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부 마음 급했나” 中태양광 제품 수입 사실상 재개
중국산 물량 감소로 현지 태양광 프로젝트 지연 이어져
론지솔라 등 대형 중국 업체도 미국 진출 선언
미국 시장서 입지 다진 한화솔루션과 격돌 예고
[헤럴드경제=양대근 기자] 미국 정부가 중국 태양광제품에 대한 자국 내 규제와 관련 사실상 완화 수순에 들어갔다. 글로벌 태양광제품 생산의 80%를 차지하는 중국에서의 수입물량이 급감하면서 기존 현지 프로젝트가 연이어 차질을 빚은 것이 이번 결정의 원인이 됐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 390억달러(약 50조원)의 보조금 조건으로 대중국 투자 제한 등 과도한 제한을 내걸면서 정작 자국의 에너지 수급 문제로 중국 제품을 받기로 해 미국의 잇따른 ‘이중적 행태’가 또 한 번 도마 위에 올랐다. 그동안 반사이익을 누려왔던 한국 기업들이 다시 긴장의 끈을 풀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바이든 정부의 위구르 강제노동방지법(UFLPA)에 따라 1년 가까이 제한됐던 중국산 태양광 패널이 이달 초를 전후로 미국 내 수입이 재개됐다.
UFLPA은 중국 신장위구르지역에서 채굴·생산·제조된 모든 제품을 강제노동에 의해 생산된 것으로 간주하고 해당 제품에 대한 수입을 일체 금지하는 법안이다. 다만 명확하고 신뢰성 있는 증거를 바탕으로 입증 과정을 거치면 수입이 허용된다.
중국의 태양광 패널제품 생산량은 전 세계에서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신장위구르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유안타증권의 분석 결과, 중국산 태양광 부품 수입 금지 규제가 시작된 이후 미국 곳곳에서 태양광 설치 프로젝트가 상당 부분 지연된 것으로 조사됐다. 자국으로 유입되는 부품 물량 자체가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UFLPA 법안이 시행된 지난해 2분기 이후 미국 내 태양광발전 설치 증가세가 둔화했다. 지난해 기준 미국에 설치된 태양광 신규 설치 용량은 기준 20.2GW(기가와트)로, 전년 대비 16.1% 감소했다.
고선영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중국 제품에 대한) 제재 시행이 미국 태양광발전 설치량의 즉각적인 둔화로 이어졌던 만큼 이번에 (미국 정부가) 중국산 부품 수입을 재개하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면서 “실제 올해 미국에서 예정된 신재생에너지 설치 프로젝트를 보면 태양광발전의 비중이 절반 이상을 차지함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규제 완화와 함께 중국 태양광기업들의 본격적인 미국 시장 진출도 가시화하고 있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은 “세계 최대의 태양광 웨이퍼 모듈 생산기업인 중국의 론지솔라가 미국 시장에 진출한다”고 최근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론지솔라의 태양광 모듈 자회사인 론지그린에너지는 미국 에너지개발기업 인베너지와 ‘일루미네이트 USA’ 합작법인을 설립해 오하이오주 파타스칼라에 연간 생산능력 5GW(기가와트) 규모의 태양광 모듈공장을 건설한다. 총 6억달러(약 7836억원)가 투입되는 이 공장은 다음달 착공해 올해 말 가동이 목표다.
태양광산업의 가치사슬은 폴리실리콘→잉곳→웨이퍼→셀→모듈로 이어진다. 론지솔라는 현재 웨이퍼 부문에서 세계 1위, 모듈에서 세계 2위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중국의 또 다른 대형 태양광기업으로 꼽히는 JA솔라 역시 올해 초 6000만달러(약 779억원)를 들여 2GW 규모의 태양광 패널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중국 기업들의 잇따른 미국 진출 결정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대규모 세액공제 혜택과 글로벌 시장 확대를 동시에 겨냥한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부터 IRA가 본격 발효되면서 미국에서 태양광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세액공제를 포함해 다양한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재 미국 주거용·상업용 태양광 모듈 점유율 1위를 수성하고 있는 한화솔루션이 경쟁자인 중국 업체들의 추격을 뿌리칠지도 향후 주목할 지점으로 꼽힌다. 현재 세계 태양광제품 공급의 80% 이상을 독점하고 있는 중국이 미국 시장까지 집중적으로 공략에 나설 경우 한화솔루션 등 현지 진출 기업을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화솔루션은 조지아주에 3조2000억원을 투자해 태양광 가치사슬(폴리실리콘→잉곳→웨이퍼→셀→모듈)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초대형 생산단지 ‘솔라 허브’를 구축하고 있다. 북미 지역 태양광사업 사상 최대 규모 투자로, 단일 사업에 3조원 넘는 돈을 쏟아부은 것은 한화그룹 창사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회사 측은 IRA 관련 각종 세액공제를 포함해 바이든 정부로부터 1조원 규모의 지원을 받게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업계 관계자는 “미·중 공급망 갈등이 첨예해지면서 중국 태양광기업들이 미국 내에서 우호적 관계를 쌓기 어려운 측면이 여전히 있다”면서 “때문에 중국 기업이 미국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며, 이런 측면이 한국 기업에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