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한때 2인자…김정일에게 후계싸움 밀려

1993년 복귀했지만 권한 없는 원로 한계

북한 김일성 주석의 동생 김영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이 101세로 사망했다. 자료사진. [연합]
북한 김일성 주석의 동생 김영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이 101세로 사망했다. 자료사진. [연합]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북한 김일성 주석의 동생인 김영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이 101세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5일 “김정은 동지께서는 김일성훈장, 김정일훈장 수훈자이며 공화국영웅인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 김영주 동지의 서거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시해 화환을 보내시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어 “김영주 동지는 당과 국가의 중요직책에서 오랫동안 사업하면서 당의 노선과 방침을 관철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투쟁했으며 사회주의 건설을 힘 있게 다그치고 우리 식의 국가사회제도를 공고발전시키는 데 공헌했다”고 평가했다.

김영주는 1920년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나 일제시기 빨치산 활동을 하다 해방을 앞두고 소련으로 입국해 모스크바종합대학을 다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영주는 1960년만 해도 형 김 주석에 이은 명실상부한 2인자였다.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비서를 지내면서 북한 권력 핵심인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맡기도 했다.

1972년 남측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함께 ‘상부의 뜻을 받들어’ 7·4 남북공동성명에 서명했으며 성명 이행을 위해 설치된 남북조절위원회 공동위원회 북측 위원장을 역임했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 김일성 주석이 자신의 후계자로 아들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내정하면서 김영주의 위상은 급추락했다.

1973년 9월 김영주가 당 조직지도부장에서 해임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임을 맡은 것은 상징적인 장면이다.

그는 이듬해까지 잠시 정무원 부총리를 맡기도 했으나 김정일 국방위원장 후계체제가 본격화하면서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고 자강도 강계로 일가족과 함께 사실상 유배됐다.

김영주는 이후 김일성 주석이 죽기 1년 전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권력 장악을 확고히 한 1993년 국가 부주석과 정치국 위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돼 20년 만에 복귀했지만 실질적 권한이 없는 원로에 불과했다.

북한 관영매체가 보도한 그의 마지막 공개활동은 2015년 7월 지방의회 대의원 선거 투표였다.

조선중앙TV는 김영주가 투표를 마친 뒤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사진을 향해 절하는 모습을 방영했다.


shindw@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