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손기정 이후 양정모의 첫 올림픽 금메달로 한국민에게 감동을 안긴 몬트리올은 우리에게 이름 만 들어도 친근감을 준다.
피렌체의 머리 큰 두오모보다 더 높고 웅장한 몬트리올 성 요셉 성당 언덕에서 내려다 보면 올림픽(1976년) 스타디움과 기념관이 보인다. 양정모 선수의 족적, 한국 구기종목 사상 올림픽 첫 메달을 안긴 여자배구의 자취가 있음은 물론이다.
17~18세기 퍼스트캐다디언-프랑스이민자-영국이민자 사이 전쟁과 알력, 공존을 위한 모색기를 거쳐 19세기 이후 무역도시로 200년 전성기를 누리다, 엑스포-올림픽을 개최했고, 제1도시의 지위를 토론토에 넘겨주고 캐나다 제2도시가 된 지금은 역사인문학-생태관광, 청춘놀이터 기능으로 특화됐다.
▶피렌체 두오모 느낌의 녹색 성요셉 성당= 몬트리올이라는 도시명의 어원인 원주민어 몽루아얄 공원은 몬트리올 중심 산에 있는 생태공원이다. 서울의 남산을 연상시키는 해발 232m 산책하기 좋은 언덕으로 도시 전체와 온타리아 호수가 발 아래 조망되는 곳이다. 공원 면적이 매우 크기 때문에 접근로에 따라 뷰가 다른데, 관광객들은 주로 성요셉 성당쪽으로 오른다.
성요셉 성당은 캐나다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앙드레 수사가 병든 사람을 치유하는 기적을 일으키면서 유명해졌다. 앙드레 수사는 노트르담 대학의 수위임에도 불구하고 아픈 사람들을 돌보고 기도해주면서 치유 능력이 생겨, 기적 같은 치유력을 많이 나누었다고 한다.
성요셉 성당에는 병자가 환부를 치유한 뒤 버리고 간 지팡이와 목발들이 쌓여 있고, 여전히 세계 여러나라 환자들의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이곳엔 가정과 일터에서의 행복, 망자의 명복을 비는 기도처도 있다. 3500개 파이프로 이뤄진 오르간도 명물이다.
성요셉 성당은 몽루아얄 산 중턱에 있어, 성당에서 몬트리올 시내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항구의 서정과 버라이어티 엘렌섬= 몽루아얄에서 동쪽 강변 방향 3㎞지점에 있는 올드 포트(Vieux-Port)는 봄 부터 푸드트럭이 늘어서고, 인근 봉 마르셰 시장과 함께 스트리트 푸드 데이트 코스가 된다.
올드포트 근처 올드타운 쪽으로는 언더그라운드 시티(RÉSO)가 있다. 겨울철 몬트리올의 강추위와 폭설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하 쇼핑몰로 미로형 총 길이 32㎞에 달한다. 당연히 다른 계절에도 쇼핑관광을 즐긴다.
여기서 2㎞ 북쪽으로 가면 만난 ‘파르크 드 올랑피크(Olympique)’는 양정모(70) 선수 레슬링 금메달의 추억이 서린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스타디움이다.
근처에 도심속 녹지 라 퐁텐(Fontaine) 공원이 있고 북쪽 길 건너엔 다양한 식물다양성을 확보하고 있으면서 큰바위얼굴 조형물이 이채로운 몬트리올 식물원(botanique)이 있다.
몬트리올 섬 지역 동쪽 생 엘렌 섬은 아기자기한 역사문화, 휴식놀이시설이 가득하다. 바이오스피어(La Biosphère)는 몬트리올 엑스포(1967년) 미국관으로 쓰이던 건물로, 엑스포 유산이자 환경과 관련된 전시관이다.
장드라포 공원(Parc Jean-Drapeau)은 1967년에 몬트리올 엑스포를 계기로 조성된 인공섬이다. 현재는 몬트리올 시민들의 휴식처로 탈바꿈했다. 라 롱드(La Ronde)는 엘렌섬 북쪽에 있는 식스플래그 계열의 놀이공원이다.
생 엘렌섬을 가운데에 두고 서쪽 몬트리올 섬과 동쪽 내륙을 연결하는 자크 카르티에 다리는 몬트리올을 대표하는 대교-섬-대교로, 이 도시 야경의 꽃이다.
▶올드타운= 올드타운으로 들어오면, 성캐서린 거리 쇼핑가이고 북미하키 최다 우승팀 홈구장 센터벨(별칭 아비땅, 헵스)이 있다. 팀 이름은 레 카나디앵 드 몽레알, 영어로는 몬트리올 캐나디언스.
이곳 바로 아래 쉘브록거리는 상권중심, 패션거리이자 국제회의가 많이 열리는 곳이다.
올드 포트 쪽을 걷다보면 우뚝 솟아 있는 2개의 고딕양식 타워로 구성된 노트르담 바실리카 성당을 만난다.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교회를 닮았다. 성당앞 담광장은 올드타운의 중심구역이다. 광장의 예술적인 조각상 사이로 여행자들의 인증샷 포즈와 재잘거림이 정겹다.
1829년에 완공된 이 성당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했던 곳이기도 하며 피에르-엘리엇 트루도 수상과 전설적인 하키 선수 모리스 리차드의 장례식이 치뤄지기도 한 곳이다. 스테인드글라스와 성화, 성구 보관실, 갤러리, 세례실 등을 연결해 설명해주는 가이드 투어도 해준다.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디바 셀린디온은 이 성당 성가대 출신이며, 이곳에서 결혼도 했다. 몬트리올에 실제사건 타이타닉 침몰 희생자들의 무덤이 있는데, 셀린디온이 이 영화 주제곡을 부른 것은 특별한 인연이다.
자크 까르띠에 광장은 프랑스의 캐나다 동부 첫 탐험가의 이름을 본땄다. 이 광장에서는 거리의 악사와 화가, 저글러, 판토마임 연기자 등이 즐겁고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다른 한쪽에서는 퍼스트 캐나디언들의 민속자료, 그들의 삶을 표현한 목공예품, 메이플시럽 등을 파는 잡화점들이 있으며, 주민과 여행자가 커피를 마시고, 프랑스식, 아시아식 미식을 즐기는 테라스가 줄지어 있다.
▶약사= 고고학자들은 몬트리올에 5000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고증한다. 당연히 베링해를 건너온 동북아시아계이다.
퍼스트 캐나디언들은 서방세력의 점령 이전까지 성을 쌓고 살았다. 프랑스의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는 1535년에 왔고, 1603년에 온 샹플랭은 원주민 정착지가 사라졌다고 기록했다.
그들이 사라진 이유는 알수 없으나, 원주민들은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법으로 생존을 도모한다. 1689년엔 영국과 동맹을 맺더니, 1754년엔 프랑스과 손을 잡았다. 도깨비 무덤으로 드라마에 나온 아브라함 평원 전투에서 영국군이 승리하면서 캐나다 주도권은 영국으로 넘어가고, 프랑스계는 몬트리올로 퇴각한다.
반란과 항전을 거치면서 몬트리올을 포함한 캐나다 동부는 현재 퍼스트캐나디언계, 프랑스계, 영국계가 공존하며 살아간다. 퀘벡주에 속한 도시이므로 프랑스계가 우세한데, 그 정도는 퀘벡시티 보다는 덜하다.
이 지역은 세인트로렌스강물이 맴돌아 역류하기도 하는 지점이라서 항해에 애를 먹던 곳이다. 프랑스 초기이민자들이 몬트리올까지 못오고 퀘벡시티에 먼저 정착한 이유이다. 1825년 우회용 인공 라신 운하를 팠고, 이는 몬트리올을 물류, 무역의 중심으로 발전시킨 계기였다.
스페인,이탈리아에서 보듯 공존이 어느정도 정착되기 시작한 상황에서 분리독립을 주장하면 역풍을 맞는다. 몬트리올이 그랬다. 분리독립파가 득세하자 세계 굴지의 기업기관의 본거지가 토론토로 이전했고, 양정모에게 영광을 선물한 1976년 올림픽 부채가 설상가상으로 몬트리올의 발목을 잡았다.
퀘벡시티가 400년 프랑스 옛도시라면, 몬트리올은 400년 프랑스-영국-원주민 간 힘의 균형과 공존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온고지신,신구조화의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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