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시장서 고금리 주고도 돈 못 구해

대응 방안으로 CP 발행·은행대출 돌아서

현금성 자산 모으고 단기차입금 늘리기도

자금 마르고 회사채 막히고…다급한 기업들, 대출·유상증자 돌파구 찾는다 [비즈360]
서울 시내 한 은행에서 촬영한 지폐. [연합]

[헤럴드경제=원호연·주소현 기자] 자금시장이 마르면서 대기업들의 현금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주요 자금 조달 수단이었던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자 기업들은 기업어음(CP) 발행, 유상증자, 계열사나 은행으로부터 대출 등 다양한 대안을 찾아 동분서주하고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과 두산퓨얼셀 등은 최근 회사채를 발행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15일과 지난달 말 두 차례에 걸쳐 연 금리 약 7.1%에 각 500억원, 300억원 규모로 2년물 회사채를 발행했다. 두산퓨얼셀 역시 지난달 28일 150억원 규모 사모채를 발행한 데 이어 16~17일 총 150억원을 사모채로 추가로 조달했다. 2년물의 금리는 연 8.5%, 3년물은 연 9.2%였다.

그러나 대기업의 회사채가 팔리지 않는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한진은 지난달 17일 연 금리 6.8%로 300억원 규모의 2년물 회사채를 모집했지만, 실제 들어온 주문은 10억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7월만 해도 회사채 금리가 2% 후반에서 3% 초반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고금리에도 회사채 시장에 빠르게 얼어붙고 있는 셈이다.

한화솔루션 역시 지난달 21일 총 1500억원어치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 수요를 예측했으나 연 6% 초반대 금리를 제시한 2년물에만 130억원의 매수 주문이 들어오고, 500억원어치 3년물에는 단 한 건의 주문도 들어오지 않았다. 불과 9개월 전인 지난 1월만 해도 2300억원어치 회사채 발행에 7600억원의 주문이 들어왔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회사채를 통한 자금 조달이 사실상 어려워지자 기업들은 제각기 자금 마련에 부심하는 모습이다.

SK㈜는 회사채 대신 단기 자금 조달 수단인 기업어음(CP)을 택했다. SK㈜는 지난 10일 3년물과 5년물 CP를 각 1000억원씩 발행했다. SK㈜가 1년 이상의 장기 CP를 발행하는 것은 처음이다.

CP 금리는 연일 치솟고 있다. CP 금리(91일물)은 22일 기준 5.35%로 전 거래일보다 0.02%포인트 상승했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월(5.37%) 이후 13년 11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SK㈜보다 앞서 SK네트웍스는 44일물 1000억원어치를, 롯데건설은 6개월물 490억원어치를 각각 발행한 데 따른 여파다.

롯데그룹은 대출과 유상증자를 활용했다. 롯데건설은 최근 사옥을 담보로 일본 미즈호은행으로부터 3000억원을 대출받았다. 롯데케미칼·롯데정밀화학·롯데홈쇼핑 등 계열사로부터 각 5000억원, 3000억원, 1000억원 규모로 단기 차입을 단행한 이후 두 번째 긴급 조달이다. 롯데케미칼과 호텔롯데, 롯데알미늄은 주주배정 유상증자로도 롯데건설을 지원했다. 이에 따라 롯데케미칼은 1조1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 중이다.

포스코그룹은 단기차입을 늘리는 역발상을 통해 유동성 확보에 나섰다. 포스코홀딩스의 올해 3분기 말 단기 차입금 및 유동성 장기부채는 15조 3800억원으로 지난해 말 8조8301억원보다 6조6000억원가량 늘었다. 최근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금리가 상승하는 등 자금경색에 대비해 현금을 확보했다. 내년에만 1조 5000억원 규모의 회사채의 만기가 돌아오는 만큼 이를 상환하려면 현금 중심으로 재무 안전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차그룹은 유동성 대응을 위해 현금성 자산 확보에 매진하고 있다. 현대차는 연결기준 3분기 현금 및 현금성 자산 규모가 19조 5850억원을 지난해 말 16조 1294억원과 비교해 53.1%나 늘어났다. 기아 역시 3분기 현금 및 현금성 자산 규모가 14조 8030억원에 달했다. 현대모비스는 10조 9554억원으로 집계됐다. 대신 현대차와 기아 모두 지나 3분기에 세타2 GDI 엔진과 관련한 품질 비용을 영업이익에 반영해 불확실성을 제거했다. 업계는 조지아주 공장과 울산공장, 오토랜드 화성 등에 대한 전기차 공장 투자를 위해 현금을 모으는 것으로 분석했다.

재계 관계자는 “레고랜드 사태 이후 높은 신용 등급의 회사채에도 돈이 몰리지 않아 자칫 흑자 도산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며 “각 기업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현금을 확보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자금 마르고 회사채 막히고…다급한 기업들, 대출·유상증자 돌파구 찾는다 [비즈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