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권 인기 아파트 분양 현장마다 ‘현금 많은 무주택자’들이 대거 등장해 눈길을 끈다. 전세보증금을 포함한 자산이 10억원 이상 쌓일때까지 내 집 마련을 하지 않다가 최근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새로운 유형의 부유층이다.

이들은 일단 동원 가능한 현금이 최소 10억원 이상이다. 지난달 말 청약접수를 한 강남구 삼성동 ‘래미안라클래시’의 분양가는 14억2600만~16억6400만원. 이달 2일 1순위 청약접수를 한 역삼동 ‘센트럴아이파크’ 분양가는 16억1000만~22억8700만원이다. 모두 분양가가 9억원을 넘어 은행을 통한 중도금 대출이 불가능하다. 계약금, 중도금 등 모두 청약자가 마련해야 한다.

견본주택 마다 이런 계층이 넘친다. 최근 분양한 두 단지만 따지면 ‘래미안라클래시’에 1만2890명, ‘역삼 센트럴아이파크’에 8975명이 각각 청약했다. 무주택 청약자격을 갖췄으면서 14억원이상 현금 동원이 가능하다는 사람들이 2만명 이상이란 이야기다.

이목을 끄는 건 이들의 청약가점이다. 래미안라클래시 평균 당첨 가점은 69.5점이다. 최고 당첨 가점은 79점, 최저 당첨 가점은 69점이다. 전문가들은 역삼 센트럴아이파크 당첨 가능한 가점도 60점대 후반은 될 것으로 관측한다. 이 점수를 맞추려면 무주택기간(만점 15년, 32점)과 청약통장 가입기간(만점 15년, 17점)에서 모두 만점(47점)을 채우고도 부양가족 기준에서 최소 3명(20점) 이상이어야 한다. 부양가족이 한명씩 늘어날 때마다 5점씩 높아진다.

이런 가구가 얼마나 많을까. 통계청에 따르면 일단 서울 강남권 아파트에 청약 가능한 무주택 가구수는 193만8000여가구 규모다. 이중 고가전세가 많은 강남권(강남·서초·송파)에만 29만5854가구 존재한다. 용산구나, 광진구 등에도 고가 전세가 수만가구 이상 있다.

서울에서 전체 가구의 43%가 자가에 살고, 무주택자들은 전세(25.7%)나 월세(24.6%) 등에 거주한다. 대략 무주택 가구의 절반은 전세에, 절반은 월세에 사는 셈이다. 단순 계산하면 강남에만 대략 15만가구 규모가 전세에 산다는 이야기다. 이들 중 절반은 전세 보증금 6억원이상 고가 전세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강남권 전세 중위가격이 6억원이 넘기 때문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초구 아파트 전세 중위가격은 6억8000만원으로 가장 비싸고, 강남구가 6억3750만원이다. 중위가격은 전체 전세를 가격대별로 나눴을 때 절반인 가격이다. 15만의 절반인 최소 7만5000가구가 6억원 이상 전세에 거주하는 셈이다.

국세청에 다르면 2018년 기준 연봉 1억원 이상 고소득자가 전국에 72만명이나 있다. 대기업이나 전문직 종사자들이다. 은행 PB(프라이빗 뱅커)들에 따르면 부부 각각 연봉 1억원인 30~40대 젊은 부부들이 최근 강남권 인기 아파트 청약에 적극적이다.

박합수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부부합산 연봉이 2억원 수준이면 부동산 담보가 아닌 다른 식으로 동원할 수 있는 현금만 13억~14억원 정도 될 것”이라며 “이들의 당첨만 되면 수억씩 시세차익을 누릴 수 있는 ‘로또’ 아파트 최대 수혜자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박일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