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뒤에 쓴 유서(민병훈 지음, 민음사)=우리는 흔히 기억이 카메라처럼 있는 그대로를 저장하고 불러오는 것처럼 여기지만 기억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애초 인상적인 장면만 저장하고 불러올 때도 있는 그대로 불러오는 게 아니라 재창조하고 재구성한다. 그 이후에 받은 느낌이나 생각, 지식이 추가되기도 한다.

‘아버지는 오래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소설은 이 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반영한 이 한 문장 뒤에는 통과해 온 어둡고 긴 터널이 있다. 오랜 세월 머리 속을 가득 채우고 제멋대로 수시로 돌출해 기억의 공간을 헤집고 묻고 돌아보는 모든 시간들이 중첩돼 있다. 작가의 이전 소설집 ‘재구성’과 ‘겨울에 대한 감각’에 숨겨 놓은 “모든 건 그의 죽음 때문이다. 가능한 말인가”, “그 누군가에 대해 떠올리는 일을, 어떻게든, 갖은 방법으로, 계속 지연시키고 싶었어요”라는 문장도 이곳을 향한다.

학창 시절 경험한 아버지의 자살은 ‘나’에게 깊은 영향을 준다. 그러나 지나간 사건이 자신에게 남긴 흔적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소설가가 된 ‘나’는 그동안 자신의 헤맴의 뿌리에 그 죽음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죽음의 사건을 제대로 보고자 한다. 그 시절 살던 고향을 찾아가 보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사실의 조각을 모으는 일은 만족스럽지 않다. 구체성, 사실성이 결여된 기억의 허약함만 확인한다.

소설의 중심은 아버지의 죽음이지만 구체적인 사건으로서의 죽음은 없다. 그 죽음에 닿으려는 ‘나’에게 왜 쓰는가의 질문은 결국 어떻게 쓰는가로 귀결된다. 작가는 기억하기와 쓰기의 소설적 과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그 간극을 건너간다.

▶통계 안목(송인창·최성호 지음, 바틀비)=사람들은 숫자로 이뤄진 정보를 객관적이며 옳다고 여기지만,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퍼센티지는 눈속임이 많다. 가령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50% 할인에 추가 30% 할인이란 광고가 뜨면, 고객은 10만 원 짜리를 80%할인해 2만 원에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트의 생각은 다르다. 50%할인한 5만 원에 30% 추가 할인한 3만5000원을 요구한다.

공직과 대학에서 통계를 바탕으로 정책을 만들고 연구해온 저자들은 책에서 평균과 퍼센티지의 함정부터 선거 여론조사, 코로나19 방역, 국가 통계 작성 등 최근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쟁점들을 중심으로 통계의 속임수에 빠지지 않고 제대로 읽어내는 법을 들려준다. 여론조사는 민심의 향배를 왜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현실에선 집단이나 정당 입맛대로 설계되는 경우가 많다. ‘무작위’ 표본 집단도 허점투성이다.

코로나 19 대응 과정도 의문이 제기된다. 초기 코로나 19 확산을 종식시킬 마법의 공식으로 여겼던 감염 재생산지수는 바이러스 변이가 거듭되면서 뚜렷한 한계를 드러냈다. 또한 치명률을 따져 한국이 국가방역을 잘했다는 주장도 무엇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다르다. 저자들은 통계 방역을 어렵게 하는 요인은 오락가락하는 통계라고 지적한다.

책에는 보험사를 옮겨 고객들이 평균 15만 원의 보험료를 절약했다는 보험 광고나 고속도로 사망자 가운데 30%가 안전벨트 미착용 같은 경고문, 2021년 인구의 28%가 고혈압 환자라는 통계 왜곡의 함정도 짚어준다.

▶지나친 고백(크리스티 테이트 지음, 서제인 옮김, 바다출판사)=‘나는 부적응자였다. 내가 품고 다니던 무거운 비밀은 내가 어딘 가에 속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고백의 주인공이라면 학교 밖을 떠도는 아웃사이더라고 여길 만하지만 크리스티는 오히려 그 반대다. 공부는 외로움에서 도망치기 쉬운 안식처였다. 고등학교, 대학교 내내 1등을 놓치지 않았고 변호사가 됐지만 그는 한결같이 ‘죽고 싶다’는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 섭식장애가 있는 그는 착실한 남자가 관심을 표현하면 토하고 싶어진다. 여자도 마찬가지다.

폭식증에서 회복 중이지만 인간관계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진짜가 되는 것.” 함께 식사를 하고 남자친구와 섹스를 즐기고 친구들과 여행하는 평범한 것들이다. 그런 차에 ‘비밀은 유독하다’는 신념을 지닌 심리 치료사 로젠 박사를 만나 그룹 상담을 받으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어린 시절 항문에 기생충이 생겨 수치스럽고 스스로를 역겹게 여긴 일, 방학 때 친구의 가족과 함께 바다에 놀라갔다가 친구의 아버지가 눈 앞에서 목숨을 잃고, 식당에서 음식을 공유하지 않는 남자친구에게 분노해 한밤 중에 접시를 던져 깨 부순 일 등 말하기 불편한 일들을 사람들과 공유한다. 수치스럽고 불편한 얘기를 꺼내놓지 않는 게 더 안전한 듯 싶지만, 사실 마음의 치유는 드러냄에서 시작된다.

‘매끄러운 관계’가 진짜 나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스스로를 속인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책은 그룹 상담자들의 신상 정보와 상담 과정에서 드러난 비밀스런 얘기들을 그대로 드러내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