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은행에서 돈을 빌린 사람들의 이자 부담이 약 10년 3개월 만에 최고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상반기 중 전반적인 감소세를 나타낸 신규 대출금리와는 별개로, 금리 갱신 주기를 맞은 기존 대출의 이자가 불어난 영향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락하던 대출금리는 다시 상승하고 있다. 정점을 찍고 하락할 것이라 예견됐던 기준금리의 향방도 불투명해졌다. ‘빚과의 사투’를 꽤 긴 시간 이어갈 수 있다는 다소 어두운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올해 신규 대출금리 줄었지만…진짜 ‘이자 부담’은 늘어났다
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국내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금리(잔액 기준)는 5.06%로 전월(5.04%)과 비교해 0.02%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3년 2월(5.08%) 이후 약 10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잔액 기준 금리는 차주들이 현재 감당하고 있는 은행 대출 잔액의 평균 이자 수준을 의미한다. 국내은행에서 돈을 빌린 가구의 이자 부담이 약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얘기다.
은행권의 신규취급액 기준 대출금리는 올해 들어 등락을 반복했다. 기준금리 상승과는 별개로 금융당국의 압박이나 자금조달 비용 변화 등에 따라 매월 금리 수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은행권 신규취급액 기준 가계대출 금리는 ▷1월 5.47% ▷2월 5.22% ▷3월 4.96% ▷4월 4.82% ▷5월 4.83% 등으로 집계됐다. 최근 금리가 소폭 오르기는 했지만, 전반적인 금리 수준은 낮아졌다.
그러나 잔액 기준 가계대출 금리는 ▷1월 4.84% ▷2월 4.95% ▷3월 5.01% ▷4월 5.04% ▷5월 5.06% 등으로 갈수록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상승 속도만 다소 줄었다. 은행권의 신규 대출금리가 내렸다고는 하지만, 기존에 대출을 받은 차주들의 이자 부담은 오히려 늘어난 셈이다.
이같은 상반된 움직임에는 변동금리 비중이 높은 대출 시스템의 영향이 크다. 예컨대 1년 주기로 금리가 변동되는 경우 현재 갱신 주기를 맞더라도 금리 인하를 체감하기 힘들다. 지난해 기준금리 인상이 본격화되며, 워낙 빠른 속도로 대출금리가 올랐기 때문이다. 2022년 5월 말 은행권 신규 가계대출 금리(4.14%)는 올해 5월 말(4.83%)과 비교해 0.7%가량 낮았다.
심지어 3~5년간 고정 후 변동금리로 전환되는 주택담보대출 ‘혼합형 금리’ 차주들이 현재 갱신 주기를 맞는다면, 2%포인트 넘는 금리 인상을 경험할 수 있다. 불과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기준금리가 2% 미만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직 기존 채무의 금리 인상을 체감하지 못한 차주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이자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가계대출 고정금리 비중이 70%를 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출금리 하락에도 ‘급제동’…“현재 이자 수준 지속될 수 있어”
물론 은행권의 금리 인하가 계속될 경우 누적된 이자 부담도 시차를 두고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잔액 기준 가계대출 금리의 상승폭 또한 ▷2월 0.11%포인트 ▷3월 0.6%포인트 ▷4월 0.03%포인트 ▷5월 0.02%포인트 등으로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다. 올해부터 금융당국 주도하에 시행된 은행권의 금리 인하가 일정부분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당분간 가시적인 이자 부담 감소는 어려울 전망이다. 은행권 대출금리가 다시금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의 주요 자금조달 수단인 은행채 금리가 오른 영향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은행채(AAA, 5년) 금리는 이날 기준 4.256%로 한 달 전인 6월 2일(4.038%)과 비교해 약 0.218%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5월말까지만 해도 하단이 3%대로 내려갔던 주요 시중은행의 주담대 금리는 현재 하단 4%대를 회복한 상태다. 하반기 은행채 만기도래 물량도 적지 않아, 발행량 증가로 인한 금리 상승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뿐만이 아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 정점을 찍고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에도 힘이 빠지고 있다. 최근 기준금리를 동결한 미 연준이 연내 기준금리를 2차례 더 올린다는 방침을 내놨기 때문이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결정될 경우, 한국 또한 기준금리 인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미 금리차 확대로 인한 환율 변동 등 부작용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재의 ‘고금리’ 수준이 꽤 오랜 시간 지속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리 인상이 코로나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라는 얘기도 있었지만, 현재는 공급망 재편 등 비용 상승 요인이 분명한 상황”이라며 “다시 초저금리 시대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으며 현재의 금리 부담이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차주들도 저금리로 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