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죽은 정승이 산 개만 못하다’, ‘거꾸로 매달아도 사는 세상이 낫다’, ‘땡감을 따 먹어도 이승이 좋다’, ‘말똥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등등…” 아무리 천하고 고생스러워도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게 나음을 뜻하는 동양의 속담이 있다.

영미문화권에도 이와 비슷한 속담이 있다. ‘Better a live coward than a dead hero(죽은 영웅보다 살아있는 겁쟁이가 더 낫다)’가 바로 그것.

2019년도 시나브로 저물어 가는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일가족 자살 소식 △경찰의 권총자살 소식 △세월호 유가족 아버지의 안타까운 소식 등…” OECD 자살 공화국 1위라는 말은 더 이상 하고 싶지도 않다.

자살이라는 선택은 본인이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과 안타까운 일이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이며 인생에서 행복의 의미에 대해 오랜 시간 탐구한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01)는 ‘삶의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는 바로 당사자인 우리가 결정한다’라고 말했다(1896). 우리가 삶을 어떠한 마음으로 살 것인지는 인생을 살아가는 본인에게 결정권이 있으며, 우리의 선택에 따라 삶의 모습도 다르게 나타난다.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 또한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어떠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일찍이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켐(1858~1917)은 자살을 이기적, 이타적, 아노미적 자살로 구분하며 자살의 사회적 요인을 강조했다. 1897년에 발표한 저서 《자살론(Le suicide)》에서 자살은 엄연히 사회 현상이며 자살의 원인 역시 사회적이라고 했다. 뒤르켐은 자살이 사회적 현상이라는 것을 보이기 위하여 여러 가지 통계 자료를 조사했다. 그 결과 사람들이 생각하던 것과는 달리, 정신병이나 신경쇠약증 같은 것이 자살과 확정적인 관계가 없다는 것을 밝혔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자살은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사건으로, 자살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밝히려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영국 맨체스터대의 심리학자 마리아 파나지오티 교수 연구팀에 의하면 우울증, 불안장애, 조현병 등의 기타 정신질환을 앓고 있거나 술, 약물 중독 등을 보이는 경우 자살 시도 위험이 더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환자의 경우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환자들의 약 29%가 자살 행동을 보이는데 비해 PTSD 환자들은 이 수치보다도 더 높은 약 57%가 자살 행동을 보인다.

그중에서도 미국의 심리학 교수인 토머스 조이너(Thomas Joiner)의 견해는 자살이 주변 사람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조이너는 『왜 사람들은 자살하는가』(2007)라는 책을 통해 자기의 경험담을 공유하며 자살의 요건을 정리했다. 조이너가 25세였을 때 그의 친아버지가 돌연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조이너는 텍사스대학교 대학원생으로 임상심리학을 전공하고 있었고, 우울증(depression) 연구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우울증으로 자살한 이후 자기모순적 갈등에 빠진 조이너는 자살에 대해 많은 연구 끝에 자살의 원인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조이너는 친아버지를 자살로 잃은 후, 외로움, 무관심과 방관, 장례식에서 지인이 아버지 죽음을 자살이라고 이야기하지 말라는 얘기를 들은 뒤의 충격을 바탕으로 세 가지 심리 조건에 대한 연구에 매진하게 된다.

그가 정리한 세 가지 조건 중, 첫째는 사회적으로 고립되었다고 느끼는 마음(고립감), 둘째는 스스로 타인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하는 마음(무능감), 셋째는 죽음의 고통을 받아들일 만한 육체적 · 심리적 부상이다. 특히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자신에게 치명적 자해를 가하는 연습을 하는 과정에서 부상과 고통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고통에 대한 내성을 키우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은 치명적인 자해 능력을 배양해 훨씬 높은 자살경향성을 보인다.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들 못지 않게 심각한 문제는 극단적 생존자들의 가족과 지인들, 자살 생존자라고 일컫는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극히 부정적인 부작용이다. 유명한 탤런트가 죽고 그 가족들이 잇따라 세상을 등지는 현상처럼 심각한 사회 문제가 발생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자살 사망자 1명이 발생하면 최소 5명~10명의 유족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중앙자살예방센터에서 공개한 통계를 보면 2018년 자살사망자 수는 13,670명이다. 적게는 6만 명에서 많게는 13만 명의 사람들이 자살 생존자에 들어가는 셈이다. 여기에 친구, 동료 등까지 확장하면 더 많다. 이런 현상이 사회적으로 나타날 때 유명한 사람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후 이런 행동을 따라하는 베르테르 효과가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도 심각하다. 이쯤 되면 본인이 삶에 대한 선택권 존중의 문제를 넘어, 자살은 범죄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국가적 관심은 출산율에만 쏠려있다. 보건복지부의 연간 예산은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20년도 총 예산안을 82조8203억 원으로 편성했다. 올해 예산액 72조5148억 원과 비교해 10조3055억 원이 늘어났다. 그 예산 중 ‘자살예방 및 지역정신보건사업’ 예산은 올해대비 245억원이 늘어난 974억 원으로 편성됐다. 그러나 자살이 사회적 재난 수위에 도달한 현재, 이에 대한 예산은 매우 부족한 수준이다. 이정도 예산으로 각 지자체별 자살예방 대책을 수립하기는 역부족이다.

문제는 지난 10년간 저출산 문제 해결에 100조원이 넘는 예산을 쏟아 부었는데도 개선 조짐이 없다는 점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저출산 대책이 출산장려금, 양육수당, 아동수당 같은 현금 살포 위주의 단기 처방에 그쳤기 때문이다.

누구나 언제나 행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절망적이고 힘들 때 도움이 되고, 친구가 되어줄 수 있고, 의료비나 주변 눈치 보지 않으며 상처를 부담 없이 치료할 수 있는 우리나라가 되길 기도하며 공자 왈 한 마디 하며 올 한 해를 마무리한다.

공자의 제자 자로가 어느 날 스승에게 물었다. “죽음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삶도 아직 다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말하겠느냐.” 자로가 다시 물었다. ‘귀신 섬기는 법을 말씀해 주십시오.“ “사람도 다 못 섬기는데 어찌 귀신을 말하겠느냐.”

▣ 글 : 최창호 심리학박사 / 컬럼리스트 / 헤럴드에듀 전문위원 겸 홍보대사

※자살예방 도움·상담기관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다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