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콜롬비아레코드사가 발매한 유성기 음반이 한 장 있다. 이일선이라는 가수가 가야금 연주에 맞춰 취입한 ‘이팔청춘가’라는 신민요 음반이다. 사람들의 귀와 입을 통해 구비전승으로 전해오던 민요가 레코드판을 만나면서 그 전승과 전파에 큰 변혁이 이뤄지는 시대였다. 이팔청춘가의 한 소절 ‘치어다보느냐 안창남 비행긔 굽어살피니 엄복동이로다’라는 노랫말에 눈길이 간다.
민요의 노랫말은 즉흥적으로 창작돼 불리는 것이 제맛이지만 실존 인물이 노랫말에 등장하는 일은 흔한 경우가 아니다. 이 레코드판이 발매된 시기는 일제강점기였음에도 조선인 안창남과 엄복동은 그 시대 사람들의 전설이자 영웅으로 노래되었다.
시간이 흘러 1930년대 라디오방송 만담에도 단골 소재였고 1950년대에 발간된 신구잡가 가사집에서도 ‘처다보아라 안창남 비행기 내려다 보느냐 엄복동이로다’라고 채록됐다. 근래에 수집된 충남 공주의 ‘집터 다지는 소리’(밀고 댕기고 쿵쿠 다지구 떳다 봐라 안창남 비행기)와 전남 영암의 ‘모심기 소리’(떴-다 보아라 안창남 비행기 헤헤에로사-뒤여)에서도 안창남의 비행기는 여전히 하늘을 날고 있었다.
이쯤 되면 전설이 된 그 행사와 영웅이 된 주인공을 찾아가볼 필요가 있겠다. 100년 전 1922년 12월 10일 한 대의 비행기가 경성(지금의 서울) 하늘을 날아올랐다. 땅 위의 사람들은 시선을 하늘로 향한 채 환호했고 하늘에서는 비행기에서 뿌린 오색의 전단지가 흩날리며 반짝였다. 비행기의 이름은 ‘금강호’였고 비행사는 안창남이었다. 이른바 안창남의 ‘고국 방문 비행’이라는 기념비적인 행사가 있었고, 그는 조선인 최초로 조국의 하늘을 비행한 인물이었다.
금강호는 여의도 비행장을 이륙해 마포, 공덕, 독립문, 평동, 경복궁, 안국동, 창덕궁, 창경궁, 종묘, 동대문, 광희문, 을지로, 남대문, 광화문, 종로, 서대문을 선회하고 여의도 비행장에 착륙한다. 며칠 후 안창남이 ‘개벽’지(제31호, 1923년 1월 1일)에 기고한 ‘공중에서 본 경성과 인천’이라는 글에서의 소회는 이렇다.
“경성의 한울! 경성의 한울! 내가 어떠케 몹시 그리워 햇는지 모르는 경성의 한울! 이 한울에 내 몸을 날리울 때 내 몸은 그저 심한 감격에 떨릴 뿐이엇습니다. ...(중략)... 남대문이 눈에 보일 때 나는 오래간만에 돌아오는 아들을 대문 열어노코 기다리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것 가티 ‘오오 경성아!’하고 소래치고 십게까지 반가웠습니다.”
안창남의 고국 방문 비행은 우리 역사에서 의미 있는 사건이다. 조선인으로 처음 조선 하늘을 날았다는 것 그 자체가 우리 항공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다. 또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패배감을 떨쳐내고 스스로 미래를 그려볼 계기를 마련한 점도 높게 평가된다. 안창남은 이 비행을 통해 삶의 궤적을 크게 바꾸게 된다. 고국 방문 비행 이전의 삶이 인기 비행사라는 ‘아이돌’의 삶이었다면, 이후에는 항공을 통한 조국의 독립운동에 투신한 ‘히어로’의 길을 걸었다. 하늘의 영웅들을 다시 생각해본다. 안창남과 금강호는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우리들의 가슴 속을 선회하는 어벤저스이자 공중용사(Aero-Hero)다.
안태현 국립항공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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