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 군사합의 당시 국회 비준 동의 없이 의결
대통령실 “효력 정지도 국회 동의 필요치 않아”
[헤럴드경제=박상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의 영토 재침범 시 ‘9·19 남북 군사합의 효력 정지’ 검토를 지시한 배경 중엔 ‘국회 비준을 받지 않은 남북 간 합의는 국회 동의 없이 효력 정지가 가능하다’는 판단도 있었던 것으로 관측된다.
대통령실은 6일 남북합의서의 효력 등을 규정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남북관계발전법)’을 근거로, 국회의 동의 없이 9·19 군사합의의 효력을 정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남북관계발전법은 남북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생기거나, 국가안보, 질서유지, 공공복리 등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대통령이 남북합의서의 효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시킬 수 있다고 규정한다. 또한 국회의 체결·비준 동의를 얻은 남북합의서의 효력 정지를 위해선 국회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도록 했다.
대통령실은 이 조항을 근거로 9·19 군사합의의 경우 국회의 비준 동의가 없었으므로, 국회의 동의 없이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통해 효력 정지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한 국회 비준 동의를 받지 않은 다른 남북 간 합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대통령실 핵심관계자는 “(9·19 군사합의가)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아,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도 (국회의) 동의가 필요치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도 6일 “법문상 국회 비준 동의를 받지 않은 남북합의서의 효력 정지는 그 정지에 관해 다시 국회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며 “거기(남북관계발전법)에는 별도로 단서도 없고 달리 해석될 여지가 없어 보인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9·19 남북 군사합의는 국회 비준 동의 없이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발효됐다. 당초 9·19 군사합의는 2018년 9·19 평양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 성격으로, 평양공동선언과 함께 대통령 국무회의만을 거쳤다. 당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새로운 남북의 합의들이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만들 때 국회에 해당하는 것이지 원칙·방향·선언적 합의에 대해서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며 국회 비준 동의를 받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대통령실이 9·19 군사합의 외에 국회 비준 동의를 받지 않은 다른 남북 간 합의들의 효력 정지를 검토할 가능성도 일각에선 거론된다. 대표적인 것이 2004년 6월 체결된 6·4 합의로, 이 합의엔 서해해상에서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고,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대북확성기 방송과 대북 전단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실제 9·19 군사합의 효력정지가 발효되면 이는 남측에 더 유리한 조치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당초 9.19 군사합의에 대한 비판이 일었던 것은 북한에게 유리하다는 것”이라며 “왜냐하면 전방 지역에 우리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정찰 활동을 다 묶어버렸다. 우리가 정찰 능력이 북한보다 뛰어난데 그걸 다 묶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두 번째는 우리 서해 5도에서 특히 백령도에서 우리가 포사격 훈련을 할 수가 없다”며 “그런 게 다 묶여 있었는데 9·19 군사합의 효력을 정지시키면 그걸 다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것으로 북한에겐 불리하고 우리에겐 유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기’가 아닌 ‘효력 정지’ 검토란 점에서, 향후 한반도 긴장 고조의 책임을 명확히 북한에 묻겠다는 선언이란 분석도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파기가 아닌 효력 정지라는 게 의미가 있다”며 “북한 같은 경우에 사실상 목표는 한국 정부가 파기를 선언하는 것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파기를 하게 되면 이 이후에 한반도를 계속 그대로 도발할 거고 한반도 긴장 고조의 책임을 한국한테 돌릴 것”이고 덧붙였다. 하지만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 후에도 북한의 도발이 이어진다면, 한반도 긴장 조성의 책임은 북한에 있다는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할 수 있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박 교수는 9·19 군사합의 외에 다른 남북 간 합의까지 효력 정지를 검토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도 제언했다. 박 교수는 “한꺼번에 모든 걸 (효력 정지 검토에) 올려놓을 필요는 없다”며 “(효력 정지 시)우리한테 훨씬 불리하게 작동할 수 있는 합의들도 꽤 있다. 그런 부분들의 비용과 효과를 잘 계산해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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