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승현 ‘그래도팜’ 대표

디자이너 출신 그래도팜의 원승현 대표는 ‘브랜드 파머’라는 새로운 직업으로 농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디자이너 출신 그래도팜의 원승현 대표는 ‘브랜드 파머’라는 새로운 직업으로 농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농부가 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처음엔 교도소 생활 같았어요. 쉬는 날도 없고, 노동도 많았어요. 외국인 근로자 같은 느낌도 들더라고요.”

홍익대 미대(프로덕트 디자인)를 졸업하고, 디자이너의 삶을 살던 청년은 아버지의 토마토 농장에서 생각지도 못한 미래를 만났다.

“브랜드라는 것은 기준점이 명확하고, 내세웠을 때 효과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농산물 브랜드는 지역에서 키운다는 것 외에는 알릴 만한 것이 없더라고요. 농산물을 브랜드로 만드는 일이 가치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고향으로 돌아간 원승현(37) 그래도팜 대표의 새로운 직업은 ‘브랜드 파머’. 농사를 지으며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가 만든 직업이다. 원 대표의 도전은 지금 농업계에 새로운 바람이 되고 있다. 최근 ‘토마토 밭에서 꿈을 짓다’를 출간하고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는 원승현 대표를 만나 그래도팜의 이야기를 들었다.

1983년, ‘유기농’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시절. 원승현 대표의 아버지인 원건희 고문은 유기농을 시작했다. 농약을 치고 나면 몸이 아팠던 어머니 때문이었다.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는 동안 원 고문은 땅을 살리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유기농은 근본적으로 땅을 살리는 농업이니까요.”

현재 그래도팜의 1800평 토마토 농장에서 퇴비장은 170평을 차지한다. 농장의 10분의 1가량을 자연 퇴비장으로 쓴다. 이 공간을 생산장으로 쓴다면 수익은 높아졌겠지만, 그래도팜은 타협하지 않았다. ‘죽어가는 땅을 남기는 것은 부채 가득한 유산을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라는 원 고문의 철학은 꾸준히 한 길을 걸을 수 있었던 힘이었다.

농장에선 참나무 부산물인 수피와 앉은뱅이 밀, 미생물을 투입해 숙성 발효한 퇴비로 땅을 살렸다. 1990년대 초반 농장의 유기물 함량은 1.8%대. 현재는 4.3%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원 대표는 “그렇게 유기물 함량을 높이기 위해서일 년에 120톤 정도 되는 퇴비를 농장에 투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강해진 땅에서 자란 유기농산물은 관행농법으로 자란 농산물보다 건강하고, 안전하다고 홍보된다. 원 대표는 그러나 유기농산물의 강점은 ‘맛‘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나라에서 유기농산물 이미지는요. 못생기고 맛없고 작고 볼품없지만 건강에 좋은 농산물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생산자들은 우리 유기농산물을 먹어달라고 해요. 유기농의 강점은 건강도 안전도 아니고, 맛이에요. 유전자의 차이로 사람들의 얼굴이 저마다 다르듯이 농산물도 어떤 땅에서 자랐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거든요.”

원 대표가 농장의 브랜드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그래도팜 토마토에 대한 자부심이 바탕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팜의 토마토 ‘기토’는 ‘전국구 스타’가 됐다. 이름있는 셰프와 입맛 까다로운 소비자들이 먼저 찾는다. 원 대표는 그래도팜의 토마토는 우연히 발견한 ‘맛있는 토마토’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는 “지난 수십년간 일궈온 땅의 기록”이자 “타협하지 않고 지켜온 결실”이라고 말했다.

“요즘 농촌에선 스토리텔링을 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특이한 농장 이름을 만들고 스토리를 담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죠. 하지만 스토리를 만들기 전에 제품력을 높이는 데에 집중하는 것이 먼저예요. 가장 중요한 것은 맛이니까요.”

원 대표는 아버지가 지난 30년 흔들림 없이 지켜온 가치를 담아 농장의 브랜드를 만들었다. ‘그래도팜’이라는 이름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킨 농부의 자부심과 철학이 담겼다. 그는 “고집스럽게 뭔가를 하다 보면 그것이 차별화의 포인트”라고 말했다.

“생산자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근본을 지키면서 품질을 으뜸으로 만들려는 노력이었어요. 이를 지속하기 위해선 그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씨앗, 땅, 사람들의 생각이 지속가능해야 진정한 지속가능성이 이뤄지지 않을까요.”

고승희 기자/shee@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