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 사실상 단독 입찰자 나서
성사시 단숨에 전지소재 기업으로 도약
투자확대로 중국·대만 기업 추월 가능성
예상인수가 2030년 투자재원의 75% 수준
그룹 脫유통 트리거 전망
[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 롯데그룹의 화학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이 동박생산 업체인 일진머티리얼즈 인수에 단독 입찰자로 나선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과, 딜 성사 여부, 업계 재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롯데케미칼이 일진머티리얼즈를 품을 경우 단숨에 세계 4위 동박 사업자가 되고, 이로써 명실상부 전지소재 기업으로 도약하게 된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22일 “당사는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관련 본입찰 단계에 참여했다”며 “이와 관련해 향후 구체적인 사항이 결정되는 시점 또는 1개월 이내 재공시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롯데케미칼은 2030년까지 전지소재 부문에 4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현재 일진머티리얼즈의 몸값이 3조원 정도로 거론되고 있어 이 수준으로 가격이 정해진다면 투자 재원의 75% 가량을 여기에 쏟아붓는 셈이다.
일진머티리얼즈는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의 차남 허재명 사장이 운영하는 동박 제조업체다. 전량 수입에 의존해왔던 PCB(인쇄회로기판)용 동박(copper foil)을 국내 최초 개발하는 등 우리나라의 동박 원조 기업이다.
동박은 머리카락 두께 15분의 1 정도의 얇은 구리막으로 그동안은 각종 전자·전기 제품의 핵심 부품인 PCB 제조에 주로 사용돼왔지만, 최근에는 이차전지용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배터리의 핵심 소재로 각광을 받고 있다. 통상 스마트폰에는 동박이 5g 가량 들어가는데, 전기차에는 대당 30~40㎏이 필요해 이차전지가 동박의 새 부흥기를 열고 있는 상황이다.
동박은 이차전지 음극집전체로 전기화학반응에 의해 발생하는 전자를 모으거나, 전기화학반응에 필요한 전자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극도로 얇으면서도 내구성 있게 만드는 것이 핵심 기술이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다. 10여년 전만 해도 일본 업체들이 세계시장의 과반을 차지했지만 중국 업체들이 저가 동박을 생산하고 우리 기업들도 고품질 동박에 진출하면서 한·중·일 3강 구도가 형성됐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전세계 동박시장 점유율(작년 기준) 1위 기업은 SKC(SK넥실리스)로 전체의 22%를 차지하고 있고, 그 뒤를 중국의 왓슨(19%)과 대만의 창춘(18%)를 잇고 있다. 일진머티리얼즈는 13%로 4위다. 일진머티리얼즈를 롯데케미칼이 인수하면 동박 설비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가 예상돼 왓슨과 창춘을 넘어 SKC와도 자웅을 겨룰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롯데케미칼의 동박 시장 진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롯데케미칼의 관계사인 롯데정밀화학은 국내 3위 동박업체인 솔루스첨단소재에 2900억원을 투자했다. 이밖에도 롯데케미칼은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 등 이차전지 4대 소재 사업 진출을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지난 1월에는 바나듐이온 배터리 업체인 스탠다드 에너지에 650억원을 투자, 15%의 지분을 확보했다. 바나듐이온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와 달리 물 기반 전해액을 사용, 발휘 위험성이 원천 차단된 고안전성 전지다. 지난 4월에는 미국의 리튬메탈 음극재 개발 스타트업인 소일렉트와 합작사 설립에 나섰으며, 지난달에는 롯데알미늄과 함께 미국 내 최초로 양극박 생산기지 설립 계획도 발표했다. 양극박은 이차전지 용량·전압을 결정하는 양극활물질을 지지하고 전자의 이동통로 역할을 한다.
한편, 롯데그룹은 거대 유통사업자를 넘어 차세대 화학사업자로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 지난해 롯데그룹 매출 중 화학사업군 비중은 33%로 유통사업군(27.5%)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롯데케미칼이 일진머티리얼즈를 인수할 경우 이같은 역전 현상은 더 가속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