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기업 경영정상화 자율성에 힘실어

조단위 펀드 보유 대형 PEF 운용사, 두산그룹·대한항공 흑기사

[헤럴드경제=김성미 기자]올 들어 코로나19로 경영정상화가 어려워진 그룹사들이 사업 및 자산 매각에 나서면서 매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두산그룹 및 대한항공이 대표적이다. 두산그룹은 3조원의 자구안을 이행하기 위해 두산솔루스, 두산모트롤BG, 클럽모우CC, 네오플럭스 등 알짜 사업·자산 매각에 속도를 냈다. 대한항공도 마찬가지다. 눈물을 삼키고 알짜 사업인 기내식·기내면세 사업 등을 매각해 2조원을 마련했다.

▶정부, 시장 주도 구조조정 지원 = 그룹사의 자구안 이행은 글로벌 금융위기 등 과거에도 있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정부의 스탠스가 바뀌었다고 입을 모았다. 연합자산관리(유암코) 관계자는 “KDB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이 그룹의 유동성을 지원해주는 역할은 똑같다”며 “다만 자금 투입이라는 이유로 그룹의 경영에 간섭하는 일은 지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룹에서 직접 자구안을 마련, 이를 직접 실행하도록 자율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평가다.

산업은행이 지난해 구조조정 전담 자회사 KDB인베스트먼트를 출범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산은은 정책금융 본연의 역할에 집중하고 기업의 경영정상화는 KDB인베스트먼트뿐만 아니라 시장에 맡긴다는 전략”이라며 “그동안 자금 지원으로 떠안은 140여개의 기업을 직접 턴어라운드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두산그룹에 3조6000억원, 대한항공에 1조2000억원을 지원하고 자구안 마련에 자율성을 부여하자 구조조정에 더 속도가 났다. 두산과 대한항공은 그룹의 생존이 달린 상황임에 따라 바삐 움직였다. 빠른 매각 성사를 위해 시장이 관심을 가질 만한 사업과 자산부터 내놓았다.

▶대형 PEF 운용사, 조 단위 빅딜 주도 = 구조조정 매물의 주요 원매자는 PEF 운용사였다.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의 두산솔루스 인수, 한앤컴퍼니의 대한항공 기내식·기내면세 사업 인수 등 PEF 운용사가 그룹사의 흑기사로 나섰다. 인수 금액은 각각 약 7000억원, 약 9900억원에 이른다. 스카이레이크는 국내 1세대 PEF 운용사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점, 한앤컴퍼니는 3조8000억원이라는 대형 펀드를 조성하고 있는 점 등이 딜 성사를 이끈 것으로 분석된다.

이처럼 두산 및 대한항공의 구조조정은 정부의 빠른 지원, 각사의 경영 정상화 의지, PEF 운용사의 참여 등으로 현재까진 긍정적이란 평가가 우세하다. 나종선 오퍼스프라이빗에쿼티 대표는 “두산은 자구안에서 벌써 약 2조원을 마련하는 등 현재까지 유동성 확보에 성공적인 모습”이라며 “대한항공은 항공업 정상화에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이지만 정부의 지원, 자구안 이행 등으로 노력하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전략적투자자(SI)들은 코로나19, 미중 무역갈등 등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움츠러들면서 딜 참여에 보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최명록 큐캐피탈파트너스 부사장은 “두산그룹이 매각에 나선 매물 중 하나를 한 SI와 함께 인수를 검토한 바 있다”며 “SI가 인수 검토 회사와 동종업을 영위하고 있어 사업 시너지 등을 기대했으나 막판에 인수전 참여 거절 의사를 밝혀 계획이 무산됐다”고 말했다.

한 외국계 PEF 운용사 관계자는 “기업들은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비주력 사업·자산 매각으로 현금을 확보하고 투자 기회를 지켜보는 상황”이라며 “PEF 운용사는 조성한 펀드를 소진해야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구조조정 딜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