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더워지면 평양냉면집은 북새통을 이룬다. 얼마 전 남북정상회담 만찬메뉴로까지 등장하면서 평양냉면의 위상은 한층 높아진 듯하다. 평양냉면집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냉면 이외의 메뉴를 거의 취급하지 않는다. 이는 평양냉면을 제대로 만드는 게 그만큼 힘들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지난 2003년, 정부는 대한민국을 동북아 금융허브로 키운다는 구상을 세웠다. 3차에 걸쳐 추진계획을 발표했지만, 자본시장법 제정, KIC설립 등 일부 성과가 있었지만 애초 제시했던 추진 로드맵에 비하면 미흡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도 있지만, 근원적인 문제는 따로 있었다. 냉면집을 개업하면서 정작 무슨 메뉴에 집중할지 결정하지 못한 탓이다.

우리나라가 당장 뉴욕이나 런던처럼 전 세계를 대상으로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금융 허브가 될 순 없다. 그건 평양냉면집을 맥도날드로 만들려는 시도만큼이나 터무니없다. 그렇다고 해서 홍콩이나 싱가포르, 룩셈부르크 같은 도시국가들처럼 과감한 규제완화, 파격적인 세제혜택을 부여하기에는 넘어야할 산이 많다. 결국 우리에게 남은 최적의 방법은 국민들이 지난 수십년간의 경제 발전으로 축적한 부(富)를 자산운용을 통해 다시 차곡차곡 불려나가는 형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펀드시장을 중심으로 한 금융 허브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먼저, 유수의 외국 운용사들이 매력을 느낄 만큼 시장의 파이가 커야 한다. 호주 금융시장이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퇴직연금펀드가 20년간 매년 11%씩 성장하며 펀드시장의 팽창을 견인했기 때문이다.

또한, 자국 운용사가 외국에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을 정도의 기초체력이 있어야 한다. 맥쿼리 같은 자국 운용사가 경쟁력을 갖지 못했다면, 호주 역시 펀드시장 과실(果實)을 외국에 고스란히 빼앗겼을지 모른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잠재력은 무한하다. 우리나라는 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어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금시장은 2014년말 1,167조원에서 2030년에는 5,314조원으로 15여년 만에 폭발적으로 늘 것으로 예상된다.

기초체력 역시 몰라보게 향상됐다. 2018년 6월말 기준 자산운용사만 228개에 달하지만, 펀드시장 성숙도는 양적 팽창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2003년말 이후 운용사의 당기순이익은 5.4배, 해외투자 비중은 24.7배가 증가했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의 자산운용사들도 글로벌 무대에서 뛸 만한 경쟁력을 갖췄다고 감히 자부한다.

투자목적의 외환거래를 보다 자유롭게 하고, 국제적 적합성에 맞도록 규제도 선진화하는 것, 연기금·KIC 등이 해외에 투자할 때 국내 자산운용사도 키워나가는 것, 외국 자산운용사가 국내에 몰려들게 해서 고급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 등은 모두 마스터쉐프 혼자만의 힘으로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시원한 평양냉면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정책당국, 업계종사자, 유관기관 모두가 머리를 맞대어 보자. 지난 4년간 국내 자산운용사의 운용규모가 1.5배 증가하는 사이 2,651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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