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자살(에릭 제무르 지음, 이선우 옮김,틈새책방)=프랑스 우파 지식인이자 언론인으로 대선 후보로 급부상한 에릭 제무르의 베스트셀러. 지난 40년간 프랑스의 사회문화 전반을 아우르며 프랑스가 어떻게 쇠락의 길을 걷게 됐는지 기술한다. 저자는 그 중심에 68 혁명이 있다고 본다. 제무르는 “68혁명이 만든 작품 3부작인 조롱, 해체, 파괴’는 민족, 노동, 국가, 학교와 같은 모든 전통적 체계의 근간을 무너트렸다”고 지적한다. 책은 1970년 11월9일 드골의 죽음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그날 파리에 내리는 비로 두 페이지를 장식하며, 조종을 울린다. 프랑스의 쇠퇴는 자유와 세계화의 구호 아래 전통을 와해 시킨 좌파와 이에 동조하면서 사리사욕을 챙긴 우파의 무책임에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엘리트들이 옳다고 생각해 추구한 것들이 사실은 프랑스를 좀먹고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통렬한 비판이다. 저자의 이상적 모델은 드골의 국가주의다. 제무르의 논리는 우리에겐 혼란스럽다. 프랑스의 좌파 논리는 우리에겐 우파의 주장이 되는 까닭이다. 가령 제무르는 좌파가 국가 공동체의 발전보다 개인주의를, 독자적인 프랑스보다 세계화의 가치를, 민족적 이념 대신 보편적 휴머니즘을 우선시한다는 점을 비판한다. 제무르의 바판 가운데 젠더 담론도 불편한 지점이다. 그는 여성 인권 신장을 못마땅해 하며 일하는 남성과 집안의 여성이라는 전통적인 성 역할을 이상적 모델로 본다. 역사를 가로지르는 거침없고 생동적인 기자적 글쓰기를 통해 묘한 설득력을 지닌 진보 보수의 원조인 프랑스 우파 논리를 제대로 만날 수 있다.
▶거기 눈을 심어라(M.리오나 고댕 지음, 오숙은 옮김, 반비)=시각장애인인 저자가 한 코로 꿰어낸 눈멂의 문화사. 문학과 철학, 대중문화가 어떻게 시각장애인을 재현해왔는가를 살피는 문화사이자 문화·예술 비평이며 시력을 잃어간 자신의 경험을 담은 에세이이다. ‘눈먼 예언자’라는 문화적 코드는 역사가 깊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의 데모도코스, ‘오이디푸스 왕’의 테이레시아스, 밀턴과 핼렌 켈러, ‘눈먼 자들의 도시’‘듄’‘스타워즈’까지 문화콘텐츠에서 독특한 위치를 갖고 있다. 여기에는 눈멂이 보는 것 너머를 볼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게 깔려 있는데, 저자 역시 시각 상실로 몸부림 치던 초기에는 눈멂 예언자 밈이 조금이나마 자긍심을 일깨워줬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저자는 눈멂의 신비화가 결국 비정상적 결핍을 드러내는 방식임에 주목한다. 저자는 다양한 텍스트 속 눈 먼 인물을 호출해 시각 중심 문화와 비시각장애 중심의 상상력이 어떻게 구축돼 왔는가를 밝힌다. 또한 책은 보행용 지팡이부터 망원경, 현미경 등의 시각 장치, 점자와 반향정위의 과학,각종 디지털기기 같은 테크놀로지에 대해서도 폭넓게 다룬다. 특히 저자는 현실에서 왜 시각장애에 대해 말하고 재현하는 시각장애 작가나 저널리스트가 적은지, 점자 문해력을 기르지 못한 시각장애인은 왜 이렇게 많은지,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시각장애 여성이라는 섹슈얼리티는 왜 부정되는지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입을 연다. 저자의 통찰을 따라가다 보면 눈멂을 비정상적 결핍으로 그려온 당연시된 세상이 비로소 이상하게 보인다.
▶허들(신주희 지음, 자음과모음)=‘모서리의 탄생’ 이후,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해온 신주희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이번 소설집에는 제21회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한,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고통마저 스스로 선택하는 예술가들의 고군분투를 형상화”한 ‘햄의 기원’을 비롯, 일곱 편의 이야기를 실었다. 소설의 표제작인 ‘허들’은 주인공인 ‘나’가 쓰는 유서의 형식으로 어머니를 수신인으로 한다. 어머니는 나에게 평범한 삶을 요구해왔는데, 그 평범성은 나에게 지나치게 높은 허들로 작용한다. 그 결과, 그저 비난받지 않기 위해 세상의 모든 압력을 견디는 삶으로 평평해진다.‘허들’과 대척점에 선 작품인 ‘로즈쿼츠’는 죽은 엄마의 삶을 반추하며 자신의 삶을 망가트린 어머니에 대한 피해의식과 파해자 되기의 삶을 되돌아보는 이야기이다. 단편 ‘휘발, 공원’은 타인이 자신을 판단하는 것, 유해한 사람으로 매도당하는 데 대한 공포를 그린다. 이번 일곱 편의 단편들에서 주인공들에게 생존과 사람다운 삶, 평범하게 존재하기는 쉽지 않은 일로 여겨진다. 그래서 그저 삶을 견디는 존재가 된다. 주인공들은 자주 질문하고 의문을 갖지만 작가는 이에 직접 말해주거나 깊은 내적 진실을 설명하는 대신 이들의 곁에 가만히 있어주기를 택한다. 이를 통해 지지와 가느다란 연대의 끈을 만들어낸다.
이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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