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시행할 대책보다 장기적인 정책 방향 제시 그쳐
로드맵 없이 주 5일 근무제 ‘유도’…뜬구름 잡는 얘기
인력충원 배송수수료 노사간 입장차 커 합의 난망
핵심문제 ‘택배기사 과로 방지 대책 협의회’로 떠넘겨
[헤럴드경제=김대우 기자] 정부가 택배노동자 보호를 과로방지 대책을 내놨지만 당장 시행할 수 있는 방안보다는 정책방향을 제시하는데 그쳐 ‘맹탕’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올해들어 택배노동자 과로사가 13명을 넘어서는 등 하루가 급한데 구체적인 로드맵도 제시하지 않은 채 토요휴무제 등 주5일 근무제를 유도한다는 “뜬구름 잡는 얘기”만 쏟아냈다는 비난이 들끓고 있는 것이다.
13일 관계부처와 택배업계 등에 따르면 고용노동부와 국토교통부, 공정거래위원회는 전날 ‘택배기사 과로 방지 대책’을 발표했으나 핵심 내용이 장기적인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수준이어서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오기까지 적지 않은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주 5일 근무제 도입 방안의 경우 배송량, 지역 배송 여건 등을 고려해 노사협의를 거쳐 토요일 휴무제 등 작업체계 확산을 ‘유도’할 것이라고만 발표했다. 정부의 역할을 ‘유도’로 제한한 것은 택배사가 반발할 경우 주 5일제 도입이 쉽지 않을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현재 택배기사의 하루평균 작업시간은 12.1시간에 달한다. 주 6일 근무제를 고려하면 주당 작업시간이 72시간을 넘는다는 얘기다. 정부는 대책을 통해 하루 작업시간 한도를 택배사별 여건에 따라 정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라며 택배기사의 분류, 집화, 배송을 포함한 하루 작업시간을 10시간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가능한 예로 제시했다.
하지만 문제는 택배 물량의 증가추세를 고려할 때 인력충원 없이는 현실적으로 택배기사의 작업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택배기사 인력 충원 방안은 제시하지 않고 다음달 구성될 ‘택배기사 과로 방지 대책 협의회’의 논의 과제로 넘겼다. 협의회는 택배기사와 택배사 단체뿐 아니라 소비자 단체, 대형 화주, 국회, 정부,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기구라 합의가 쉽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택배기사들이 과중한 업무의 주원인으로 지목해 온 분류작업 문제에 대해서도 명확한 지침을 내놓지 못했다. 택배기사 1인당 분류작업에 드는 시간은 하루 3~4시간에 달한다. 정부는 노사 의견수렴을 거쳐 분류작업을 명확화·세분화하는 방안을 제시한 정도다.
정부가 이날 발표한 대책에는 배송 수수료 인상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도 포함되지 않았다. 이 문제 역시 택배기사 과로 방지 대책 협의회로 떠넘겼다. 정부는 배송 수수료를 포함한 가격 구조 전반의 개선 방안을 사회적 논의를 거쳐 추진한다는 방침이지만, 노사간 입장차가 워낙 커 합의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택배 운임 하락은 몇몇 주요 택배사의 가격 경쟁에 따른 결과로, 인위적 조정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택배 운임 인상을 얼마만큼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의문사항이다.
정부는 이날 택배기사 보호 방안을 포함한 ‘생활물류서비스법’을 연내 제정하고, 공포 이후 1년이었던 법 시행 시점도 공포 이후 6개월로 앞당기겠다고 발표했지만 제1야당인 국민의힘에서 소극적인 반응이어서 국회통과 여부가 여전히 불확실하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 대해 “당장 택배노동자들이 죽어나가고 있는데 정부의 과로방지 대책은 장기적인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일부는 택배업계에 대한 권고 수준에 머물러 실효성이 의문스럽다”며 “택배기사 과로 해결을 위한 보다 실질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