데 중심영역은 두 계곡을 끼고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산지 가람이 형성돼 있다. 좌측 금당영역은 산자락 계단을 통해 상·중·하단 형식으로 배치돼 있고 우측은 현대식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쌍계사는 계곡 사이에 낀 좁은 공간임에도 총림의 역할을 했던 큰 사찰이다 보니 절간 건물들이 오밀조밀 붙은 모양새다.
1697년에 건립된 대웅전 법당에는 석가모니 불도와 좌우에 약사불도, 아미타불도를 배치한 삼세불(三世佛) 탱화가 걸려 있다. 대형불화 앞에는 3불 4보살이 모셔져 있는데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이라고 한다. 대웅전, 대형불화, 3불4보살 모두 보물이다.
금당 올라가는 길목 팔상전에도 영산회상도와 팔상탱 등 보물 2점이 있고, 창건설화에서 유래된 ‘삼신산 쌍계사’ 현판이 붙은 일주문도 보물인데 공사 중이라 출입은 막혀있다.
적묵당(寂默堂)도 보물이었으나 1968년 화재로 전소돼 지정 해제됐고 문화재가 아니어서 의아한 것들도 있다.
팔영루 앞 월정사의 석탑 모양의 9층 석탑이 옥개석 귀퉁이마다 풍경을 달고 웅장하게 있다. 대웅전 뒤에는 통도사의 것과 같은 금강계단이 있는데, 최근에 만들어지고 조성된 것이다.
선종과 쌍계명차, 불교음악 범패의 성지
쌍계사는 남종선의 육조혜능대사의 정상(두상)을 모심으로 해서 선수행의 근본도량, 한국불교 선종의 정통 법맥을 이어오고 있다. 금당 좌우편에 13평 규모의 스님들이 모여 참선 공부하는 작은 선방 서방장(西方丈)과 동방장(東方丈)이 있다. 이곳은 수많은 고승들을 배출한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쌍계사는 지난해까지 선원, 강원, 율원을 모두 갖춘 쌍계 총림(叢林)이었으나 방장 스님이 입적한 이후 새 방장을 임명하지 않아 지정 해제됐다. 이로서 조계종 8대 총림은 백양사, 쌍계사가 총림 해제돼 해인사, 송광사, 통도사, 수덕사, 동화사, 범어사 등 6대 총림으로 줄었다.
총림은 승속(僧俗)이 한 곳에 머무름이 마치 수목이 우거진 숲과 같다고 해 붙여진 이름인데 종합수행도량으로서 총림이 되기 위해서는 스님들의 참선 수행 전문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 염불 수행을 전문적으로 전수하는 염불원(念佛院)을 모두 갖춰야 한다.
쌍계사 팔영루(八詠樓)는 진감선사가 중국에서 불교음악을 들여와 섬진강에서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우리문화에 걸맞은 8음률의 ‘범패’라는 불교음악을 작곡한 곳이다. 쌍계사를 불교음악의 성지라고 부르는 이유이며, 팔영루는 범패의 명인들을 교육했던 장소였다.
쌍계사는 차와도 인연이 깊다. 통일신라 828년에 김대렴(金大簾)이 당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차의 종자를 가져와 왕명으로 차나무를 지리산 화개 일대에 심어 쌍계사 계곡 아래가 우리나라 최초의 차시배지(茶始培地)가 됐다.
그 후 쌍계사를 창건한 진감선사가 차나무 재배 면적을 늘리고 화개골 일대에 번식시켜 다도의 시작이 됐다. 이곳은 1200년 된 차나무 서식지다. 쌍계사는 진감선사와 초의선사의 다맥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매년 차와 관련된 법회를 열고 있다.
초의선사가 대흥사에 머물 때 추사 김정희에게 좋은 차를 보내주고 추사는 글씨를 써줬다고 한다. 쌍계사에도 당시 금당에 기거했던 만허스님이 보낸 쌍계명차에 대한 답례로 추사 김정희가 글씨를 써줬다.
쌍계사 금당 좌우에 걸린 편액 ‘세계일화 조종육엽(世界一花 祖宗六葉)’, ‘육조정상탑(六祖頂相塔殿)’이 추사의 작품이다. 세계일화 조종육엽은 부처님(世界)의 근본원리(一花)가 달마대사에서 육조 혜능까지 6명의 조사(六葉)로 이어져 온다는 뜻이다.
쌍계사에도 팔경이 있다. 주로 청학동, 불일폭포, 단풍숲, 아침과 저녁에 비오고 달뜨고 운무에 쌓인 지리산 자락의 아름다운 경치를 이야기한다. 지금쯤 지리산 단풍이 붉게 물들고 아침 운무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낼 것이다.
글·사진 = 정용식 ㈜헤럴드 상무
정리 = 민상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