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봐서 미안하다 사랑한다 멜버른⑦
백호주의가 모범적 다문화로 극적 반전
[헤럴드경제, 멜버른=함영훈 기자] 세계 많은 나라가 그렇듯, 호주 역시 이민자의 나라이다. 멜버른 시티 플린더스 거리의 옛 세관(Old Customs House: 이민청 기능을 겸함) 자리에 들어선 이민박물관은 “1788년 이후 900여 만명의 이민자가 있었다. 상륙을 시도하거나 실패한 사람은 헤아릴 수 없다”고 적고 있다. 호주인구 2600만명은 모두 이 900여만명의 후손들이거나 최근 시민권을 받은 이민자들이다.
▶얼굴은 달라도 서로 녹아든 우리들의 이야기= 멜버른은 멜팅(Melting)이다. 다양한 모습의 얼굴을 외관에 장식한 멜버른 이민박물관에서, 모든 호주국민은 ‘우리들의 이야기(The story of Us)’라는 글귀 속에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이곳은 ▷호주대륙을 향한 퍼스트 오스트랄리언, 애보리진의 최초 정착 ▷인도-태평양 사람의 이주, ▷식민지를 찾던 영국인의 상륙, 원주민과의 전투, 원주민 학살, ▷골드러시에 의한 유럽발 대량 이민과 산업노동자 동아시아인 이주, ▷유색인종에 대한 이민 거부와 중국인들의 저항, 그리고 원주민에 대한 2차 학살, ▷두번의 세계대전을 거친 이후 유럽인 이민 감소, ▷영국으로부터의 독립과 미국과의 연대, ▷난민수용, ▷산업기술자 이민 개방, ▷아시아 이민자의 유럽이민자 수 추월 ▷한국전쟁 참전, ▷모든 이민자에 대한 동일한 규정 적용 등 백인의 호주(백호주의) 포기, ▷원주민에 대한 사죄, ▷아시아-태평양 일원으로서의 성장 등 다문화 사회로의 정착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코로나를 거치면서 ▷외교-통상 문제에 의한 중국과의 갈등 ▷호주내 한류 열풍과 한국인에 대한 워킹할러데이, 기술이민, 관광교류 구애 ▷원주민 대변 헌법기구 설치를 위한 국민투표 추진 등 이슈들이 진행중이다.
▶그녀의 눈물..이렇게 너가 되었어= 이민박물관을 구경하던 퍼스트 오스트랄리언 후손 모습의 한 여학생은 전시를 관람하는 동안 계속 눈물을 훔쳤다. 그녀의 눈물엔, 조상을 떠올리면서 드는 슬픔, 변화된 다문화 존중사회에 대한 감회 등 많은 감정을 내포하고 있는 듯 하다.
관장은 인터넷 인사말을 통해 “멜버른 이민 박물관은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미소지어 짓게 하는데, 항상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우리들의 생각을 자극하는 경험을 선사합니다. 그리고 그 안의 어딘가에서 당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곳은 빅토리아로 이주한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 장소입니다”라고 했다.
이민박물관의 전체 구성은 ‘기-승-전-다문화’이다. 초입에 애보리진계, 영국계, 인도계, 중동계, 중국계, 오세아니아계, 혼혈계 등 다양한 모습의 호주 국민들 얼굴이 커다란 사진으로 긴 복도를 장식한다. 처음 만나는 방은 아무런 장식도 걸려있지 않은, 고대 신전 기둥이 대들보를 떠받치는, 흰 색 방이다. 누구든 백지에서 시작했다는 의미인 듯 하다. 이어 다문화의 형성과정이 연대기순으로 이어지다가 다양한 설치미술로 ‘이렇게 너가 되었어(Becoming YOU)’라는 메시지를 전하더니, 마침내 ‘인종차별주의는 호주인이 아니다(Racism is UnAustralian)’라는 웅변으로 맺는다.
20세기 한때, 남아공도 폐기한 인종주의를 고수한다고 국제적인 비난을 받던 나라에서 모든 사람이 인종과 계층을 넘어 서로를 가장 잘 존중해주는 다문화의 모범국가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5만년전 애보리진, 4천년전 인도인 정착= 인류의 탄생지인 북 아프리카를 출발한 호주 원주민 애보리진은 약 5만년전 호주대륙에 입성한다. 당시엔 ‘호주의 제주도’ 타즈마니아 섬과 북쪽의 뉴기니 섬이 호주대륙(당시 사훌대륙)에 붙어있을 정도로 해수면이 낮아 이동이 수월했다고 한다. 이어 지금으로부터 4000년쯤 전엔 인도계가 발달된 도구와 늑대-개 중간모습인 들개 딩고 등을 데리고 유입한다.
대항해시대 17세기 네덜란드와 영국의 무역인과 학자가 왔다가 원주민의 저항과 효용가치 없다는 판단 때문에 돌아갔고, 18세기 후반 쿡 선장이 상륙하면서 호주 대륙의 존재와 활용가능성을 본국 영국에 알린다. 5만년전부터 살아 온 주인이 버젓이 있는 땅인데도, 원주민을 인간 이하의 동물적 존재로 여긴 채, 미국 독립 후 새로운 유배지로 활용할 방안을 검토하게 된 것이다.
영국의 호주활용론을 처음 펼친 18세기 사람 쿡은 시드니 남쪽 보타니만으로 상륙했지만, 19세기 초중반 금광이 발견되고 골드러시가 벌어진 멜버른이 호주 제1도시(1901~1927년 호주 수도)로 군림한다. 40만명 수준을 꽤 오래 유지하던 호주 인구는 멜버른 일대 골드러시 이후 10년만에 115만명, 30년만에 230만명으로 급증한다. 채굴 인력이 필요했기에 동아시아인들의 유입도 많았다.
▶“나 영국인인줄 알았는데, 영국인 아닌가?”= 골드러시는 급작스런 무역증가를 초래했다. 슬레이트로 첫 세관건물이 지어진 것은 1841년 멜버른의 무역이 증가하던 국면이다. 1858년엔 야라패밀리 호텔 옆에 신식 세관건물을 지었다. 높은 곳에 지어 무역선을 통제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그림을 보면, 이 박물관이 세관 있던 자리였음을 말해주듯, 야라강 배에 상인 혹은 관원이 탄 풍경화가 나온다. 지금은 초고층 빌딩이 빼곡이 들어선 멜버른 야라강남지역은 당시 초원이었고 몇몇 놀러온 사람과 텐트가 보이는 수준이었다. 이민박물관이 있는 옛 세관은 지어질 당시 강북지역에서 비교적 높은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재 이곳은 강북 도심을 기준으로 낮은 지대에 속한다.
이런 활황기에 호주인이 영국에 불만을 품는 사건이 처음으로 발생한다. 1854년 발생한 ‘유레카봉기’이다. 영국정부가 금광 노동자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물리며 탄압하자 노동자들이 무장봉기를 일으킨 것이다. 영국 정부는 부랴부랴 선거권 보장, 과세 감축 등 조치를 취했다. 지금 멜버른에서 가장 높은 유레카 빌딩은 이 자주민주 투쟁과 무관치 않다. 이 봉기 이후 영국의 눈치를 보던 호주 위정자들은 1855년 돌연 중국인 이민 금지라는 성동격서의 대책을 감행한다.
이른바 인종차별적 ‘받아쓰기’ 이민규제가 시작된 것이다. 이 규제를 담은 공공광고는 이렇다. “당신이 50개의 영어를 쓸 수 있고, 50개의 호주 속어 정도는 알고 있으며, 50개의 호주 상식 정도는 알기를 바랬는데, 미달되니 이민을 못받겠다”는 내용이다. 영국인 조차 풀기 힘든 이 문제를 낸 것은 “오지말라”는 얘기다.
이어 “중국인들이 아편밀수를 했다”, “채취한 금을 중국으로 빼돌리고 있다”는 보도와 소문이 퍼져나갔다. 중국인 금광 노동자들은 그간 경제발전에 기여했다고 항변했지만 통하지 않았다는 내용도 이민박물관에 자세히 게시돼 있다.
▶“우린 호주인”= 1901년 영국으로부터 자치권을 확보하는 호주연방헌법이 선포되었지만, 외교,국방,무역은 여전히 영국이 통제했다. 국민들은 ‘호주 사는 영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자치정부는 ‘백호주의’를 강화시킨다. 같은 해 이민제한법을 제정해 유색인종 유입을 억제했고, 이 과정에서 퍼스트 오스트랄리언인 애보리진에 대한 탄압도 재개됐다. 1차대전이 끝난 1920년대엔 적국으로 간주되는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터키 사람은 절대로 받지 않는 규정도 신설했다.
두 번의 세계대전 중 1차대전은 영국인 정체성으로 참전했지만, 2차대전은 호주인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하는 분기점이 된다. 호주인이라는 정체성은 자연스럽게 아시아태평양에 대한 포용력 확대로 이어지게 된다.
1차대전 때엔 영국의 지시에 따라 터키 상륙작전을 하다가 2만명 가량이 죽거나 다쳤고, 혹독한 전쟁터였던 프랑스 서부전선에도 투입됐다. 피의 대가로 자주권을 조금 더 얻었고,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에 의해 입법권 등 거의 완전에 가까운 자치권을 얻게 된다.
2차대전은 1차대전때와 달랐다. 일본군의 퍼스 공습 등 일제 침략때 1만5000명이나 포로로 잡히는데도 영국이 도와주지 않자, 2차대전 유럽 참전용사들을 본국으로 철군시킨 뒤 미국과 손잡고 우여곡절 끝에 1942년 미드웨이해전에서 일본을 격퇴한 일은 호주가 영국과 등을 돌리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 비로소 “아, 나는 영국인이 아니고 호주인인구나”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각인하게 된 것이다.
▶원주민에 사과..이민자 나라 상생의 길= 1951년 호주-미국-캐나다-뉴질랜드가 태평양안전보장조약을 맺는 등 대서양 아닌, 태평양 지역 일원으로서의 정체성이 커진 호주엔 많은 백인들이 빠져나간다. 이 조약은 한국전쟁에 호주군이 1만7000명이나 참전하게 된 계기가 된다. 멜버른, 캔버라 등 4곳엔 한국전 전사자 340명의 영령을 위로하는 참전기념비가 있다.
한국전을 계기로 아시아와의 관계도 다시 잇게 된 호주는 1958년 비(非)영국인에 대한 차별제도였던 ‘받아쓰기 이민 테스트’ 폐지, 1970년대초 아시아 기술자 이민 허용을 거쳐, 1973년 백호주의를 공식 폐지하고 모든 인종,국가로부터의 이민희망자 심사 및 시민권자격 부여을 공평하게 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1980년대 이민자 분포에서 아시아계는 영국계 넘어선다. 아울러 모든 내정에 영국 개입을 완전히 차단했다. 영연방 모임은 나가지만, 혈맹인 미국은 몰라도 영국 등과의 만남은 “친목계일 뿐”이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물론 입헌군주제로서 영국왕은 인정해주기로 했다. 엘리자베스 사후, 찰스 왕에 대한 인기가 낮아 영국왕을 호주의 왕으로 불인정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다문화가 무르익으면서 드디어 2008년 호주정부는 퍼스트 오스트랄리언의 학살, 그들을 인간 이하로 여긴 점 등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최근 10년 동안엔 이라크, 시리아, 미얀마, 아프가니스탄 난민들도 흔쾌히 받아주었다.
호주의 랜드마크 건물, 공원 건설, 거버넌스 입안 등 과정에선 출신이 다른 호주국민들이 저마다의 경험을 제시해 가장 좋은 노하우를 채택하고 있다. 다문화가 갖는 특장점이다.
멜버른 이민박물관은 ‘배척은 나의 고립을 초래하고, 포용만이 호주 발전의 핵심가치’라는 점을 스스로 웅변하고 있다. 원주민 대변 헌법기구 설립 찬반 국민투표는 오는 10~12월 있을 예정이다. 다문화 완성의 화룡점정이 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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