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이 일주일 가까이 출근을 하지 못하고 있다. 노조가 출근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보수정권 9년간 내부 승진이 이뤄졌는데, 왜 진보를 표방한 이 정권에서 외부 인사를 임명했느냐는 게 노조의 논리다. 투쟁은 관성을 띤다. 삭발과 단식이 정치권의 단골 투쟁 양상이라면, 공공기관의 투쟁 관성은 외부출신 수장의 출근 저지로 좁혀진다. 특히 은행장들에 대한 사례는 역사가 깊다. 현 금융위원장인 은성수 수출입은행장(2017년)도, 이덕훈 전 수은 행장(2014년)도 노조가 막아섰다.

하지만 다른 사례도 있다. 2007년 12월에 기은 행장이 된 윤용로 전 행장의 경우 노조는 임명 이후 꽃다발을 들고 윤 전 행장의 첫 출근을 환영했다. 윤 전 행장은 재정경제부 출신 관료다. 노조의 표현대로 전형적 낙하산 인사에 꽃다발을 안긴 것이다. 최근 취임한 방문규 행장에 대해서도 수출입은행 노조는 이렇다할 출근저지를 하지 않았다.

기은 행장이 내부 출신으로 채워졌던 최근 3명의 행장 역사도 반드시 외부가 배제된 것만은 아니다. 조준희 전 행장은 이명박 정부였던 2010년에 임명됐는데 당시엔 대부분의 은행장이 TK(대구·경북), PK(부산·경남)로 채워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직전 김도진 행장 역시 취임 당시 노조는 “인사에 친박계가 개입한 정황이 확인됐다”는 성명을 냈다.

신임행장의 정상 출근 지연은 정상적인 경영에도 차질을 빚게 한다. 당장 중소기업 지원 전략 수립부터 기은 내부 인사문제까지 줄줄이 막혀있다. 임기 만료 자회사의 대표 선임 등 주요 현안들도 산적해 있다.

역대 출근 저지를 당했던 행장 가운데 임명이 철회된 사례는 한번도 없다. 그럼에도 노조가 워낙에 강력히 윤 행장을 거부하다보니 일각에서는 ‘숨은 의도’를 의심하기도 한다. 기은 노조의 윤 행장 출근저지 현장엔 매번 김형선 노조 위원장과 함께 허권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이 있었다. 허 위원장은 불과 2주 뒤인 오는 21일 있을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에 김만재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위원장과 짝을 이뤄 출마한 상태다. 한노총은 지난해 말 기준 민주노총에 ‘제1노총’ 지위를 내줬다.

현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이를 막아선 것은 ‘강성 이미지’ 각인에 더 없이 좋은 소재다. 7일엔 윤 행장이 직접 “김형선 위원장 만나자”고 했음에도 김 위원장은 대화에 나서지 않았다. 대화도 거부하는 것은 이 기회에 낙하산 인사를 물리력으로 저지해 청와대와 금융위원회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는 의도일까. 아니면 최대한 대립각을 세워 뭔가 얻어낼 것은 얻어내려는 포석일까.

기업은행법에 의해 행장 임명권은 주주총회가 아닌 대통령에게 있다. 정부 지분(53%)도 과반이다. 윤 행장의 취임은 합법이다. 노조가 행장 출근을 물리적으로 저지하는 데에는 법적 근거가 없다. 노조는 중요한 구성원이지만, 주인은 아니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지원의 제 역할을 다해야 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낙하산이 싫다면, 최고경영자에 대한 거부권을 갖고 싶다면 법을 고치려는 노력이 우선이다. 이미 우리나라 노조들은 의회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 일단 현행법은 존중하고 지켜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