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정부가 감염병 위기 경보를 ‘심각’ 단계로 격상한 이후 국토교통부에 전화하면 코로나19 예방수칙을 알리는 안내음성을 들을 수 있다.
불과 1개월 전만 하더라도 안내음성은 건물의 제로에너지 의무화에 관한 내용이었다. “2020년부터 공공건축물 제로에너지 의무화, 2025년부터 모든 건축물 제로에너지 의무화, 전기요금이 제로인 그날까지….”
오는 2025년 건축물 제로에너지 의무화 정책이 수립된 배경은 ‘저탄소 녹색성장’ 국가비전 발표 직후인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는 선진국의 탄소무역장벽에 대비하고 유가 변동에 취약한 에너지 패러다임을 바꿔 에너지안보를 높이고자 국가 온실가스를 2020년까지 배출 전망치(BAU) 대비 30%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가정 부문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의 27%, 약 2100만9000t의 이산화탄소를 감축하도록 할당됐고, 2009년 11월 녹색성장위원회에서 ‘녹색도시 및 건축물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주택의 에너지 절감목표를 2012년 30%, 2017년 60%, 2025년 제로에너지 주택 보급으로 설정하게 된다.
이에 따라 국토교통부는 2009년 친환경주택 건설 기준 및 성능을 제정해 30가구 이상 신축 아파트를 대상으로 에너지 절감목표를 달성해왔다.
현재는 60% 에너지 절감을 의무화해 이를 위한 설계 및 기술 기준을 정하고 있다. 에너지 절감률 60%란 2008년에 설계된 주택에 비해 난방·급탕·조명만을 위해 사용되는 에너지가 60% 절감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2025년에 난방·급탕·조명에 사용되는 에너지가 제로(0)인 제로에너지 주택 보급은 가능할까. 그 답은 “쉽지 않다”이며, 그 이유를 세 가지 정도로 들 수 있다.
우선 정부의 온실가스 저감 정책 변화다. 2015년 정부의 ‘포스트(Post) 2020’ 발표로 2020년까지 BAU 대비 30%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2030년까지 BAU 대비 37%로 수정됐다. 이를 분석하면 당초 목표 대비 5년 정도 후퇴한 것으로, 그만큼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에 여유가 생긴 셈이다.
선진국의 건물에너지 정책 변화도 또 다른 이유다. 유럽연합은 영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2017년까지 제로에너지 주택 보급을 표방해왔지만 내년 1월부터 ‘준제로에너지빌딩(nZEB·nearly Zero Energy Building)’ 보급을 건물에너지 성능지침(EPBD)에 규정하면서 보다 현실적인 정책으로 선회했다.
준제로에너지빌딩이란 비용최적화 분석방법에 따라 에너지 절감을 위해 투입되는 비용 대비 경제적 효과를 분석해 적정 수준의 에너지 절감률을 달성할 수 있도록 설계된 건축물이다.
국내 기술의 한계도 들 수 있다. 2008년 당시 아파트에서 사용하는 난방·급탕·조명의 1차 에너지소비량은 300㎾h/(㎡·년) 정도다. 신재생에너지 사용 없이 현재의 최고 기술을 적용할 경우 1차 에너지소비량은 약 80㎾h/(㎡·년)로, 73% 정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그 나머지인 27%를 신재생에너지로 줄여야 하지만 아파트에 설치할 수 있는 신재생에너지 용량은 제한적이다. 만약 아파트의 지붕·벽체·발코니 난간 모두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다 해도 제로에너지 달성은 어려워 보인다.
제로에너지 아파트 보급은 화석연료 사용을 억제하고 관리비 절감으로 국민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의미 있는 정책이지만 실효성이 있어야 한다.
2025년 제로에너지 주택 보급이 아니라 비용최적화 분석을 통해 얻어진 2025년 제로에너지 수준 주택 보급이 더 현실성 있어 보인다.
또 적정 단어를 사용한 정책 홍보로 국민에게 혼돈을 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전기요금 제로인 그날까지’보다는 ‘1년 에너지요금 80만원 줄어드는 그날까지’가 더 낫다는 생각이다.
이종성 토지주택연구원 주택성능연구개발센터 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