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표적 대북강경파로 꼽히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만나 남북경협 및 한국 내 제재 완화 움직임에 불편함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2명 이상의 워싱턴 소식통은 3일 볼턴 보좌관이 남북경협 등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경제적 조치들은 북한 비핵화 문제가 해결돼야지만 가능하며, 북한의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없이 이뤄지는 종전선언은 이뤄지기 어렵다는 입장을 정 실장에게 보였다고도 밝혔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볼턴 보좌관은 북한이 ‘검증할 수 있는’ 비핵화 조치를 취하지 않는 상황에서 종전선언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의 면제를 호소한 우리 정부의 행보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미대화에 정통한 소식통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나 문화교류 차원에서의 제재 면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하지만 철도협력이나 개성공단 등 북한경제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업들도 모두 ‘한반도 평화를 위한 조치’라고 표현한 것에 대한 우려가 깊었던 상황”이었다고 했다.

볼턴 보좌관은 남북미ㆍ남북미중 종전선언에 대해서도 소극적인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NSC는 북한이 종전선언 이후 주한미군 전략자산의 철수 및 축소를 추구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며 “북한이 구체적이고 검증할 수 있는 비핵화 초기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상 전선언에 대한 긍정적 입장도, 부정적 입장도 보이지 않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다른 소식통은 “트럼프 행정부가 종전선언에 회의적인 것은 아니다”며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당시에도 전문가는 초청되지 않는 등 북한은 ‘검증’의 영역에서 계속 신뢰를 주고 있지 않다. ‘검증’ 영역에 대한 불신문제가 해결되면 종전선언은 가능하다고 NSC에서도 보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앞서 정 실장은 지난달 20~22일 방미 길에 올라 볼턴 보좌관과 북미 비핵화 협상을 가속화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정 실장은 당시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노력과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미 간의 비핵화 협상이 선순환적으로, 성공적으로 가급적 빠른 속도로 추진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안들에 대해서 유익한 협의를 했다”고 했다. 그러나 ‘종전선언’ 관련 논의 여부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남북사업 발전은 남북간 긴장을 완화함으로써 북한의 핵보유 명분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논리로 국제사회를 설득해왔다. 또 ‘종전선언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견인할 최소한의 체제보장 조치’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미 NSC를 비롯해 미 의회와 지식인층은 우리 정부의 이같은 논리에 근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조지 W. 부시정권 시절 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을 지냈던 마이클 그린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은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으로, 물리적 조치에해당하는 북한의 비핵화를 견인할 동력이 될 수 없다”면서 “오히려 북한에 한미안보 동맹의 해체를 주장할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정부가 제재면제를 요청한 이후 미국은 전방위적 ‘우회압박’에 나선 상태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25일 이례적으로 강 장관이 아닌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통화를 시도했다. 마크 램버트 미 국무부 동아태부차관보는 방한해 남북경협 기업들과 만나 대북제재 가이드라인을 설명했다. 서훈 국가정보원장도 미국 설득에 나섰지만,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대북제재 주의보의 한글 번역본도 공개됐다. ‘북한과 공급망 연계가 있는 사업체의 위험요소’라는 제목으로 공개된 주의보 번역본은 북한과의 무역과 북한 해외 노동자 고용문제를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대북제재와 관련해 한국어 번역본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의 우회압박은 ‘한국이 남북관계에만 치중한 나머지 비핵화와 대북제재 기조를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미 국무부 대변인실은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관계 개선이 북한의 비핵화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밝혀왔다. 미국 정부는 한국정부가 이 원칙을 지켜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입장을 강조해왔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원은 “지금의 북미대화판은 문재인 정부의 중재로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북핵대화는 북미문제’라고 선을 그어서는 안된다”며 “우리 정부도 적극적으로 북한 비핵화를 견인하는 모습을 보여야 중재자로서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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