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스승의날이 5월? “본지 얼마나 됐다고 감사하겠나. 연말 종업식에 스승의날 합시다” - ‘촌지 봉투’ 목격했던 스승의 날… 넙죽넙죽 봉투 챙기던 ‘스승들’ 기억 새록 -돌아보면 ‘인권 바닥’이었던 학창시절…“교무실은 신성한 영역인줄 알았죠”

[헤럴드경제=김유진ㆍ성기윤 기자, 김민지ㆍ김용재ㆍ박상현ㆍ박자연 인턴기자] 90년대생 편집자 주=“우리는 기성 세대야, 신세대야?” 90년대 초 태어난 청년들은 이름이 여러개다. 혹자는 희망 없는 ‘삼포세대’로, 혹자는 신인류스러운 ‘밀레니얼’ 세대로도 부른다.

그렇지만, 사실 뭐라고 불러도 좀 애매하다. 10대 보다 30대에 가까운 나이지만, 꼰대만 보면 속이 끓고 곧죽어도 꼰대로 늙긴 싫다. 누군가는 몇년차 직장인이지만 누군가는 아직 취준생일 수도 있는 나이대. 어엿한 어른이라기엔 하기엔 쑥스럽고, 대학생으로 오해받기엔 다소 늙었다.

마냥 신세대편도, 마냥 구세대 편도 아닌 ‘낀 세대’인 90년대 초반 태생 본지 인턴기자들이 익명으로 나눈 ‘스승의 날’ 방담을 정리했다. 젊은 층과 중장년층, 좌와 우, 남과 여라는 ‘대결의 이분법’이 점령한 세상에서 다양한 목소리로 터져나오는 애매한 회색지대가 존재할 수 있길 기대하면서.

▶넙죽넙죽 촌지받던 스승들… “종업식날을 스승의날로 합시다”

꿀빵맨=스승의 날이 있는 건 좋다 이거야. 근데 왜 학기초인 5월인지 모르겠어. 감사함을 선입금 하라는거야? 이제 막 안면 튼 선생님에게 감사하면 얼마나 감사하겠어. 졸업생 입장에선 좋지만 재학생들에게 시기상조지. 종업식 날 아무 이해 관계 없이 감사함 전할 수 있도록 학년 말로 미뤘으면 좋겠어. 그리고 난, 김영란법이 3ㆍ5ㆍ10만원 산술적 적정선을 정하는 것에도 회의적이야. 적정선을 얼마로 정하더라도, 적정선 근처의 선물을 살 수 있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은 나뉘잖아. 영상편지, 손편지만 전할 수 있는 요즘 세태가 더 나아.

올게니카= 스승의 날? 언제부터 있었고 왜 생겼는지 이해 안가. 부모님이 쥐어주는 선물을 뭔지도 모르고 전달했던 기억이 대부분이야. 스승의 날만 되면 ‘성의 표시’를 해야한다는 분위기가 있었으니까. 방과 후 교무실에 따로 찾아가서 전달하라는 지령을 받고 전달했을 때, 손사래를 치는 선생님은 없었어. 덥썩덥썩 받으시더라. 그치만 정성스럽게 점심 도시락만 사드려도 기뻐하시는 선생님도 계셨지. 도시락에 금가루 안 뿌렸어. 스카이캐슬처럼 돈봉투도 넣지도 않았어! 그런 기억이 있어서 스승의 날 없애자고 하면 괜히 아쉬워.

셀카봉=나는 초중고 때 반장을 많이 해서 담임 선생님용 이벤트를 매번 기획했어.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애들끼리 직접 준비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는데, 학년 올라가면서 칠판 가득 편지도 쓰고 풍선과 꽃도 준비하게 됐지. 그치만 정작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은 고3 때 옆반 선생님이었어. 스승의 날은 존경심보다는 담임 선생님이라는 이유, 반장이라는 의무감으로 뭔가를 준비하는 날이었지.

유리구두=고교 2학년 스승의 날엔 남자 담임 선생님께 반 친구들과 커플 속옷을 선물했던 게 기억에 남아. 신혼이셨고 아이도 없으셨거든.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가 생기셔서 다들 뿌듯했지. 아이들이 좋아하고 허물없이 지내는 선생님이어서 맘에 우러나와 선물했고 추억이 됐어. 그치만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은 재수학원 강사님이야. 선물을 드린다고 내신 문제를 강조해주거나 ‘생기부스터’를 달아줄 수는 없었지만, 열강 덕에 큰 도움을 받았고 진짜 감사했어.

▶교권이 바닥에 떨어졌다지만…돌아보면 ‘인권 바닥’이었던 학창시절

올게니카=스승의 날이라고해서 고마운 기억만 떠오르진 않아. 살구색 아닌 커피색 스타킹 신었다며 구둣발로 스타킹 신은 종아리를 빗겨 차서 올이 나가게 만들었던 선생님도 있었지. 그땐 몰랐는데 돌아보니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란 말은 가식이었어. 자기가 쓰는 공간은 스스로 치워야 한다며 교실 청소를 직접했지만, 정작 교무실은 우리가 치웠지.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했던 교무실과 달리 아이들이 쓰는 교실은 때되면 덥고 추웠던 기억도 나. 그땐 지금보다 팔팔했는데 감기에 자주 걸렸어.

유리구두=우리가 요즘 10대와는 정말 다르더라. ’선생님은 왜 자기 자리 안 치우지?’ 이게 요즘 애들은 쉽게 하는 생각인데, 나는 대학에 가보고 수평적 관계를 경험한 후 돌아보고 나서야 ‘어라?’ 싶었던거지. 흰색 양말만 신으라는 규정 때문에 발가락 시꺼매진 양말을 얼마나 열심히 빨았던지. 회색이나 검정색은 왜 안 됐던걸까? 여학생도 교복바지 입는 요즘 10대를 보면 솔직히 부럽지.

셀카봉=나는 오히려 교무실 청소를 하고 선생님 물컵을 닦으면서 뿌듯해했던 기억까지도 있어. 반장이거나 공부를 잘 하거나 예쁨을 받아야만 맘편히 교무실에 들어갈 수 있었잖아. 교권이 높았던만큼 교무실은 신성한 불가침의 영역이었지. 그런 분위기가 바뀌었다면, 교권이 떨어진 게 아니라 학생 인권이 올라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체벌과 규제 권한이 줄어도 존경받는 선생님은 아직도 있어. 애들이 인터넷강의로만 만나는 선생님을 왜 그렇게 좋아하겠어?

꿀빵맨=동감해. 학생인권조례를 강화해서 교권이 무너졌다는 말에는 공감 못 해. 교권하락의 핵심은 ‘공교육 질 저하’야. 인강 선생님 말은 수능에 나오는데, 학교 선생님 말은 안 나온다는거지. 스승이라면, 인생을 가르쳐주거나 대학입시에 도움되는 노련한 지식을 알려줘야지. 두가지 역할 중 한가지만 제대로 해도 아이들은 존경해. 학교가 입시 학원화 돼가면서 ‘인생 스승’ 역할은 갈수록 작아지는데, 대입강사 역할마저 제대로 못하니까 존경심이 사라진거지.

유리구두=맞아. 요즘엔 학교 수업이 아니더라도 학원이나 인강으로 다른 선생님을 선택할 수 있잖아? 그렇게 되니까 학교 선생님의 절대적인 영향력도 줄고 아우라도 사라지는 거 같아. ‘어 저 선생님 별로네? 그럼 다른 선생님 강의 듣지 뭐’ 이런 마인드니까.

▶낀 세대의 선택, '현재 고교생의 삶'vs '10년전 고교생 삶' 하나를 선택한다면?”

꿀빵맨= 현재를 선택하면 교권 상황, 김영란법 시행상황, 학종 생기부 등 교육제도도 따라오는 거지? 나는 내 상황이라고 하니까 생각이 좀 달라진다. 경찰도 교사도 제어 못하는 요즘 학교폭력을 보면, 차라리 교권이라는 이름으로 억압과 규제 아래 놓였던 과거가 낫겠어. 내가 학교에서 돈을 빼앗기고 담배 심부름을 하게 됐을 때, 요즘 같으면 누가 날 구해줄까? 그런 ‘어른’이 없다면 차라리 과거를 살겠어. 교육과정 바뀌어서 미적분 해야하는데, 그것도 자신없어.

유리구두=나도 예전 10대를 고를래. 예전의 나는 규제의 틈 속에서 자유를 찾는 사람이었거든. 몰래 밖에 나가서 분식 사먹고 김밥 먹고 했을 때 희열 느꼈던 건 그게 다 ‘금기’였기 때문이거든. 금기를 어겨서 혼났던 것도 추억이야. 마조히스트 같나?

올게니카=나는 현재가 좋아. 내가 어느 상황에서 더 행복할지 생각해보고 내린 결정이야. 나는 너무 고통받으며 공부한 기억 뿐이야. 지금처럼 억압받지 않은 환경에서, 추운 날 따뜻하고 더운 날 시원하게 공부할 수 있는 삶의 질을 선택할게.

셀카봉=난 10대부터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요즘 10대에 한표. 대학에서 자유와 자율을 경험해보고 나서야 입시에만 골몰했던 나를 반성했어. 이 마음 그대로 지금처럼 자유로운 분위기의 학교에서 성장할 수 있다면, 학생이란 역할극에 충실했던 그때보다 더 큰 나로 자랄 수 있을 것 같아.

정리=김유진ㆍ성기윤 기자

참여=김민지ㆍ김용재ㆍ박상현ㆍ박자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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