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의 역사는 흥미로우면서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고대 수메르인들은 잉여 생산물의 대여를 통해 재산을 증식했다. 상대가 필요로 하는 재화를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방법은 인류의 가장 원초적인 경제생활 방식이었다. 오늘날도 자금 대여에 따른 이자가 붙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과거 다양한 문화권에서는 이를 금기시했고, 그 덕분에 유대인은 세계 금융시장을 이끄는 주도권을 갖게 됐다.

은행업이 태동한 중세 베네치아는 지중해의 금융을 접수한 국제도시였음에도 주류세력이던 그리스도인은 대출업을 금기시했다. 반면 규제에 얽매이지 않았던 유대인에 의해 대출업이 전개됐으나 이들은 조소에 시달렸다. 우리가 ‘베니스의 상인’에서 대출업을 하던 유대인 샤일록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떠올리는 것도 당시의 시선이 반영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베네치아 정부 입장에서 세금과 자본의 공급자였던 유대인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방카(banka)’로 불리는 유대인들은 거리에 긴 탁자를 놓고 영업했다. 이 탁자를 ‘방코(banko)’라고 불렀는데, 은행을 의미하는 ‘뱅크(bank)’가 여기서 비롯됐다. 이후 유대인은 유럽 곳곳의 금융 시스템을 구축한 데 이어 월가의 대형 금융기관 절반 이상을 설립하며 세계 금융질서를 주도하고 있다.

이처럼 금융은 오랫동안 발전을 거듭했고, 은행업 모델이 등장한 지도 500년이 넘었다. 이제 IT가 주도하는 핀테크 혁명에 의해 또 한 번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

금융기관의 영업시간에 방문해야 처리할 수 있었던 모든 서비스는 P2P 대출, 송금, 자산관리앱 등의 핀테크 서비스를 통해 24시간 어디서나 스마트폰 하나로 간편하게 처리하는 모습이 빠르게 일상화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확산도 금융에서 비대면 거래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고, 이로 인해 핀테크의 중요성도 새삼 부각되는 모습이다.

핀테크 서비스의 등장은 단순히 편의성만 개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연쇄적인 순기능을 보여주고 있다. 중금리 대출 확대를 통한 가계부채 경감, 신산업 태동에 따른 고용 창출이 늘고 있다. 20% 이상의 고금리 대출을 10% 내외의 중금리로 전환해 대출의 질을 개선해왔고, 적시에 자금을 공급받은 스타트업과 소상공인들은 매출 증대와 함께 청년 인재들을 채용하고 있다.

가장 보수적인 산업군에 속하는 기존 금융업계에 기술 기반 경쟁을 유발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최근, 국내외 금융기관들은 핀테크기업들을 의식해 새로운 IT 조직을 신설하고, 어떻게 하면 고객 편의를 높이고 더 많은 혜택을 줄 것인가를 깊이 고민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우리는 더는 금융회사가 아닌 IT회사’라고 선언하면서 임직원의 25%를 IT 인력으로 확대했다.

이제 정부와 금융 당국의 폭넓은 핀테크 육성 시책이 마련됐고, 오는 8월 제도권 금융으로 편입되는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에 대한 법안 발효, 마이데이터·오픈뱅킹 구축, 신용정보법 개정안 통과 등 핀테크 발전에 우호적 산업 환경이 구축돼가고 있다.

건전한 핀테크산업 육성을 위한 금융 당국과 국회의 노력을 환영한다. 이와 함께 산업 발전에 따른 순기능은 극대화하면서 성장통을 줄이기 위한 노력도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병행해야 한다. 올해가 규제로 인해 금융산업의 주도권이 좌우됐던 역사의 교훈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원년이 되길 기원한다.

이효진 8퍼센트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