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버섯으로 만든 식물성 치킨, 콩단백과 채소로 만든 참치맛 수산물, 일제시대에 자취를 감춘 토종 벼를 되살려 만든 국내 쌀, 유기농 농법으로 재배한 포도를 자연 발효시켜 만든 내추럴 와인….
1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SIBF)’. 출판사 부스만 가득해야 할 것 같은 공간에 출판과는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10개의 F&B(식음료) 부스가 들어섰다. 미식의 영역까지도 기후 관점으로 바라보는 ‘기후미식’ 특별코너다.
그래도팜, 꿀건달, 머곰양조장, 우보농장, 핑크김치 등 인위적인 손길을 덜어내고 자연 그대로의 방법으로 먹거리를 만드는 브랜드부터, 문사기름집, 빛쌀, 아워플래닛, 언피스크109, 위미트 등 지구의 선순환을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브랜드까지 다양한 식음료 부스가 특별코너에 참여했다. 참여 브랜드의 가치관이 반영된 상품이 전시됐다. 일부 상품은 현장에서 구매·시식이 가능했다.
‘북흑조’, ‘멧돼지찰’, ‘졸장벼’, ‘아롱벼’ 등 우리 쌀을 생산하는 우보농장의 이근이 대표는 이날 헤럴드경제와 만나 “지금 시중에 판매되는 쌀은 대개 일본 품종을 개량한 것”이라며 “우리 쌀의 근본을 찾고 맛의 다양성을 되찾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7월 중 토종 쌀로 만든 100% 국내산 막걸리도 출시할 계획이다.
실제로 1910년만 해도 한반도에서는 토종 벼 1500여 종이 자랐다. 하지만 일제가 쌀 수탈을 위해 다수확 품종을 강요하면서 해방될 무렵엔 토종 쌀이 450여 종으로 줄었고, 이후 정부가 ‘통일 벼’를 개발하면서 우리 쌀은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됐다. 이 대표는 “다양한 맛의 우리 쌀이 늘어나면 막걸리처럼 쌀을 사용하는 한국 음식 문화도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출판사가 아닌 건강한 식생활을 제안하는 식음료 브랜드가 왜 도서전에 부스를 열게 됐을까. 출판과 식품이 완전히 다른 카테고리의 업종인데도 말이다. 사실 한꺼풀 벗겨서 본질로 들어가면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둘은 닮아 있다. 부스에서도 상품 그 자체보다 지속 가능한 상품이 나오게 된 배경을 전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상품성’이 아닌 ‘진정성’을 키워드로 브랜드 서사를 구축하는 광경이었다.
예를 들어 식물의 기름으로 버터를 출시한 문사기름집은 ‘삶의 태도로서’ 비건을 지향하는 이유를 전했다. 깨끗하게 길러진 과실, 천연 효모, 자연 발효, 순환 양조를 지향하는 머곰양조장은 행복하게 마실 수 있는 ‘술 한 모금의 가치’를 설명했다. 30여 개의 다양한 품종의 토마토를 재배하는 그래도팜은 40년 넘게 유기농을 고집하며 ‘건강한 땅을 지키는’ 실천에 대해 말했다.
이 같은 태도는 차별성을 우선순위로 두고 이색적인 상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는 최근 식품시장의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다. 식품시장이 다변화되면서 소비자의 입맛도 세분화됐다. 남들과 다른 유일무이한 미식을 경험하는 식문화 확산도 덩달아 중요해진 이유다. 이렇다 보니 브랜드 속내에 담긴 의미까지 속속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는 방식으로 식음료 브랜딩이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