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십년간 우리는 성장전략으로서 효율성 극대화에 온 에너지를 쏟아왔다. 최근의 도전적 상황을 보자. 코로나19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미-중 반도체 패권경쟁에 따라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면서 반도체와 자동차산업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칩과 과학법’만 하더라도 관련기업이 미국에서 보조금 혜택을 받으려면 중국에 신규 투자나 생산라인 업그레이드를 할 수 없게 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연합의 금융 및 경제 제재 패키지를 통한 대응과 에너지공급망에 대한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듯 우리가 겪고 있는 혼돈의 상황은 모두 지리와 경제가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지경학적(Geoeconomics) 관점 없는 효율성 중심의 전략 추구가 예전만큼 유효하지 않을 것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지정학’은 국제관계 연구에서 지리가 국가이익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는 분과다. 지경학은 1990년 루트왁이 지정학과 대비되는 용어로 사용한 이래 2008년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 변화를 기점으로 지정학의 귀환이라는 문구로 회자돼왔다.
보통 강대국 간 갈등을 설명할 때 사용됐던 지경학이 산업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이유는 지정학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에너지, 원자재, 수출 통제 및 제재 등의 경제적 수단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소재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우크라이나-러시아 간 지정학적 긴장으로 인한 공급문제와 중국 경기부양정책의 영향으로 니켈 가격이 2011년 이후 처음으로 2만5000달러대를 돌파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재 및 원료 분야의 경쟁력이 취약한 상황이라 배터리산업의 경쟁력 확보에도 적신호가 켜진 상황이다. 그간 원가절감을 통해 효율성을 확보해왔던 전략에 치중하다 보니 배터리 소재산업의 공급망 관리 및 생태계 유지에는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것이 원인이다.
이렇듯 우군이라 믿었던 상대국가와의 신뢰가 약해지는 한편 자국 보호주의로 인해 무역도 폐쇄적인 환경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국가의 개입과 관리가 타국의 기업에 긍정이든, 부정이든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국가안보 측면에서의 환경적 리스크를 고려해야만 한다. 지난 몇 년간 일본 수출 규제와 맞물려 기술경쟁력 확보와 공급처의 다각화를 통해 의존성을 낮추는 우리의 전략은 어느 정도 실효성을 거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자체 기술경쟁력 확보나 다각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안보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주요 국가들은 공급망 관리를 넘어 공급을 주도하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규범과 생태계를 구축하면서 경제적·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지경학적 관점의 규범들은 아직 견고하지 않은 상태로 기술력의 산업표준인 지배적 디자인을 확보하기 위한 기업 간·국가 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미래 전략자원으로서의 유망산업을 발굴해 보호·육성하는 정책구사와 더불어 정부나 기업 등 단일 주체가 중심이 되는 전략이 아닌 생태계 차원의 전사적인 접근을 통해 지정학적 목표를 달성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공공-민간의 공급망 재편을 위한 움직임이 일부 산업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경학적 리스크를 감소시키고 시너지 창출을 위한 새로운 공급망 구축을 위한 전략이 해외 자원 개발, 신시장 창출, 산업공급망 재편의 새로운 규범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김은선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데이터분석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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