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프트웨어 전문가에서 가죽 공방장으로 인생 전환

- ‘전통이 명품, 전통이 한류’ 깨달아… “‘가죽 한류’ 통한 명품브랜드 만들겠다”

[헤럴드경제(인천)=이홍석 기자]“가죽과 평생을 함께 하겠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아기가 태어나 소중한 인간이 되듯이, 가죽으로 작품을 만들어 귀한 명품이 탄생되도록 가죽공예에 제 인생을 걸겠습니다.”

오로지 가죽 하나로 세계시장에 뛰어들겠다는 신념을 가진 30대 남자가 있다. 바로 송진곤(32) 가죽공방장이다. 그는 가죽과의 인연이 비록 짧지만, 그 누구보다도 가죽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강해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를 향한 각오가 남다르다. 그래서인지 가죽의 매력에 흠뻑 빠진 표현 보다 가죽에 미친 젊은이라는 말이 맞을 듯 싶다.

“가죽이 좋아 취미로 시작한 것이 제 인생을 완전히 바꾸게 할 줄 몰랐습니다. 가죽을 바라 볼 때마다 매력속으로 빠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업을 바꿔 가죽공방장이 됐나 봅니다.”

송 공방장은 원래 직업이 소프트웨어 전문가였다.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국내 대기업 LG전자연구소에 입사해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4년간 근무했다.

실력을 인정받을 만큼 회사 내에서도 유망한 직원이었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가죽에 대한 관심과 매력을 느끼게 됐다. 단순히 취미로 시작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가죽과 함께 하는 날이 많아졌다.

LG 전자 근무 당시 프로젝트 하나하나를 완성할 때마다 그는 성취감 보다는 남의 일을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업무에 대한 인정을 받아도 그때 뿐이었다.

대기업에서의 그는 한 낱 부속품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음을 다시 잡기 위해 평소에 좋아하던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취미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직장 동료가 하고 있는 가죽공예와의 인연을 맺게 된 첫 만남이었다.

그는 처음에 카드지갑, 여권케이스 등을 직접 만든 가죽 제품이 나올때 마다 즐거웠다. 그러던 그 시기에 홀로 미국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 새로운 인생을 다시 맞게 된 계기가 되버렸다. 미국 서부의 드넓은 평야를 혼자 운전해 가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서 부품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하며 나의 삶을 살 것인가?’

결국, 남을 위해 살아가는 가죽공예가 스스로 뿌듯하고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또한 누군가에게 내가 아는 무언가를 알려주는 것 또한 좋아하고 있다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바로 미국여행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와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기왕에 할거면 제대로 배워 시작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인의 추천으로 국내에서 뿐만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선생님을 만나 가죽공예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더욱 나에 대한 계획에 확신을 갖게 되면서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됐습니다.”

그는 1년이 넘도록 가죽공예를 열심히 배우고 마침내 나만의 가죽공예 공간인 ‘피오레에스’ 가죽공방을 열었다.

그는 흔하게 주문제작이나 나만의 작품만을 만드는 것이 아닌 수업을 진행하면서 가죽공예에 관심을 갖고 있는 그 누군가에게 부담이 없고 편하게 가죽공예를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가죽공방으로 만들었다.

그의 가죽공예 스승으로 부터 인정받은 송 공방장은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면서 현재 강의 활동에 열정도 쏟아내고 있다. “가죽공방을 찾아주는 수강생들 뿐만 아니라 더 많은 분들에게 가죽공예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초등학생을 비롯해 청소년, 성인 등을 상대로 출장 및 단체 강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수업을 진행하면서 연구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보통의 가죽공방 처럼 손바느질만 알려주고 정해진 작품만 만드는 것이 아닌 나만의 작품을 만들수 있게 가르치고 실제 사용되는 미싱기술들도 배울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양질의 가죽공예를 더 많이 접할 수 있도록 계속 연구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같은 강의 방식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가죽공예가 세계화로 발달된 유럽은 전통 가죽제품 생산을 가죽문화로 만들어냈다. 가죽제품과 영국 수입 핸드백, 트렁트를 판매하던 ‘프라다’, 구두가게로 시작한 ‘페라가모’, 말안장 과 마구를 만들어 팔던 ‘에르메스’, 트렁크 및 케이스 제작 견습공 출신으로 여행가방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루이뷔통’, 승마용품 가죽으로 시작된 ‘구찌오 구찌’ 등 모두가 수공예 가죽제품 가게로 부터 출발한 세계적 명품의 대명사이다.

우리나라에도 뛰어난 가죽제품의 역사가 있다. 기마민족인 우리의 뛰어났던 마구들이 고분에서 발굴되고 있다. 또한 올림픽에서 매번 금메달을 독식하다시피 하는 양궁이 바탕이 되던 조선 신궁의 유래는 활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가죽 다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전통 악기 북, 장구 역시 우리의 뛰어났던 가죽의 역사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에도 혼의 담긴 가죽 역사가 있었기에 송 공방장은 우리나라 가죽공예가 세계시장 대열에 우뚝서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그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선조들의 가죽 작품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송 공방장에게 상당한 자신감과 기대를 주고 있었다.

“패션하면 떠오르는 곳이 유럽이며, 그중에서 가죽제품이라면 이탈리아를 떠오르게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탈리아에서는 매년 두차례 가죽제품 박람회(Mipel)와 가죽박람회(Lineapelle)가 열립니다. 매해 두 박람회를 직접 보았습니다.”

그는 가죽제품 박람회를 관람하면서 더 큰 꿈이 생겼다. 우리나라는 가죽 장인을 갖바치라 천대해 기술과 기능으로 머무르게 하고 사장시킨데 반해 유럽은 가죽문화로 창달 발전시켰다. 가죽을 바탕으로 명품화 한 브랜드를 향수, 의류 등 토탈패션 명품 브랜드로 만들어냈다.

송 공방장은 여기서 “전통이 명품이다”, “전통이 한류이다”라고 깨달았다. 궁극적으로 유럽의 가죽공예를 배우고 우리의 전통 가죽공예를 찾아 배워서 가죽 한류를 통한 명품 브랜드를 만들어 세계에 도전장을 내고 싶은 희망을 갖게 했다.

쟁쟁한 유럽의 가죽제품 디자이너들 사이에 자신의 디자인을 전시하고 그들로 부터 인정받는 것이 그의 꿈이 되버렸다.

“우리의 전통 의상 한복이 유럽 패션에서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고 있는 것처럼 서양화와 한국화의 접점을 찾아가는 한국화가와 공동 작업한 가죽 가방, 가죽제품 등 한국의 전통의 미를 내 디자인에 녹여 그들에게 선보이고 싶습니다.” 송 공방장의 야심찬 포부가 국내는 물론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그 날을 향해 오늘도 그가 운영하는 가죽공방에는 ‘도전정신’이 깃든 그의 열정으로 가득차 있다. 세계 가죽 명품 브랜드 대열에 나란히 우뚝 서는 그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