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스포츠팀= 남화영 기자] 유러피언투어의 ‘롤렉스 시리즈’가 스타급 선수들의 외면으로 인해 창설 3년 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계륵(鷄肋)같은 존재로 전락했다. 대회당 종전 총상금의 두 배 정도인 700만 달러 이상으로 치르는 유러피언투어 특급 대회 연합이지만 롤렉스 시리즈는 선수층의 ‘필드력(Strength of Field)’ 약화로 고민에 빠졌다. 투어 안에서도 다른 대회와의 이질감을 키워 상금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세계 랭킹이 높은 미국, 유럽의 스타급 선수들이 유러피언투어를 외면하는 요즘 추세를 읽지 못한 결과다. 상금을 높여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 맞서려던 키스 펠리 CEO가 2017년에 만든 이 시리즈는 필드력 약화로 큰 고민에 빠졌다. 요즘의 골프 대회는 세계골프랭킹(OWGR) 높은 선수들이 많이 출전하는 필드력이 흥행과 성패를 규정한다. 세계 1위가 출전하면 필드력 레이팅(가치)에 45점이 주어지고, 2등은 37점, 3등은 32점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세계 랭킹 81위부터 100위까지인 선수라면 대회에 출전할 때 2점의 필드력을 주고, 101위부터 200위까지는 1점을 부여한다.
아이리시오픈보다 3M오픈이 더 인기지난주 롤렉스 시리즈였던 아이리시오픈은 총상금 700만 달러 롤렉스 시리즈로 치러졌다. 하지만 이 대회의 필드력은 235점에 불과했고 챔피언 존 람(스페인)에게는 42포인트가 주어지는 데 그쳤다. 아이리시오픈이 롤렉스 시리즈가 되기 이전인 2015년에는 총상금 400만 파운드였지만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호스트가 되면서 우수한 선수들이 많이 출전했다. 하지만 롤렉스가 참여하고 곧이어 매킬로이가 이 대회에서 손을 떼자 스타급 선수의 출전은 대폭 줄었다. 같은 기간인 지난주 미국에서 신설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3M오픈은 총상금이 640만 달러로 작았지만 필드력은 255점에 챔피언 매튜 울프(미국)는 44포인트를 획득했다. 세계 1위 브룩스 켑카(미국)도 65위로 마친 이 대회에서 울프의 세계 랭킹은 1659위에서 135위까지 치솟았다. 올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디오픈의 전초전 격인 스코티시오픈은 그나마 낫다. 세계 골프랭킹 3위 매킬로이, 9위 저스틴 토마스, 13위 매트 쿠차, 14위 리키 파울러(이상 미국) 등 미국프로골프(PGA)투어의 상위 랭커들이 모였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는 모처럼 필드력(SOF)이 309점으로 미국에서 열리는 총상금 600만 달러 PGA투어 존디어클래식의 78보다도 높아졌다. 우승자에게 존디어클래식의 2배인 48점의 포인트가 주어질 예정이다. 하지만 이 대회가 롤렉스 시리즈에다 상금이 100만 달러가 더 높아서가 아니라 선수들이 링크스 코스에서 적응해야 다음주 디오픈에 익숙하게 코스를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 미켈슨은 롤렉스 시리즈가 되기 전인 2014년에 스코티시오픈에 출전한 뒤에 디오픈에서 우승했다. 리키 파울러 역시 2015년 총상금 325달러일 때 출전해 우승했다.
아부다비에서의 흥행 참패 지난 1월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열린 HSBC챔피언십에서 롤렉스 시리즈의 문제점이 극명하게 표출됐다. 올해 처음 롤렉스 시리즈에 속했던 이 대회는 300만 달러이던 총상금을 700만 달러로 2배 이상 올렸다. 게다가 세계 랭킹 1, 2위인 브룩스 켑카(미국), 더스틴 존슨(미국)을 초청하느라 300만 달러를 더 들이는 노력을 했으나 흥행 참패로 끝났다. 2008년 프로 데뷔 이래 한 번도 빠지지 않던 매킬로이가 출전하지 않았다. 게다가 저스틴 로즈(잉글랜드)는 PGA투어 데저트클래식에 출전했다. 지난해 유러피언투어 상금 1위인 프란치스코 몰리나리(이탈리아),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도 불참했다. 지난해까지 선수 초청료로 쓰던 돈을 올해는 대회 상금을 올리는 데 쏟은 롤렉스 시리즈의 결과는 참혹했다. 이 대회 필드력은 299점으로 지난 5년래 가장 저조했고, 2008년 이래 두 번째로 낮았다. 챔피언 셰인 로리(아일랜드)에게는 우승 점수 48포인트가 주어졌다. 지난해는 필드력 351점에 챔피언인 토미 플릿우드(잉글랜드)는 52포인트를 받았다. 총상금을 두 배로 높였지만 올해 필드력은 지난 2014년(291점) 이래 최저, 2008년 이후로 300점 밑으로 내려간 두 번째였다. 아부다비 대회는 지난해까지 4대 메이저나 WGC를 제외하면 가장 흥행이 잘되는 유러피언투어 대회로 꼽혔다. 지난해는 총상금 800만 달러에 특별 보너스가 주어지는 투어 최종전인 DP월드투어챔피언십의 필드력 350포인트보다도 1점이 높았다. 2006년 시작된 이 대회는 2012년에는 454점의 막강한 필드력을 자랑했다. 챔피언인 로버트 록에게는 무려 58점의 우승 포인트가 주어졌다. 타이거 우즈가 시즌 개막전으로 출전했고 이는 이후 브룩스 켑카, 더스틴 존슨의 초청료를 받는 중동 대회 출전으로 이어졌다. 결국 대회가 끝난 뒤에 HSBC투어를 창설하고 잘 발전시켜온 베테랑 길 모건 디렉터는 해고됐다. 모건은 키스 펠리 CEO의 지속적인 권유 끝에 롤렉스 시리즈에 들어가면서도 꾸준히 ‘필드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물었다고 한다. 기존 상금에 400만 달러를 추가했고 초청료 300만 달러까지 넣었으나 흥행에 실패했다. 그 금액은 지난해까지 타이거 우즈, 로리 매킬로이, 리키 파울러 등의 유명 선수 출전을 위한 초청료로 쓰였다.
8개 대회를 묶은 롤렉스 시리즈 펠리 CEO는 명품 시계 브랜드 롤렉스와 함께 스타 선수들의 출전을 독려하고 대회 흥행을 위해 유러피언투어 내 대표급 8개 대회를 시리즈로 묶었다. 시즌 마지막에 열리던 파이널 3개와 함께 프랑스오픈, 아이리시, 스코티시, 이탈리안에 BMW PGA를 묶어서 상금 규모를 두 배 가까이 높였다. PGA투어에 눌리던 유러피언투어는 3년 전부터는 롤렉스와 손잡고 특급 대회 시리즈를 출범시켰다. 기존 대회보다 상금이 두 배 많은 이른바 ‘특급’ 대회를 만들어야 스타 선수들이 많이 출전하고 그게 흥행으로 연결될 것으로 여겼다. 이전까지 스타급 선수에게 ‘초청료’를 주었으나 대신에 상금액을 높여 자연스럽게 스타들이 찾도록 하자는 전략이었나 그건 패착이었다. 총상금이 두 배나 뛰면서 출전 선수들은 짭짤한 상금 수익을 챙겼다. 하지만 대회 흥행은 켑카, 존즌, 매킬로이와 같은 스타 파워가 좌우한다. 지금까지 28개 대회를 치른 유러피언투어에서 스타들이 출전하지 않으면서 생애 첫 우승자가 11명이나 나왔다.
롤렉스는 스타 선수에 집중했어야 롤렉스가 한해 유러피언투어 8개의 특급 시리즈를 위해 쓰는 돈은 어마어마하다. 미국PGA투어로 스타급 선수들이 몰리는 트렌드를 보다 면밀히 파악했더라면 유럽에 우열반을 만들 것이 아니라 선수들을 초청해야 했다. 펠리 CEO로서는 기껏 만들어놓은 특급 시리즈를 버릴 수는 없고 유지하자니 투어 자체의 우열화로 인해 다른 대회들은 상금과 흥행이 더 소외되는 계륵같은 상황에 빠졌다. ‘영구적인 탁월함(Perpetual Excellence)’를 홍보하는 롤렉스는 특급 시리즈에 들지 못한 유러피언투어 기타 대회들로부터 탁월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스타 선수에 집중하는 방식이 더 나았을 것이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처럼 롤렉스 여자 랭킹 시스템을 만들거나 세계 랭킹 1위의 캐디에게 챔피언 빕을 주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스타 마케팅이 의미도 있고, 효과도 높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