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캐릭터를 만났다” tvN ‘김비서가 왜 그럴까’를 마친 박민영에게 인생 작품,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초반의 우려를 말끔하게 날린 유쾌한 반전이다.‘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동명의 웹소설과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팬층이 두터운 원작이 있다는 건 배우에게 원작 캐릭터와의 비교를 피할 수 없다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더욱이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박민영의 첫 로맨틱코미디 출연작이다. 박민영에게 이번 작품은 도전 같은 작품이었던 셈이다. 그만큼 부담과 기대, 우려 속에 시작했다.하지만 작품은 흥행에 성공했고 극을 이끈 박민영은 대중에게 ‘재발견’됐다. 로맨틱코미디 장르의 작품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돋보이기 쉬우나 박민영이 만든 김미소 캐릭터는 박서준이 연기한 이영준 이상으로 뭇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클리셰가 가득한 작품에서 박민영은 기존 로맨틱코미디의 여성 캐릭터상을 뒤엎고 현대 여성들의 워너비적인 주체적 캐릭터를 완성하며 호응을 이끌어냈다. 데뷔 13년차, 박민영의 연기 내공이 바로 김미소 캐릭터의 화룡정점이었다.▲ 김미소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이 정말 좋았습니다.“일단 살도 많이 뺐고 치마나 구두 같은 경우는 원작과 비슷하게 하기 위해 전부 제작했어요. 딱 붙는 하이웨스트 스커트가 유행이 아니다 보니까 기성복에 있지도 않았고요. 그리고 부회장님이 사준 옷은 비싼 걸로, 미소 돈으로 샀을 법한 옷은 저렴한 걸로 스타일링 했어요. 그래서 갭이 정말 커요. 2만 원대 셔츠부터 100만 원대 셔츠까지 입었죠. 이영준 부사장님이 가방을 많이 선물해준다는 대사가 있어서 가방은 항상 비싼 걸 들었어요. 또 공부한 바로는 한 그룹의 부회장 비서 정도 되면 외적인 면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항상 갖춰 입고 각 잡혀 있는 옷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헤어스타일도 단정하게 보이기 위해 유행이 아니더라도 풍성한 포니테일을 했어요. (…) 또 미소는 ‘비서계의 레전드’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일을 잘하는 친구예요. 일처리도 확실하고 깔끔하죠. 그걸 표현하려면 말하는 속도도 빠르고 딕션도 정확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정보 전달도 빠르게 잘 되고 지시도 잘할 수 있으니까요. 영준을 대할 때는 이미 이 사람의 장점, 약점을 다 알고 있어서 이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은 미소밖에 없다는 느낌으로 콘셉트를 잡았어요”▲ 클리셰가 가득해서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는 작품이었는데도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나는 로맨틱코미디가 처음인데 클리셰 범벅이라 너무 좋았어요. 할 건 다 해본다는 느낌이었죠.(웃음) 클리셰로 갈 거면 그걸 숨기지 말고 보여주려고 했어요. 우리는 클리셰지만 설렙니다, 이렇게 보여준 거죠. 그리고 이 클리셰가 불편하지 않았던 게 이영준이라는 캐릭터는 모든 걸 갖고 있지만 사랑만 안 해본 친구예요. 모태솔로죠. 그러다 보니 여자가 뭘 원하는지 모르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단 말이에요. 그래서 결국 미소에게 물어보는데, 미소도 모태솔로잖아요. 영준이랑 똑같이 일만 했단 말이에요. 그러면 미소가 아직 어릴 적 환상에 갇혀있겠단 생각을 했어요. 남자친구가 큰 인형을 선물해줬으면 좋겠고 놀이공원에 함께 갔으면 좋겠고. 그게 정말 식상하고 뻔한 애정표현이지만 그걸 하고 싶었던 거예요. 나는 그게 공감됐어요. 그 클리셰 범벅이 불편한 게 아니고 김미소와 이영준이라서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얼마나 순수해요. 그 부자가 미소 주려고 인형을 뽑고 있고. 그게 그들 같았어요”
▲ 김미소 캐릭터는 순수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굉장히 주체적인 캐릭터죠.“미소 캐릭터는 주체성 빼고는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자아가 강하고 뚜렷해요. 모든 걸 박차고 나오면서까지 자신의 인생을 찾으려고 하는 캐릭터예요. 주체성에 있어서는 이런 캐릭터를 본 적이 없어요. ‘돈도 싫고 내 인생만 찾으면 돼’라고 할 수 있는 여성이잖아요. 작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 중 하나도 그런 부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거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후임에게 인수인계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이 생각보다 더 그 일을 사랑하고 있고 너무 익숙해져서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뿐이라는 걸 깨닫는 모습이 공감됐어요. 나도 일이 너무 힘들고 슬럼프가 왔을 때 다른 길을 찾아야 하나 고민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결국엔 연기할 때 제일 행복하더라고요. 그래서 미소 캐릭터에 공감이 잘 됐어요”▲ 김미소는 결국 일 하느라 웨딩드레스 피팅날도 제 시간에 못 가는데, 그렇게 자기 일에 열심인 모습이 여성 시청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낸 원동력이 됐어요.“찍으면서 희열을 느꼈어요. 미소가 예비 시부모님 앞에서 ‘이런 식으론 결혼 못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보통은 부담스러워도 그냥 감사하다고 하지 않을까요. 김미소라는 캐릭터는 현대 여성을 대변하는 역할이기도 하지만 여성들의 워너비가 될 수도 있는 역이라고 생각해요. 미소가 김지아(표예진) 비서를 혼내다가 ‘미안하면 아까 그 책 좀 빌려줘요’라고 하면서 감싸주는 장면이 있는데, 나는 그 신의 그 대사가 미소 캐릭터를 잘 드러낸다고 생각해서 굉장히 좋아해요. 미소의 주체성도 드러나고 미소의 전문성, 인간적인 면까지 드러나는 것 같아요. 김미소는 충분히 여성들의 워너비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나를 향한 칭찬은 사실 나보다 미소를 향한 칭찬일 거라고 생각해요”
▲ 실제 성격도 김미소처럼 똑 부러진 성격인 것 같아요.“일에 대해서만 똑 부러져요.(웃음) 미소처럼 집에 가면 아무 것도 안 해요. 극 중에 미소가 잔뜩 어질러져 있는 집을 치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내가 그래요. 밖에 나와서는 실컷 똑똑한 척 다 하다가 집에 가면 바보가 돼요. 힘들 때는 엄마가 ‘밥 떠먹여줄까?’라고 할 정도로 멍하게 있어요. 그런데 작품 할 땐 열심히 하고 완벽하게 하려고 해요. 남한테 피해주는 걸 극도로 싫어해요. 내가 내 일을 열심히 안 해서 촬영 중에 NG가 나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는 게 싫어요. 그래서 촬영할 땐 완벽해질 때까지 거의 잠을 안 자요. 그럴 땐 내가 생각해도 미소 같아요”▲ 평범하다면 평범할 수 있는 김미소 캐릭터가 많은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점이 흥미로운데, 이렇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을 줄 예상했나요?“너무 신기하고 전혀 예상 못 했어요. 대본 리딩 할 때까지만 해도 내가 배경색 같다고 생각했어요. 분명히 화자는 미소지만 개성이 강한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에 리딩을 할 때도 내가 가장 안 보였을 거예요. 감독님도 미소가 중심을 잘 잡아줬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나도 그 정도 역할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1, 2회 편집본이 나온 후 감독님께서 너무 예쁘게 나와서 보면 깜짝 놀랄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감독님이 말씀하신 건 개성 강한 캐릭터들 사이에서 미소가 중심을 잡아주니까 하모니가 이루어진다는 의미였어요. 만약 나까지 욕심을 부리거나 오버했다면 모든 게 혼란스러울 정도로 붕 뜬 느낌이었을 것 같아요. 예상치 못하게 오버하지 않았던 점이 오히려 미소를 보이게 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감정 표현의 폭이 크지 않아도 미소 캐릭터로서는 충분히 표현이 된다는 걸 알았어요. 그런 점이 미소의 매력이 된 거죠. 또 드라마 안의 모든 인물들이 미소를 좋아해줬어요. 그러니까 미소가 돋보일 수밖에 없더라고요. 인물들이 미소를 계속 예쁘다고 하니까 내가 봐도 미소가 예쁜 거예요. 그런 힘이 크다고 생각해요”▲ 초반에는 전개가 휘몰아치듯 흘러갔는데 후반부에는 서사의 힘이 약해졌다는 아쉬움도 있어요.“내가 생각했을 때 로맨틱코미디는 남녀배우의 케미가 반 이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배우들의 호흡이 중요한 장르에요. 처음엔 호흡이 안 맞고 어색할 때도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확 잘 맞더라고요. 그런 호흡이 잘 맞아야 그냥 스쳐가는 장면에서도 대사들이 서로 자기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호흡을 들을 수 있게 돼요. 그러면서 변하는 것들이 정말 많아요. 또 박서준이라는 배우는 남의 말을 먼저 듣고 거기에 따라 리액션이 확 바뀌는 스타일이고 나도 그런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감독님은 캐릭터를 잘 만들어놓기만 하면 서사가 10회 때 끝나더라도, 미소랑 영준이가 그냥 이야기하고 밥만 먹더라도 재미있을 거라고 계산하신 거예요. 감독님이 서사에 대한 부분을 정말 많이 고민하셨어요. 그래도 캐릭터를 제대로 확립하기 위해 사건은 속도감 있게 가는 게 낫다고 보신 거죠. 그 다음부터는 우리가 잘해야 된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서사가 부족하더라도 인물들의 알콩달콩함으로 끌고 가야 하는 회들이 있었어요. 그걸 알고 했고요”
▲ 그동안 밝은 작품을 많이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작품이 박민영의 첫 번째 로맨틱코미디라고 해서 의외였어요.“‘성균관 스캔들’ 이미지 때문에 그런 걸까요? 그런데 나는 ‘성균관 스캔들’ 때 웃긴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매일 울기만 했지 웃은 적이 없어요. 청춘물이고 밝고 젊은 연기자들이 많이 나오는 작품이라서 로맨틱코미디라고 생각하시는데, 사실 코미디는 거의 없었어요. 굉장히 진지한 드라마였거든요. 이렇게 코미디가 결합된 로맨스는 처음이 맞아요”▲ 로맨틱코미디를 찍기까지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가 있나요?“전작의 이미지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언젠가부터 진지한 장르를 많이 하다 보니까 그런 성격의 작품이 주로 들어왔던 것도 사실이고, 시트콤인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데뷔했지만 그 이후엔 그렇게 코믹한 모습을 보여드린 적이 없기 때문에 과연 박민영이 망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있었을 거예요. 그 걱정을 이번 제작진 역시 분명히 했을 거고요. 그런데 극 초반에 미소가 드레스 입고 꽃다발을 들고 가다가 헤드뱅잉을 하면서 기침을 하는 신이 있는데, 그때부터 감독님도 ‘쟤는 얼굴도 막 쓸 수 있는 애’라는 걸 아신 것 같아요.(웃음) 나는 사실 그런 게 편하거든요. 올해가 나한텐 굉장히 소중한 해예요. ‘범인은 바로 너!’라는 넷플릭스 작품을 하면서 갖은 추한 꼴을 다 보였어요. 그리고 이 드라마를 통해서 내가 이렇게 망가져도 시청자분들이 좋아해주신다는 걸 알았어요. 원래 평소에 웃기고 재미있는 걸 좋하해요. 이게 사실 나였는데 많이 감추고 살았단 생각이 들어요”(웃음)
▲ 로맨틱코미디 장르의 작품이 흥행하고 나면 두 남녀 주인공이 실제 연인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단 반응들이 나오곤 하죠. 그런 반응들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일단 감사한 일이죠. 미소와 영준의 사랑을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작품이 사랑 받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렇게 좋은 작품의 마무리를 좀 더 아름답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관심도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나 싶어서 조금 아쉽기도 해요. 지금 바라는 바가 있다면 미소와 영준의 사랑을 응원해주셨던 분들은 그 둘을 캐릭터 자체로 계속 사랑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걸 연기한 사람들이 연애 문제에 관심이 쏠리는 건 조금 속상해요”▲ 그만큼 작품이 잘 됐다는 의미겠죠. 이번 작품이 크게 흥행해서 차기작을 결정할 때 부담도 있을 것 같아요.“지금은 마냥 좋아요. 아직 차기작 계획도 없고요. 한 달 동안은 거의 한국에 없을 것 같아요. 해외 일정 다녀와서 천천히 차기작을 정하려고요. 연기는 계속하고 싶어요. 그런데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정말 계속 하면 보는 분들이 지겨워하실까봐….(웃음) 조금 쉬었다가 미소를 보내고 또 새로운 사람을 맞이해야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