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수표’ 상장 후 유망기업 M&A
美서 올해 2달새 580억 달러 모아
작년 연간모금액 780억 달러 추월
부자·금융인·유명인 참여도 잇따라
서류상 회사(페이퍼컴퍼니)인 ‘특수목적합병법인(스팩·SPAC)’ 열풍이 좀처럼 식지 않을 기세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자자들의 열망에 지난 한달 새 무려 1090억 달러의 거래가 스팩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스팩은 투자자를 공개 모집한 뒤 주식시장에 상장하고 그 자금으로 비상장사를 인수·합병(M&A) 헌다. 복잡한 절차 없이 손쉽게 비상장 우량기업을 상장기업으로 만들 수 있다.절차가 일반적인 기업공개(IPO)와는 반대여서 하기 때문에 ‘백지수표 회사’로도 불린다.
글로벌 증시에서 스팩은 최근 IPO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주력 상장으로 부상했다. IPO 뒤 주가가 폭등하는 흐름이 이어지면서 투자자들도 열광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정보업체 리피니티브에 따르면 지난달에만 50건의 거래가 스팩을 통해 성사됐다. 스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미국에서만 올들어 스팩을 통해 모집한 자금은 580억달러에 달한다. 지난 한해를 통틀어 모집한 자금이 780억달러였음을 감안하면 엄청난 속도다.
잠재력이 큰 신생회사를 확보하려는 스팩의 경쟁도 치열하다. 지난달 이뤄진 가장 큰 거래는 테슬라의 대항마로 여겨지는 ‘루시드모터스’와,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스팩인 ‘처칠캐피털Ⅳ’의 합병이다. ‘처칠캐피털Ⅳ’은 마이클 클라인 시티은행 전 최고경영자(CEO)가 세운 스팩이다. 합병법인 상장시 루시드모터스의 시가총액은 240억달러(약 26조6000억원)로 추정된다.
에어택시 개발회사 ‘조비(Joby)’도 스팩을 통해 우회상장한다. 조비는 링크드인 공동 창업자 리드 호프만과 비디오 게임사 징가 설립자 마크 핀커스 등이 투자해 설립한 ‘리인벤트 테크놀러지 파트너스’와 합병할 예정이다. 상장에 성공하면 기업가치가 66억달러(약 7조 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조비의 경쟁사인 아처항공(Archer Aviation)도 미국 억만장자 투자자 켄 모엘리스가 지원하는 스팩과 합병한다. 38억 달러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헬리콥터 사업을 하는 블레이드도 스팩과의 합병에 나섰다.
미국 마케나 캐피탈 매니지먼트의 자산 책임자인 잭슨 가튼은 “과거에 SPAC는 ‘더러운 4글자’로 불렸지만 지난 몇 년 간 큰 변화가 생기면서 오명은 어느 정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스팩 열풍에 설립자의 면면도 다양하다. 억만장자 헤지펀드 매니저 빌 아크만부터 테니스 챔피언 세레나 윌리엄스, 래퍼 제이지 등 유명인들도 잇따라 스팩에 뛰어들었다.
스팩이 유망한 기업을 잘 골라 투자한다면 상당한 투자 수익이 가능할 수 있다. 반면 스팩이 M&A한 기업이 증시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 투자자는 원금을 잃을 수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스팩 자본시장 책임자인 워렌 픽스머는 “스팩 열풍은 상장을 원하는 기업들에게는 해결책이 될 수 있는 만큼 최근의 현상을 거품이라고만 말하기도 어렵다”고 진단했다.
밥 다이아몬드 전 바클레이즈 최고경영자(CEO)는 “스팩이 오래된 (기업공개) 시스템을 방해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자본시장의 놀라운 깊이와 유동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한희라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