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이라도 금리 높을 때…” 기피대상이던 회사채 장기물에 돈 몰린다 [투자360]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가 일대.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권제인 기자] 경기 침체 우려로 투자 기피 대상으로 여겨졌던 회사채 장기물에 돈이 몰리고 있다. SK이노베이션 등 일부 회사는 시장 평가보다 낮은 금리로 회사채를 발행하며 수요예측 흥행에 성공했다. 증권가에서는 최근 글로벌 긴축정책이 막바지에 접어들자 장기채의 금리 매력이 부각된 것으로 보고 있다.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SK이노베이션(AA)은 3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한 수요예측에 총 1조7300억원의 자금이 몰려 흥행에 성공했다. 3·5·7·10년물로 모집했는데 발행금리가 민평금리보다 각각 -3bp(1bp=0.01%포인트), -9bp, -11bp, -21bp 수준에서 결정됐다. 민평금리는 민간 신용평가사들이 평가한 그 기업의 고유 금리다. 발행금리가 민평금리보다 낮다는 건 시장이 평가했던 것보다 비싼 값에 회사채가 팔렸다는 뜻이다. 특히 장기물에서 강세가 두드러졌다.

최근 수요예측에 성공한 다른 기업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포스코퓨처엠(AA-)은 15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에 총 1조600억원의 뭉칫돈이 들어오며 수요예측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3·5년물의 발행금리가 민평금리 대비 각각 -9bp, -21bp 수준으로 결정됐다. HL만도(AA-)도 1500억원 모집에 1조5000억원에 가까운 자금이 몰리면서 증액 발행에 성공했다. 3·5년물의 발행금리가 각각 민평금리 대비 각각 -4bp, -21bp로 책정됐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만기가 긴 회사채에 대한 투자 수요는 많지 않았다. 경기침체 우려 속에 기업 재무건전성에 대한 확신이 떨어진 투자자들이 불확실성이 큰 장기물은 선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을 필두로 한 글로벌 긴축정책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는 전망이 고개를 들면서 시장금리가 빠르게 하락하자 회사채, 그중에서도 만기가 길어 금리가 상대적으로 더 높은 장기물의 금리 매력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경록 신영증권 연구원은 “최근 금리의 하방 압력이 높아지면서 조금이라도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회사채에 수요가 생겼다”며 “특히 발행시장에서 장기적인 금리 하락이 예상되는 만큼 만기가 조금이라도 긴 회사채의 인기가 높다”고 전했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도 “최근 금리가 하락하면서 장기 국채금리가 기준금리를 밑도는 수준까지 내려가자 회사채의 투자 매력이 올라갔다”면서 “그중에서도 크레디트 스프레드 축소 여지가 더 큰 5년물(장기물)의 투자 매력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크레디트 스프레드(가산금리)는 회사채와 국고채 간의 금리 차이를 의미한다.

다만 발행 흥행의 온기가 아직 비우량 회사채까지는 전달되지 않는 분위기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A급 이하 회사채 중에선 기업별로 옥석 가리기가 뚜렷하다”며 “가령 실적개선 기대감이 높은 HD현대중공업은 회사채 수요예측에 성공했지만, 부채비율이 높은 GS엔택이나 건설 업황에 대한 우려가 큰 쌍용C&E의 경우 수요예측에서 미달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조금이라도 금리 높을 때…” 기피대상이던 회사채 장기물에 돈 몰린다 [투자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