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촌 밀집한 금천구 독산동 일대 둘러보니

빌라왕 사태에…중개업자도 “아파트 보세요”

“이자 높고 사기 걱정에 빌라 전세 인기 하락”

금천구 전세 거래량 한달새 30% 가까이 감소

전문가 “빌라시장 불신→서민 주거환경 악화”

[르포] “빌라마저 불안하면 어디로 가나요”…주거사다리 빌라의 몰락 [부동산360]
서울시 금천구 독산동의 빌라 밀집 지역. 고은결 기자

[헤럴드경제=고은결 기자] "빌라 전세 매물이 있긴 한데요. 사실 비슷한 가격이면 아파트 전세를 더 많이 보여줘요. 깔끔한 신축 빌라도 있긴 한데 깡통 전세라 위험해서 추천이 겁나네요. 돈 돌려받는 과정이 많이 힘들 수 있어요."(독산역 인근 A공인중개사무소 )

서민층의 소중한 보금자리 역할을 하던 빌라가 불신의 대상으로 낙인 찍혀 추락하고 있다. 아파트 못지않은 주거 품질을 자랑하던 신축 빌라는 자칫 골치 아픈 일에 얽힐 수 있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명 '빌라왕 사태'로 깡통 전세에 대한 우려가 팽배해진 데 따른 후폭풍이다. 빌라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은 최근 깡통 전세 사기가 집중된 강서구 뿐 아니라 빌라촌이 들어선 여타 지역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19일 기자가 찾은 서울시 금천구 독산동 빌라촌 일대. 준공업 지역으로 공장과 거주 지역이 혼재됐지만 서울디지털산업단지와 가까워 직주근접 수요가 두텁다. 독산 1동 내 빌라촌에서는 신축 빌라가 지어지는 공사 현장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이곳 일대 빌라 전세 수요가 다소 주춤하다는 게 현장의 전언이다.

독산동 시흥대로 인근의 A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근방 투룸 빌라 기준 전세 시세는 2억원부터 2억3000만원 수준이다. 깔끔한 신축 빌라 전세도 있지만 2억8000만원 이상인데 매매 가격과 크게 차이가 안 난다. 솔직히 위험해서 추천하기 겁난다"며 "25년된 59㎡(18평) 아파트 전세도 2억6000만원인데, 오래되긴 했지만 차라리 훨씬 안전해 이런 물건을 손님들에게 권한다"고 토로했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전세 사기 사건에 독산동 등 금천구 내 연립·다세대(빌라) 전세 거래량도 줄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금천구의 연립·다세대 전세 거래량은 82건으로 11월(115건)보다 28.7% 감소했다.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발생한 전세 보증사고 277건 중 금천구에서는 25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독산동 B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근방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전세는 토박이 건물주가 노후용으로 월세를 놓은 건물에 포함된 전세 물건 정도"라며 "요즘에는 이자가 워낙 높고, 바지 사장을 내세우는 전세 사기 걱정이 많다. 그래서 아예 보증금 낮고 전세 대출 이자 수준의 월세를 보는 이들도 많다"고 귀띔했다.

[르포] “빌라마저 불안하면 어디로 가나요”…주거사다리 빌라의 몰락 [부동산360]
서울 금천구 독산동 빌라 밀집 지역 일대에서 진행 중인 빌라 신축 공사 현장. 고은결 기자

빌라 전세를 찾는 이들에게 '보증사고' 대비부터 마쳤는지 확인한다는 전언도 있었다. 독산동 C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전세 찾는 손님한테 '집주인이 확실히 보증금을 빼주기로 했느냐'고 두 번 세 번 묻는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을 가입했어도 요즘 주인들이 돈이 없어 못 돌려주는 사고가 많지 않느냐. 그래서 더 철저히 물어본다"고 말했다. 인근 D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도 "요즘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신축 빌라는 보증보험 가입을 잘 안 해주려고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며 "반드시 물건마다 가입이 되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시장에 찬바람이 불다 보니 임대사업자도 빌라 전셋값을 낮추거나 월세를 동시에 놓고 있다는 전언이다. 독산역 인근 소유 빌라 건물 기둥에 큼지막한 '임대 문의' 안내문을 붙인 임대사업자 E씨는 "원래 빌라 전세 방이 잘 나오지도 않았는데 요즘 시장이 너무 주춤하다"며 "전세도 이전보다 확 내려서 내놨고, 월세도 같이 놓기로 했다"고 말했다.

아파트 매매가·전셋값 급등으로 자금력이 부족해 대체재로 빌라를 찾던 이들도 고개를 내젓고 있다. 구로구와 금천구 인근 빌라 전세를 알아본 경험이 있는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대놓고 '보증보험을 안 들었으니 싼값에 전세를 놓은 거다'라는 집주인도 있었다. 무서워서 들어가겠느냐"고 말했다. 지난 2021년까지 빌라왕 근거지 강서구 화곡동에 살다가 아예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강북에 자가를 마련한 30대 직장인 유모씨는 "전셋집에 살 때는 돈 떼먹힐 걱정, 덜컥 집을 산 뒤에는 집값 하락과 이자 걱정에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세입자는 물론 중개업계까지 확산되는 '빌라 공포' 현상이 서민들의 주거 환경을 더 악화시킨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MD비즈니스학과 교수)는 "아파트보다 저렴한 빌라는 많은 서민에게 주거 형태 제공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이번 빌라왕 사태로 불신이 쌓이며 서민들의 주거 시장이 너무 악화되고 있는 형국"이라며 "빌라도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가격을 투명화해야 임차인들이 마음을 놓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르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