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창극단 ‘작창가 멘토링’ 현장 가보니
젊고 기발해진 창극, 또다른 변화 요구
박정수·서의철·유태평양·장서윤 선발
‘작창의 신’ 한승석·이자람 등 멘토 활동
수년간 연습생 거쳐 K팝 스타 탄생하듯
리듬·음계·악상 등 다듬고 또 다듬어
12월 쇼케이스 통해 신작 창극 무대에
“다시 한 번 들어볼까?”
두 명의 예비 작창가와 일명 ‘작신(작창의 신)’으로 불리는 한승석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교수가 마주앉았다. 신중하고 꼼꼼하게 문장을 해체하고, 단어 하나하나를 곱씹는다. “텍스트의 속뜻을 담으면서 말맛을 살리기 위해 언어를 고르는”(한승석 교수) 과정이다. 가만히 생각에 잠기다가도 멘토 한승석은 직접 소리를 들려주며 방향을 제시한다. 단어 하나, 장단 하나에 작품 속 한 대목이 완전히 달라진다. ‘작신’의 이야기에 ‘작창’에 첫발을 디딘 유태평양은 고개를 끄덕인다. Z세대 예비 작창가 박정수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다. 대사와 착 붙은 마마무의 노래를 인용하고,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tvN) 속 한 장면을 과감하게 패러디한다. 한승석 교수는 “계면 투성이에, 음악적으로 화려한 장식만 생각하지 말고 툭툭 던지며 재미를 만드는 것도 판소리의 중요한 요소”라며 격려한다. 국립창극단의 ‘작창가 프로젝트’의 멘토링 현장. 적재적소를 파고든 ‘말의 향연’이 생각지도 못한 장단과 소리를 만나자, 창극의 한 장면이 만들어진다.
지난 10여년 사이 ‘창극(唱劇)’은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판소리 다섯 바탕을 기반으로 선보이던 ‘전통 창극의 시대’를 지나왔다. 젊어졌고, 기발해졌다. 서양의 고전, 그리스 로마 신화가 창극 안으로 들어왔다. ‘전통의 틀’을 벗어난 현대적 감각이 다시 전통과 조화를 이뤘다. 실험과 도전의 시대엔 ‘새 얼굴’이 필요했다.
오지원 국립창극단 책임 PD는 “창극을 비롯한 전통음악이 요즘의 문화로 사랑받다 보니 새로운 포지션에 대한 필요성도 주목받는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
국립창극단은 “동시대와 호흡할 새로운 작창가”를 찾기 위해 ‘작창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한승석 교수는 “창극의 흐름과 트렌드가 달라지며 새로운 시대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반영할 수 있는 작창가를 요구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립창극단의 가장 큰 고민이 ‘작창가의 부재’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립단체에서 올릴 수 있는 수준 높은 창극을 만드는 작창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작창가 프로젝트’는 지난해 12월 신청자 모집과 함께 시작됐다. 14명의 지원자 중 선발된 네 명의 신진 작창가는 박정수, 서의철, 유태평양, 장서윤이다. 이들 네 사람은 서류 심사와 면접을 보고 합격했다. “더 뽑고 싶은 지원자가 많았지만 꾸준히 이어갈 프로젝트이기에 다음을 기약했다”고 오 책임PD는 귀띔했다.
선발 기준이 된 것은 세 가지다. “작창에 대한 열정”을 먼저 봤고, “그간 해온 작업”과 “창작 작업 영상”을 통해 심사를 거쳤다. 오 책임PD는 “네 사람 모두 자신들의 작업을 하면서도 작창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배운 적이 없고, 스스로의 확신 없이 작업을 이어오고 있었다”고 말했다. 작창가 프로젝트는 예비 작창가들에게 새로운 직업의 이름을 부여하고, 책임감을 키우는 과정이기도 했다.
국립창극단의 ‘작창가 프로젝트’는 다음 세대를 내다본 ‘백년지대계’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국립창극단 규모의 작품을 할 수 있는 작창가를 양성”하고, “신진 작창가들의 작품 활동 기반 마련”한다. “작창의 포지션 브랜딩”도 중요한 목표다.
그런 만큼 프로젝트 자체가 굉장히 체계적이고, 전문적이다. 안숙선 명창이 고문으로 함께 하고, 창극계를 이끄는 네 명의 창작자인 연출가 고선웅, 작가 배삼식, 작창가 한승석 이자람이 멘토로 참여했다. 지난 2월 예비 작창가와 멘토들의 첫 모임 이후 큰 틀에서의 수업을 진행했고, 6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작창에 돌입했다. 각각의 멘토가 담당하고 있는 분야가 다르다. 프로젝트는 마치 한 명의 연습생이 수년의 트레이닝 기간을 거쳐 K팝 그룹으로 데뷔하는 과정과도 닮았다.
한승석 교수는 ‘실전 작창’의 트레이닝을 담당한다. 작창은 창극에서 한국음악의 장단과 음계를 기반으로 극의 흐름에 맞게 새로운 소리를 짜는 작업을 말한다. 판소리를 바탕으로 한 ‘창극’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교수는 고작 두 세 대목에 두 시간이나 할애할 정도로 수업 과정이 꼼꼼하다. 예비 작창가들이 짜온 소리를 들으며 A부터 Z까지 세심한 멘토링을 진행한다. 실전 작창 수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피드백은 “어색하다”는 이야기다.
한 교수는 “판소리는 노래 가사로 만든 음악으로, 가사가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다”며 “그 텍스트가 품은 철학적 주제나 행간의 의미에 맞게 음악화하는 것이 핵심인데, 그것에 맞지 않으니 어색하다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작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텍스트가 가진 상황과 정서를 장단(리듬), 길(음계), 성음(악상)의 세 가지 음악적 수단을 통해 자연스럽고 적절하게 표현”(한승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비 작창가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작창은 고도로 전문화된 분야이기 때문이다. 한 교수는 “판소리의 음악세계는 너무나 오묘하고 깊고 복잡하다”며 “같은 국악인이라 하더라도 판소리의 복잡다단한 붙임새와 시김새, 음악적 변화를 온전히 꿰뚫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작창은 ‘소리꾼’만이 할 수 있고, 소리꾼이 쌓아온 수십년의 세월로 완성된다. 한 명의 작창가는 온전히 그 사람의 역사이기도 하다. 한 교수는 “한 사람이 수십 년을 파고들지 않는 이상 붙임새, 시김새 등의 디테일을 파악할 수 없다”며 “판소리 작창에 있어선 수많은 디테일이 들어가 있어야 판소리스러워진다. 그 디테일은 판소리꾼이 아니면 흉내내기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작창을 이른바 ‘노가바’, 즉 ‘노래 가사 바꿔부르기’로 치부하는 것은 그야말로 ‘일반화의 오류’다. “작창은 창극의 퀄리티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작창은 설익으면 유치해지고, 한 끗 차이로 예술이 된다”(오지원 책임PD).
‘작창가 프로젝트’에선 전통과 현대적 감각이 조화를 이룬 미래의 작창가를 양성하는 데에 방점을 둔다. 오 책임PD는 “창작 창극에선 완전히 새롭게 만드는 장단도 있지만, 전통의 틀안에서 가져와 어떤 선율이나 리듬으로 변형하느냐가 중요하다”며 “지금의 창극은 전통적이면서도 전통에 갇히지 않은 동시대 음악을 전달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닌 ‘오늘의 창극’을 해온 국립창극단의 지향점과도 닿아있다.
한 교수는 “국립창극단 이외에도 재야에선 젊은 친구들을 통해 다양한 창작 창극이 시도되고 있다. 작창가 프로젝트가 국립창극단의 창극 작업을 할 수 있는 작창가를 훈련하고 양성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고 봤다. 오 책임PD는 “국립창극단은 공연계에서 1인 판소리를 하거나 소규모로 창작 창극 활동을 해온 새로운 세대의 작창가들에게 브릿지 역할을 하려고 한다”며 “이들이 국립창극단을 통해 보다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언덕을 제공해 건강한 생태계를 다지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차세대 작창가들은 각각 네 명의 작가(김민정, 김민정, 김풍년, 이철희)와 짝을 이뤄 신작 창극을 선보인다. ‘작창가 프로젝트 쇼케이스’(12월 11~12일)를 통해서다. 오 책임PD는 “네 명의 작창가 중엔 지금 바로 정규 작품에 들어와도 될 만큼 성장한 참가자도 있지만, 신진 작창가들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실패 위험을 낮추고, 단계별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훈련과 협업을 시도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