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이 특히 최악인 것 같습니다.”
지난해 7월 20대 후반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가 꾸려지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밥값’이었다. 노웅래 과방위원장(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여야 의원들 모두 저마다 “밥값 하겠다”, “일하는 과방위 만들자”고 입을 모았다.
언뜻 들으면 굳건한 다짐이지만, 그동안 과방위가 밥값을 하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20대 후반기 과방위 역시 오명을 벗을 길은 요원해 보인다. 지금까지의 법안 논의 횟수, 법안처리율을 살펴보면 실망을 금할 길 없다. 20대 과방위 내내 가장 많이 등장한 표현이 ‘파행’, ‘불발’, ‘무산’ 등일 정도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과방위는 우리나라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법안을 담당한다. 4차 산업혁명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공룡들이 저마다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지금, 과방위의 중요성은 여느 상임위 못지않을 정도다.
그럼에도 과방위가 대표적인 ‘불량 상임위’, ‘식물 상임위’로 꼽히는 것은 부끄러워할 일이다.
4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과방위에 계류된 법안은 771건이다. 발의된 의안은 모두 1005건으로, 법안 처리율은 23% 수준에 불과하다. 이대로라면 무려 77%에 달하는 법안이 폐기수순을 밟게 되는 셈이다. 국회 임기가 끝나면 그동안 처리되지 못한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여야가 국회서 치열한 자존심 싸움을 벌이는 동안, 산업 현장에서는 애가 타다 못해 닳아버렸다. 아무리 국회가 ‘싸우는 곳’이라지만 “해도 너무한다”는 푸념이 울려 퍼진다. “원래도 그랬지만, 이번은 특히 심하다”며 찌푸려진 눈살이 펴질 줄 모른다. “이미 포기했어요”라며 자조적인 웃음을 보이는 이도 한둘이 아니다.
현재 과방위에 잠들어 있는 법안 중 대표적인 것만 꼽아도 데이터3법 중 하나인 정보통신망법 일부개정법률안(정보통신망법), 양자진흥법, 통신 인가제 폐지법 등이 있다.
빅데이터는 인공지능(AI)을 필두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의 원유’로 꼽힌다. 데이터3법의 통과 여부가 정기 국회 막판 관심을 모은 이유다. 데이터3법은 여야 원내대표가 처리하기로 합의를 해놓고도 상임위 문턱에서 수차례 살얼음판을 걸었다.
양자기술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미국, 유럽 등과 비교해 6년 가량의 기술격차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동안 구글은 ‘슈퍼컴퓨터로 1만년 걸리는 문제를 양자컴퓨터로는 200초 만에 풀수 있다’는 ‘양자우월성(양자패권)’을 주창하고 나서며 전 세계를 충격의 도가니에 빠뜨리기도 했다.
유료방송 시장 규제개선도 시급한 현안이다. 이미 KT를 겨냥했던 유료방송 시장점유율 규제(합산규제)의 효력이 다한 지 1년이 넘었다. 그동안 시장은 급변했다. IPTV와 케이블TV 간 합종연횡이 한창이다. LG유플러스가 CJ헬로를 인수하고, SK텔레콤이 티브로드를 SK브로드밴드와 합병을 추진하는 등 유료방송 지각변동이 가시화했다.
여기에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유튜브를 필두로 한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의 국내 시장 공습도 현재진행형이다. 시장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글로벌 미디어 공룡과의 경쟁에 힘을 쏟아야 하건만, 유료방송 규제 개선 논의는 기약도 없다.
앞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유료방송 사후규제안에 합의해 국회에 제출했지만 아직까지도 과방위 논의 시점은 미정이다.
국회 안팎에서는 해가 바뀌면 법안처리가 어려울 것이란 이야기가 공공연하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대부분의 의원실이 ‘총선모드’에 들어간다는 의미다. 이대로라면 임기 막판 법안 졸속 처리가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제대로 된 검토, 논의조차 없이 산업 현장의 경쟁력을 좌우할 법안들이 시간에 쫓겨 통과되는 것이다.
무더기 법안 폐기도 우려된다. 19대 국회 임기만료 당시에는 48.8%에 달하는 법안이 폐기됐다. 현재로서는 20대 국회 만료 때는 19대 국회보다 더 많은 법안이 폐기될까 우려된다.
후반기 과방위를 시작할 때 강조했던 ‘밥값’이란 말이 무색하다. 매 국회마다 반복되던 구태가 20대 국회서도 되풀이되다 못해, 더 심화할 조짐이다.
이런 가운데 과방위는 4일 법안소위와 전체회의를 열고 데이터3법 중 하나인 정보통신망법 처리에 나섰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데이터3법 중 꼴찌다. 나머지 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법은 이미 소관 상임위 문턱을 넘은 상태다.
20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 종료일은 오는 10일이다. 20대 과방위가 ‘밥값’을 할 기회는 아직 있다. ‘유종의 미’를 거두길 바란다. yun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