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사실상 ‘거부권’ 행사 기정 사실화
국민의힘 역시 대통령에 ‘거부권 행사’ 건의
민주당, 일단 ‘농심(農心)’… 행사시 ‘새입법’ 강수
대통령실 vs 민주당, 양곡법 대치정국 본격화
[헤럴드경제=홍석희·이세진 기자] 초과 생산된 쌀을 국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대통령실과 더불어민주당 사이 ‘대치정국’이 본격화 될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에 ‘재의요구권(거부권)’ 발동을 요구한 상태고, 대통령실 역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발동을 기정 사실화 하고 있다.
민주당은 거부권이 행사될 경우 같은 내용의 새로운 입법으로 윤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에 따르는 정치적 부담감을 더하겠다는 태세다. ‘거부권’이 행사된 법률을 다시 통과 시키려면 재적 3분의 2의 의석이 필요한데 이를 충족키 어려운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새로운 법 발의로 ‘쌀값 안정’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이 민주당의 복안이다.
더불어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24일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아직은 이르긴 하지만 양곡매수를 의무화하는 또다른 법을 발의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며 “일단은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치 못하도록 막는 것이 우선 순위”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양곡관리법 대응을 종합하면 일단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이 포고되기 전 윤 대통령이 관련 법에 대해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는 것을 막는 것에 당력을 집중 시킬 계획이다. 민주당 입장에선 ‘양곡관리법’은 전국 최대 쌀 생산지인 호남을 주요 지역적 근거지로 삼고 있는 입장인 탓에 더 절박하다.
지난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 이상이거나 수확기 쌀값이 평년 대비 5∼8% 이상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 전량을 의무 매입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의무 매입의 구체적 기준은 해당 범위 내에서 정부가 추후 시행령을 통해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당초 민주당은 의무 매입 기준을 초과 생산량 3% 이상, 수확기 쌀값 5% 이상 하락 때로 했지만 여당과의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자 김진표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일부 반영해 정부 재량권을 늘렸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정부는 이번 법안이 통과될 경우 가뜩이나 쌀 소비량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추가 재정 소요가 천문학적일 수 있다는 점을 비판한다. 현재는 기획재정부 판단에 따라 쌀매입 규모 및 적정 단가를 결정하게 돼 있으나, 정부의 상황 판단 여지를 제거하고 법으로 쌀을 의무 매입하게 될 경우 쌀 생산을 오히려 장려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반대의 주요 이유다. 농식품부 등에 따르면 법이 시행될 경우 매년 약 1조원 안팎의 쌀매입 자금이 필요하다는 추산도 나오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법 통과 직후 기자들과 만나 “무책임한 입법폭력”이라며 “자기들이 여당일 때는 안 하던 것을 ‘지금 아니면 말고’식으로 통과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쌀 수매에 연평균 1조 원 이상 투입된다. 매년 청년농 3000명을 양성할 수 있는 재원이 낭비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실 역시 법안 통과에 대해 “국민 세금이 투입돼야 할 뿐만 아니라 국민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크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농민단체에서도 양곡관리법을 반대하는 이들이 많다”며 “이르면 다음 달 4일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사실상 공식화 한 것은 해당 법이 사실상 ‘이재명표 1호법안’이라는 점과도 무관치 않다. 윤 대통령은 취임 취임 10개월이 지난 이날까지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지 않고 있다.
‘이재명표 1호 법안’에 대해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지난해 대통령 시정 연설 당시 사상 초유의 야당 의원들 집단퇴장 및 야당 대표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기소 등으로 첨예하게 갈등을 빚고 있는 ‘대통령실 대 민주당’의 대치 전선은 보다 더 명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이 공략하는 포인트는 ‘농심(農心)’이다. 전국에서 쌀 생산 면적이 가장 넓은 곳이 호남지역인데, 관련 농민 단체들을 독려해 양곡관리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에 보다 큰 ‘정치적 부담’을 느끼게 하겠다는 것이 민주당의 복안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대통령 입장에서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시 주민이야 관계가 없겠지만 쌀 농가와 농민들 당사자는 다를 것”이라며 “ 거부권 행사할 때 쌀 농사 짓는 농민들이 어떻게 판단할지 정치적 유불리를 대통령실도 판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