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일 산업부 재계팀장
“회장님과 CEO(최고경영자)분들 일어나주시겠습니까”
지난해 5월 한미 정상회담 후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삼성, SK, 현대차 등에서 투자를 해주기로 약속했다. 자리에 계시면 잠시 일어나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일어서자 바이든 대통령은 “감사하다”는 말을 3번이나 반복하면서 박수를 보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런 투자는 수천 개의 좋은 일자리를 만들 것이며 우리는 함께 대단한 일을 할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44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자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 내내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이로부터 1년 뒤인 오는 21일 바이든 대통령과 국내 주요 기업들이 재회할 예정이다. 이번 장소는 한국이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을 맞아 한미 정상회담과 함께 그룹 총수들이 바이든 대통령을 직접 맞는다.
그룹들은 이번에도 미국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약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외신들은 현대차그룹이 미국 조지아주에 약 9조원 규모의 전기차 공장을 건립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3월 미국 애리조나주 퀸크릭에 1조7000억원을 투자해 원통형 배터리 신규 공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한미 최고 협력 사례’로 꼽힌 SK실트론은 3억달러(약 3700억원)를 투자해 미시건주에 공장을 증설한다. 롯데는 미국 뉴욕주 시러큐스에 있는 미국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바이오의약품 공장을 약 2000억원에 인수했고 추가 투자도 예정돼 있다.
글로벌 반도체·전기차·배터리·바이오 시장이 급성장 중인 가운데 기업들이 최대 전략적 요충지인 미국에 투자를 확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단 이를 마냥 긍정적으로 보지만 않는 시선도 있다. 국내 일자리를 늘리고 경제를 살찌울 투자금이 미국에 집중된다는 지적이다. 국내 기업들을 위한 미 정부의 규제완화나 세제혜택마저 개선되지 않는다면 일방적 지원이란 비판도 거세질 수 있다.
대표적 규제는 2018년 5월 발표된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다. 특정 수입 품목이 미국의 국가 안보에 위해가 된다고 판단될 경우 대통령의 수입량 제한, 관세부과 권한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국내 철강업계가 미국 수출에 타격을 받았고, 이 조항은 자동차 대상의 25% 고율 관세 부과 검토 근거가 되기도 했다. 63조원 이상의 미국 반도체 지원책을 두고 인텔은 미 정부에 ‘자국 기업 우선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삼성전자에 반도체 1위를 내준 인텔의 안방 견제다. 삼성전자는 이미 20조원을 투입해 일자리 2000개 창출이 예상되는 미국 반도체 공장 착공을 앞두고 있다. 이에 삼성전자는 미 상무부에 정식으로 ‘공평한 인센티브 경쟁’ 입장을 제출하기도 했다.
미국 주도로 추진되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도 한국이 참여를 확정해 중국과의 긴장 관계 조성도 예상된다. 중국은 대놓고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중국과의 사업 비중이 큰 국내 기업에는 적잖은 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번 회담으로 한미 동맹은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바이든 대통령의 ‘감사 인사’ 이상의 화답이다. 이제는 우리 기업이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땡큐!’를 세 번 외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