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만 가면 사라지는 심장 통증”… 반지형태 심전도 측정기 개발로 이어져
모니터링으로 병원밖 ‘만성질환자 의료 돌봄’ 가능…고혈압 SW도 내년 출시
멀쩡한 사람도 ‘양치기소년’이 되는 순간이 있다. 아무리 시도해도 작동 안되던 가전제품은 AS기사 앞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상이 된다. 몸도 마찬가지다. 몇날며칠을 끙끙 앓다가도 병원에 가면 아픈데가 저절로 멀쩡해진다. 이것 저것 검사를 해봐도 특별한 이상없다는 소견이 덧붙여지기도 한다.
다른 이였다면 머쓱해지고 말 일이지만 이병환(46) 스카이랩스 대표는 양치기소년이 된 경험에서 ‘수요’를 확인했다. 불규칙적인 격무를 피할 수 없었던 연구원 시절, 가슴이 답답한 증상으로 응급실에 실려갔던 이 대표도 정작 병원에서는 별 이상 없다는 통보만 받기 일쑤였다. 이는 전형적인 심방세동 증상이었다. 심방세동은 답답함과 가슴을 옥죄는 듯한 통증을 일으키다가도, 시간이 흐르고 심신의 안정을 찾으면 별 다른 증상없이 넘어가기도 한다.
“환자가 심방세동인지 여부를 확인하려면 몇 시간 심전도 검사로는 턱도 없습니다. 만성질환 중에는 오래 모니터링을 해야 알 수 있는 질환들이 많은데, 병원에서 질병을 확인할 때까지 장기간 생활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심장질환 중 부정맥 진단률이 50%도 안될 정도로 낮은 게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병원 밖에서도 환자 상태를 계속 지켜볼 수는 없을까. 이 대표는 응급실에서 환자의 손가락 끝에 끼워주는 심전도 측정기를 병원 밖으로 가져올 방법을 고민했다. 5G 통신기술 연구원이었던 이 대표가 스타트업을 차리게 된 계기다.
이 대표는 2016년 스카이랩스를 설립, 2년을 꼬박 병원 밖 환자들을 모니터링할 의료기기 개발에 매달렸다. 환자들이 일상 생활을 하면서 심혈관 질환을 확인하려면 기기가 언제, 어디서건 착용할 수 있도록 간편해야 했다. 애플 등 IT 기업들이 손목시계 형태의 웨어러블 기기를 내놨지만 이 역시 이 대표의 성에는 차지 않았다. 잘 때에도 씻을 때에도 계속 착용하고 있을 정도를 고집했다. 스카이랩스는 2년의 연구 끝에 반지 형태의 초소형 심전도 측정기라 할 수 있는 ‘카트(CART·Cardio Tracker)’를 개발했다.
카트는 검은색의 단순한 모양의 반지다. 무게는 10g을 조금 넘는 수준. 방수, 방진 처리가 된 금속이지만 안쪽에는 전자 부품이 들어가 무게가 가볍다. 한 번 충전하고 나면 2일을 충전 없이 거뜬히 버틸 수 있다. 손가락에 착용하는 순간부터 뺄 때까지 기기가 센서를 통해 사용자 심장의 전기 신호를 인식, 스카이랩스의 클라우드 서버로 데이터를 전송한다. 해당 데이터는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진단할 때 쓸 수 있다.
이 대표는 “한 번 (카트를) 착용하고 나면 환자는 조작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병원 안에서는 시간 맞춰 약 주고 검사도 해주지만, 환자들을 병원 밖으로 내보내고 난 다음에는 돌볼 방법이 없어집니다. 감기약 하루 세 번 제대로 챙겨먹는 사람이 생각보다 적고, 심지어 항암제도 제 때 못 챙기는 환자들이 많아요. 만성질환은 지속적으로 상태를 확인하는게 중요한데, 이걸 환자보고 하라고 하면 제대로 못 합니다. 환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게 해줘야 해요.”
카트는 애플워치나 핏빗(Fitbit) 같은 웨어러블 기기와 달리 처음부터 의료기기에 초점을 맞췄다. 개발 과정에서부터 대형병원 의사들과 협업했고, 임상도 병원과 함께 4번 정도 진행했다. 서울대병원과 진행한 임상에서는 정확도가 99%로 나왔다. 의료기기 허가를 기다리는 중 외국 의료기관과 같이 시작한 임상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애플워치에 심전도 측정 기능도 있지만 병원에서 그 내용을 바탕으로 진단을 하지는 않습니다. 기존의 웰니스 관점에서 다루면 수박 겉핥기가 됩니다. 실제 질병이 어떤지 얘기할 수 없으니, 7~8년 전부터 웨어러블 기기들이 나왔지만 크게 생활에서 달라진게 없잖아요. 처음부터 의료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카트 시제품이 나오자 의사들이 “이거 쓸 데가 많겠다”며 먼저 알아봤다. 다음달 한국과 유럽에서 의료기기 허가가 나오면 바로 양산과 판매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번에 출시되는 것은 부정맥을 확인할 수 있는 제품이다. 이 대표는 “카트는 의료기기이면서 플랫폼”이라고 강조했다. “기기는 바꿀 필요 없이 서버에 있는 소프트웨어만 업데이트해서 다양한 만성질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심장질환과 관련된 것들은 임상이 진행된 부분이 여럿 있어서 순차적으로 출시할 예정입니다.”
고혈압을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는 내년께 상품화할 계획이다. 혈압은 굵은 혈관이 지나는 곳을 압박해 측정하는게 일반적이었지만 스카이랩스는 카트가 닿는 손가락의 얇은 혈관만으로도 혈압을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중이다.
이 대표는 “최근 미세먼지 등으로 악화되는 환경 탓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호흡기 질환에 대해서도 연구중”이라고 전했다. 혈관 속 산소포화도로 호흡기질환의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방법을 고심중이다.
3년여를 개발과 의료기기 허가에만 매달린 스카이랩스는 올해가 뿌린 씨를 거두는 해가 될 전망이다. 허가가 나오면 국내와 유럽에서 바로 판매에 들어갈 예정이다. 시생산만 보고도 국내외 의료계 들의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
이 대표는 “창업 때부터 글로벌 회사를 목표로 했다”며 외국 시장 공략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 올해 유럽 시장을 여는 것에 이어 내년에는 현지에서 의료기기 허가가 완료되는대로 미국 시장에 진출할 예정이다.
제품 연구·개발 시기부터 해외 시장에 끊임없이 소구했던 스카이랩스의 노력은 학회 등에서도 알아보고 있다. 2018년부터 글로벌 제약회사 사노피의 초청으로 유럽 최대 스타트업 박람회 ‘비바 테크놀로지’에 참가했고, 심혈관 분야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유럽심장학회 연례학술대회’ 디지털 헬스 부문에서도 2년 연속 우승했다. 지난해에는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테크놀로지 파이오니어로 선정되기도 했다.
도현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