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경비 파견업 넘어…전직원 정규직

매출 1조5679억원 아웃소싱 업체로

명함은 궂은일 하는 직원에 주는 원동력

고용안정·소속감에 일하는 자세 달라져

회장은 대표책임사원, 아줌마는 여사님

호칭 바꾸니 상관 부하직원 개념 없어져

반도체장비 세척·관련부품 운반 지원 등

인수·설립…중국·멕시코·베트남 진출도

“명함 한장, 그게 다른 사람들에겐 별 게 아닌 거 같지만 우리 여사님, 선생님들에게는 뜻 깊어요. 같은 일을 해도 일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구자관(76) 삼구아이앤씨 대표책임사원은 3만8654명에 달하는 전직원에게 명함을 나눠준다. 아예 명함을 담당하는 부서를 별도로 뒀다. 회사에서 직원 개인에게 명함을 만들어주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인력 아웃소싱 업체라면 얘기가 다르다. 건물 곳곳을 청소하는 청소부나 야간 순찰을 도는 경비원 등이 명함을 내밀 일이 잘 없기 때문이다.

구 대표는 “사실 처음엔 한통에 2만원씩 주고 명함을 파 주느니 차라리 그 돈을 직접 나에게 달라는 직원들도 많았지만 명절 때나 가족 행사 때 주변 사람들에게 명함을 내밀어본 직원들은 하나같이 고마워한다”고 전했다.

명함은 세간의 편견을 이겨내고 산업 현장 뒷 편에서 묵묵히 궂은 일을 하는 삼구아이앤씨 직원들이 안심하고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4만명에 육박하는 삼구아이앤씨 전직원이 모두 정직원이기 때문이다.

매년 공채로 10~20명의 직원들을 뽑고 있고 모든 임원도 외부 영입 인사 없이 공채 출신으로 구성됐다.

중간에 계약을 해지하거나 해고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드물다. 대신 정년 퇴임 때에는 집에서 파티를 열고 꽃다발을 전달한다. 일용직이나 계약직일 경우엔 넘기 힘들었던 은행 문턱도 낮아졌다. 그는 “회사에서 삼구아이앤씨 소속의 직원이라는 증명을 해주니 1000만원 이하의 소액 정도라면 쉽게 빌릴 수 있어 한 푼이 아쉬운 분들에겐 큰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최소한의 관리 인력을 제외하면 대부분 계약직이나 일용직을 운영하는 아웃소싱 업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사실 모든 직원을 정직원으로 고용하면 4대 보험료나 퇴직금 등 회사 부담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용이 안정되면 직원들이 같은 월급에 일은 최소한으로 하려고 요령을 피울 것이라는 게 흔한 생각이다. 그러나 삼구아이앤씨 직원들이 보여준 진짜 현실은 달랐다.

담당하는 현장이 수시로 바뀌는 인력 아웃소싱 업계 특성 상 두 업체가 맡은 현장을 바꾸는 경우가 흔하다. 이 경우 담당 직원들에게 새 업체 소속으로 맡은 현장에서 그대로 일할지 다른 현장으로 옮길지 선택권을 주는데 삼구아이앤씨 직원 대부분은 여러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삼구 직원으로 남기를 원한다.

그는 “다른 업체에 속해있던 직원들도 삼구 유니폼을 입은 이후로 날이 갈수록 근태나 일을 대하는 적극성이 높아져 현장의 분위기도 좋아지고 원청 업체의 평가도 좋아졌다”고 전했다.

그가 사장이나 회장이라는 호칭 대신 대표책임사원이라는 호칭을 쓰는 것은 자신과 모든 직원이 동등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각자 맡은 일이 다를 뿐 모두 회사에 기여하는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경영철학은 지독히도 어렵고 불운했던 그의 젊은 시절과 직원들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1944년 양계장 집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그의 유년 시절은 부유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집안이 기울어 외갓집에 의탁했다. 어렵게 다닌 초등학교도 월사금을 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천막학교에서 중학 과정을 간신히 마쳤다. 아버지는 큰 형만 공부시키겠다고 선언했지만 동대문 공장에서 일하며 용문고등학교 야간부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청소 대행업체를 차린 건 제대 직후인 1968년이다. 자릿세를 마련하지 못해 구두닦이도 할 수 없었던 그가 찾은 일감은 식당 화장실 청소였다. 산업화가 막 시작된 당시 직장인을 겨냥해 우후죽순 생긴 식당 사장들을 붙잡고 “내가 궂은 일을 하겠다”고 애원했다.

구 대표는 “‘사람’, ‘신용’, ‘신뢰’를 갖춰야 식당 열쇠를 받아 사장들 대신 청소를 할 수 있다고 해서 지은 회사 이름이 ‘삼구(三具)개발’”이라고 설명했다.

1986 아시안게임과 1988 서울올림픽에서 청소 일을 따내며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는 듯 했다. 그러나 서울 신대방동에 5층짜리 사옥을 사들인 지 1년만인 1997년 이번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라는 위기에 봉착했다. 이때 회사를 살린 것은 직원들이었다. 사무실 직원들이 직접 경비복을 입고 청소 도구를 들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가진 주식 47%를 직원들에게 고루 나눠줘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이때다. 구 대표는 “지금도 우리 가족들은 회사 지분에는 1원 한 장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업체에선 ‘아줌마’, ‘아저씨’라고 천시하던 호칭도 ‘여사님’, ‘선생님’이라고 바꿨다. 상관과 부하직원의 개념도 없어졌다. “우리 삼구이앤씨에 남은 것은 1000억, 1500억원의 이익이 아니라 하나로 뭉친 삼구 가족이라는 자산”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직원들의 사기가 오르니 삼구아이앤씨는 ‘인력소싱업체의 삼성’으로 불릴 정도로 업계에서는 규모가 큰 기업이 됐다.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규모는 1조5679억원, 인력을 파견하는 곳만 561개기업 2002개 현장에 달할 정도다.

삼구이앤씨는 청소나 경비 등 인력 파견업을 넘어 아웃소싱 업계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단순 청소 경비 인력 파견 뿐 아니라 반도체 장비 세척, 관련 부품 운반 등 지원 업무까지하고 있다. 지난 2019년에는 중국 창저우에 반도체 웨이퍼를 생산하는 지사를 설립했고 베트남 진출 국내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호치민 현지의 아웃소싱 업체 맛바오 BPO를 인수하기도 했다. 현재는 멕시코와 인도네시아, 미얀마에 진출할 계획을 갖고 있다.

구자관 대표는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자랑스러운 것이 있다면 그동안 직업으로 인정도 받지 못하고 천하고 보잘것 없는 일로 취급 받았던 청소를 6만5000개의 회사가 운집해 있는 하나의 산업 구조로 만든 것”이라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원호연 기자·사진=박해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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