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츠그룹·베인앤컴퍼니·캡비전 등 연이은 수사
中 정부, 스파이방지법 통해 외국기업 단속 강화
“이메일 단순 공유만으로도 스파이 혐의 받을수도”
세쿼이아·MS 등 정치적 리스크 피해 탈중국도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견제 와중에도 중국 사업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강조하던 미국 기업들이 고민에 빠졌다. 중국 정부가 외국 기업을 잠재적인 스파이로 간주하고 감시를 강화하면서 정상적인 영업행위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최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2년 만에 베이징을 방문해 친강 중국 외교부장을 만난 데 이어 미국 최대 투자은행 JP모건 체이스가 상하이에서 전세계 2500개의 고객사를 대상으로 컨퍼런스를 주최하는 등 중국 사업에 대한 의지를 밝힌 미국 기업이 늘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류허 전 국무원 부총리가 지난 3월 다포스 포럼에서 “중국이 다시 돌아왔다”고 선언한 이후 나온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의 기업들은 여전히 중국 내에서 정치적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오히려 코로나19 이전보다 불확실성은 더욱 높아졌다는 우려도 나오는 형편이다.
지난 4월 중국 정부는 스파이 방지법(방첩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처벌 받는 기밀의 범위에 ‘‘타 국가 안보·이익과 관련된 문건, 데이터, 자료, 물품’을 포함시켜 외국기업에 대해 스파이 행위 단속을 강화했다. 개정안은 7월 1일부터 시행된다. 또한 중국 정부는 국가데이터국을 신설하고 데이터에 대한 국가 통제력을 강화했다.
기밀에 대한 정의가 보다 포괄적이고 광범위해지면서 외국 기업이 스파이 혐의로 중국에서 처벌받을 가능성에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 도입한 법률은 해석에 따라 개인 정보로 간주되는 이메일을 해외 사용자와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해외 기업인을 처벌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개정안이 시행되기도 전에 미국 기업을 포함한 다수의 해외 기업들에 대한 중국 당국의 감시와 수사는 강화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미국의 기업 실사 업체인 민츠그룹 현지 직원이 데이터 보안 수칙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4월에는 컨설팅 업체 베인앤컴퍼니 역시 유사한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외국기업에 대한 적대적 태도는 지난달 다국적 리서치 업체인 캡비전에 대한 수사에서 정점에 달했다. 여러 중국 관영매체들이 캡비전 사무실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 영상을 생중계 한 것이다. 경찰은 회사 서버와 서류를 압수하고 직원들의 개인 컴퓨터까지 확인했다.
중국 정부의 수사가 이어지자 수사 대상이 된 민츠그룹과 캡비전 등은 중국의 국가 안보 규정과 법률을 준수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다짐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들 기업이 정확히 어떤 행위로 어느 법 규정을 위반했는지 구체적인 정보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 강제 노동에 대한 미국 정부의 수사나 반도체 수출통제와 관련됐다는 소문이 무성하지만 명확성의 결여가 상황을 더욱 공포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해외 기업의 중국 사업과 투자에 도움을 주는 중국 내 데이터 업체나 컨설턴트, 변호사 및 고문들도 제재 대상에 올랐다. 글로벌 은행들과 거래를 해온 중국 데이터 회사인 인포메이션과 치차차는 중국 당국으로부터 보안 수칙을 위반할 수 있다는 이유로 외국인에게 일부 서비스 제공을 중단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리서치 업체 캐피털이코노믹스의 마크 윌리엄스 애널리스트는 “중국과 서방 간의 갈등이 보다 심화될 경우 서방 기업들의 자금이나 자산이 압류되거나 동결될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 내 정치적 리스크를 우려해 중국 사업을 분리하거나 아예 인력을 철수하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지난 10일 실리콘 밸리 최대 벤처캐피털로 불리는 세쿼이아 캐피털은 중국 사업 부문을 별도 법인으로 분리하기로 했다. 세쿼이아는 중국 배달앱 메이퇀, 전자상거래 업체 핀둬둬의 초기 투자를 단행했고 틱톡 모회사 바이트댄스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세쿼이아는 투자자들에게 “글로벌 투자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것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비즈니스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플랫폼 링크드인의 중국 내 인력 700명을 감축하고 사실상 중국 사업을 접었다.
니컬러스 번스 주중 미국대사는 최근 워싱턴DC에서 열린 ‘글로벌 임팩트 포럼’에서 미국 기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수사와 관련해 “다른 국가의 기업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며 “이는 분명 잘못된 정치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미중이 경쟁하는 동안에도 그 경쟁에 한계를 두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며 경쟁은 항상 평화로워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