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 받는다' 헌법 조항 인용

“태어난 아이 근로자 아니라고 해서 산재 인정 않는 것은 부당”

“국가는 모성으로 인한 임신, 출산 부담 덜어주고 지원할 의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들이 14일 오전 대법원 앞에서 선천적 심장질환이 있는 아기를 출산한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산업재해 인정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들이 14일 오전 대법원 앞에서 선천적 심장질환이 있는 아기를 출산한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산업재해 인정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대법원이 태아의 건강 손상도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첫 판결을 내놓았다. 대법원은 여성 근로자와 모성을 특별히 보호해야 한다는 헌법 규정을 논거로 ‘태아는 근로자가 아니어서 산업재해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뒤집었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29일 제주의료원 간호사 변모씨 등 4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급여 신청 반려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당초 항소심 재판부는 여성 근로자가 아닌 태아를 산업재해보험법상 주체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태아는 모체와 하나이지만, 출산을 한 이상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을 수 있는 근로자는 어머니이지 태어난 아이가 아니라는 판단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헌법 규정을 언급하며 "여성근로자와 한몸인 태아의 건강이 손상됐다면, 업무상 재해라고 평가하는 게 정당한데, 재해를 생명이 태어났다고 해서 종전의 평가를 거둬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산업재해보험법 규정은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고용·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32조 4항과 조화를 이루는 범위 내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결론이다.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한 헌법 36조도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임신과 출산 없이는 가족과 사회, 국가 공동체가 존속·유지할 수 없다"며 "모성의 보호는 공동체의 존속·유지와도 관련된다"고 했다. "국가는 모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임신, 출산 등의 부담을 덜어주고 지원해야 할 의무를 진다"는 지적도 남겼다.

재판부는 특히 이번 제주의료원 사건을 "여성 근로자와 모성의 특별한 보호를 규정한 헌법규정들의 취지와 정신을 고려해야 할 전형적인 국면"이라고 언급하며 "재해를 입고 태어난 아이는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변씨 등의 청구를 거절한 공단의 견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 사건 주심인 김상환(54·사법연수원 20기) 대법관은 총 4년 동안 헌법재판소 파견근무를 한 헌법 전문가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2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법정구속한 재판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 박근혜 정부 정통성에 흠이 가는 결론이었지만, 소신있는 판결을 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