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최근 모집 ‘디스커버리 연구반’ 활동 시작
사법행정자문회의에 보고 예정…제도 도입 기반
재판 전 서로 증거공개…기업사건 등 소송환경 달라져
“충분한 증거조사 통해 1심 충실…항소율도 낮아질 듯”
일각서는 비밀유출 우려…전문가들은 “보호 가능” 반박
[헤럴드경제=안대용 기자] 대법원이 소송 전 증거조사 제도인 ‘디스커버리’ 도입 여부를 살펴보기 위해 연구반을 구성하면서 검토 작업에 착수했다. 제도가 도입될 경우 기업이 공개하지 않았던 자료가 법원에 제출되기 때문에 소송 환경이 크게 달라진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13일 대법원에 따르면 법원행정처가 지난달 모집한 디스커버리 제도 연구반 활동이 최근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0명으로 이뤄진 연구반원은 법관이 주를 이루고 변호사, 교수가 포함돼 있다. 현재 활동 방향이 정해진 건 아니지만, 사법행정 사무와 관련해 대법원장을 자문하는 사법행정자문회의에 향후 활동 결과를 보고할 예정이다.
지난 8일 열린 사법행정자문회의 17차 회의에선 디스커버리 도입 여부에 대한 논의 필요성이 안건에 올랐다. 디스커버리가 도입되려면 민사소송법 개정이 필요한데, 대법원이 연구를 거쳐 제도 도입에 관한 구체적 입장을 내놓을 경우 무게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제도 도입의 기반이 놓인 셈이다.
소송 전 증거조사 제도로 흔히 설명되는 디스커버리는 미국, 영국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양측 당사자가 증거를 서로 공개해 쟁점을 명확히 하는 절차다. 이미 오래 전부터 법원과 변호사 업계에선 도입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특히 민사사건 중에서도 대기업이나 국가기관, 의료기관 등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유의미한 증거 확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제도가 시행되면 소송환경이 크게 바뀌게 된다.
제조물 책임법 전문가인 법률사무소 나루의 하종선 대표변호사는 “예를 들어 디스커버리 제도가 있는 미국에서 자동차 결함 문제 같은 제조물 책임 소송을 하게 되면 기업이 설계도면, 설계를 변경한 이유나 내역 등을 다 내야 하고 관련자들에게 물을 수도 있다”며 “재판에 들어가기 전 이런 부분이 폭넓게 허용돼 충분한 증거조사를 할 수 있게 되고 실체적 진실 발견에 충실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로 약점 같은 것도 드러나게 되기 때문에 디스커버리가 끝날 무렵에는 합의해야 겠다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기도 한다”며 “불필요한 재판의 경우 끝까지 가지 않고서 분쟁이 마무리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증거조사가 충실해지는 만큼 민사 1심 판결에 대한 항소율이 자연스럽게 낮아질 것이란 분석이 많다. 올해 9월 발간된 ‘2021 사법연감’에 따르면, 동일인의 과다소송 건을 제외하고 지난해 1심 민사 합의부의 전체 판결 건수는 총 2만3632건이었다. 이 가운데 1만288건이 항소돼 43.5%의 항소율을 보였다. 하 변호사는 “증거조사를 마음에 흡족하도록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판결에 불만이 생기고 40% 넘는 항소율을 보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분석은 법원에서도 나왔다. 김형두 법원행정처 차장은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이던 2019년 서울대 ‘법학평론’에 게재한 ‘새로운 법조인 양성 체제하에서 미국식 디스커버리의 도입 방안’ 논문에서 “점점 더 많은 사건들이 항소되고 있는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은 1심에서 증거조사가 충분하고 철저하게 시행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디스커버리 도입을 주장했다.
김 차장은 논문에서 “디스커버리를 도입하면 부실한 증거조사가 1심 판결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고 항소심에서 추가 증거조사를 하는 일이 누적돼 사건이 장기화되면서 법원의 부담이 늘었던 전반적 악순환 고리를 해소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선 디스커버리 제도를 시행하면 기업비밀이 유출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제기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미국·영국 등에서 이미 이 제도가 널리 활용되고 있어 한국의 상당수 기업들이 이미 준비가 돼 있는데다가 민사소송법, 특허법 등으로 영업비밀 보호가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게다가 미국에선 관련 내용을 다 공개하면서 국내 소송에서 같은 내용을 공개하지 못한다는 건 모순이란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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