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년 전 춘천. 학생 장우진은 팀의 에이스였다. 다른 멤버들은 좀 약했지만 장우진이 홀로 분투해 단체전 우승까지 일구기도 했다. 어린 장우진은 그때도 성격이 확실했다. 탁구에 대한 열정이 강했고, 개성과 고집도 만만치 않았다. 마침 지도자는 선수들을 잘 때리기로 유명했던 인물. 지금 같으면 폭력으로 처벌을 받겠지만 그때만 해도 코치가 선수를 심하게 때리는 일이 흔했다. 이와 관련된 증언이 하나 있다. “한 번은 코치가 장우진을 구석방으로 불러 뺨을 때리는 등 구타를 좀 세게 했어요. 우리는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었죠. 한참이 지나고 우진이가 먼저 나오는데 그 모습이 너무 당당했어요. 아직도 생생해요. 왜 어린 학생이 지도자한테 맞으면 풀이 죽잖아요.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뒤따라 코치가 나오는데, 마치 우진이가 때리고, 코치가 맞은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우진이는 어려서부터 달라도 많이 달았어요.”# 2019년 12월 9일 춘천. 장우진은 국내 최고 권위의 대회인 종합탁구선수권에서 2관왕(복식 개인단식)에 올랐다. 개인단식은 2018년에 이어 2연패. 남자단식 2연패는 2019년 유승민(대한탁구협회장) 이후 꼭 10년 만의 일이다. 중고교를 나온 고향땅에서 한국 최고의 탁구선수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다. 전날인 8일 모 탁구인이 계단을 내려가다가 어두운 구석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작은 체구의 선수를 발견했다. 어린 선수가 숨어서 게임이라도 하는 걸까 자세히 살피는 순간 “저 우진이에요”라는 답이 나왔다. “아니 세계적인 선수가 이렇게 어두운 곳에 숨어서 뭐해?”라며 슬쩍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그리고는 놀랐다. 장우진은 게임은커녕 유튜브로 중국선수들의 복식경기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많은 관중석에서 보면 집중이 안 돼서, 조용한 곳에서 보고 있었어요.” 경기를 막 끝낸 직후라 아직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있는 장우진의 설명이었다. 8일 남자 단식 준결승에서 장우진에게 0-4로 완패한 주세혁(한국마사회)은 장우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 남자선수들은 정말 열심히 해요. 새벽운동과 저녁 자율훈련 등도 코치가 없어도 자기들끼리 알아서 열심히 하죠. 틈만 나면 중국선수들의 동영상을 보고, 연구를 하고, 저 같은 선배들에게 수시로 질문하고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선수가 (장)우진이에요. 정말 노력을 많이 합니다. 그러니 탁구가 늘지 않을 수 없죠.” 장우진은 2015년 종합선수권 때 주세혁에게 3-0으로 이기다가 3-4로 역전패하자 분을 참지 못하고 경기구를 깨고, 라켓을 집어던져 징계를 받기도 했다. 물론 대선배에게 사과를 했고, 주세혁도 “나는 더 심했다”며 쿨하게 받아줬다. 4년 만에 같은 대회에서 다시 만난 대선배를 상대로 장우진이 3-0으로 이기면서도 끝까지 파이팅을 외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대선배 주세혁은 이번에도 장우진의 승부근성을 또 칭찬했다.
탁구에 대한 강한 열정은 장우진의 강점이자 단점이기도 했다. 잘 되는 날은 상관없지만, 잘 풀리지 않는 날은 자기 분을 이기지 못해 경기를 망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워낙 승부에 몰입하다 보니, 경기 때는 물론이고 평소생활에서도 물건 하나 놓은 위치를 미리 정하고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강박증에 가깝다. 지금도 경기중 땀수건은 사각으로 접어 사용한다. 미래에셋대우의 오상은 코치가 “땀수건이 잘 접히면 그날은 우진이 탁구가 잘 되는 날이에요”라고 말할 정도다. 이런 장우진은 진화하고 있다. 매주 목요일 김병준 교수(인하대)로부터 5년째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자신을 누르는 법’을 배우고 있다. 또 2018년 코리아오픈 3관왕 등 큰 경기 경험을 쌓으면서 많이 성숙해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제 자신은 물론, 한국 남자탁구까지 짊어졌기 때문이다. 장우진은 “지난해는 워낙 성적이 좋았고, 올해는 그 반만 하자고 생각했는데 기대에 못 미쳤어요. 내년에는 한국에서 세계선수권이 열리고, 도쿄 올림픽도 있습니다. 이번 우승을 바탕으로 이제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2019년 12월 한국 남자탁구의 최강자는 ‘대세’ 장우진이다. 세계랭킹도 13위로 가장 높다. 이제 장우진에게 남은 것은 안재형, 유남규, 유승민, 김택수 등이 그랬듯이 메이저대회에서 세계최강인 중국선수를 꺾는 일이다. 그때는 잘 웃지 않는 장우진이 씨익 웃으면서 라켓과 함께 각진 수건을 던져버릴 것이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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