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 받는다' 헌법 조항 인용
“태어난 아이 근로자 아니라고 해서 산재 인정 않는 것은 부당”
“국가는 모성으로 인한 임신, 출산 부담 덜어주고 지원할 의무”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대법원이 태아의 건강 손상도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첫 판결을 내놓았다. 대법원은 여성 근로자와 모성을 특별히 보호해야 한다는 헌법 규정을 논거로 ‘태아는 근로자가 아니어서 산업재해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뒤집었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29일 제주의료원 간호사 변모씨 등 4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급여 신청 반려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당초 항소심 재판부는 여성 근로자가 아닌 태아를 산업재해보험법상 주체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태아는 모체와 하나이지만, 출산을 한 이상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을 수 있는 근로자는 어머니이지 태어난 아이가 아니라는 판단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헌법 규정을 언급하며 "여성근로자와 한몸인 태아의 건강이 손상됐다면, 업무상 재해라고 평가하는 게 정당한데, 재해를 생명이 태어났다고 해서 종전의 평가를 거둬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산업재해보험법 규정은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고용·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32조 4항과 조화를 이루는 범위 내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결론이다.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한 헌법 36조도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임신과 출산 없이는 가족과 사회, 국가 공동체가 존속·유지할 수 없다"며 "모성의 보호는 공동체의 존속·유지와도 관련된다"고 했다. "국가는 모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임신, 출산 등의 부담을 덜어주고 지원해야 할 의무를 진다"는 지적도 남겼다.
재판부는 특히 이번 제주의료원 사건을 "여성 근로자와 모성의 특별한 보호를 규정한 헌법규정들의 취지와 정신을 고려해야 할 전형적인 국면"이라고 언급하며 "재해를 입고 태어난 아이는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변씨 등의 청구를 거절한 공단의 견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 사건 주심인 김상환(54·사법연수원 20기) 대법관은 총 4년 동안 헌법재판소 파견근무를 한 헌법 전문가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2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법정구속한 재판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 박근혜 정부 정통성에 흠이 가는 결론이었지만, 소신있는 판결을 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