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국방부가 지난 14일 열린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북한의 장사정포 철수가 논의됐다는 설이 제기되자 강력 부인하면서도 관련 보도에 대해서는 무대응으로 일관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 17일 ‘남북이 서울 등 수도권을 위협하는 북한의 장사정포 후방 철수 논의를 개시했다’는 내용의 설이 확산되자 이날 오전 11시35분 “이번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우리측이 북 장사정포 후방 철수를 제안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는 문자 메시지를 기자들에게 보냈다.

이에 ‘우리 측이 제안은 하지 않았지만, 회담 의제로 오른 건 맞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확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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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는 이와 관련 이날 오후 1시53분 다시 문자 메시지를 보내 “이번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장사정포 후방 배치와 관련해 논의된 바 없다”며 추가 의혹에 대해서도 거듭 반박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18일 “국방부가 이번 회담에서 장사정포 후방 배치가 논의된 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일부 매체에서 관련 보도가 나온 것은 어쩔 수 없다”며 사실상 무대응 입장을 시사했다.

정부 당국은 통상 특정 사안에 대한 보도가 사실과 다를 경우, 다양한 방법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관련 보도를 바로잡는다.

하지만 이번에 국방부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하면서도 관련 보도에 대해서는 사실상 방치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여론이 호도되거나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방부가 장사정포 철수의 회담의제 여부 논란에 대해 이런 알쏭달쏭한 입장을 보이는 배경에 대해 여러가지 분석이 나온다.

첫째로, 이번 회담에서 장사정포 철수가 의제가 되진 않았으나, 향후 의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종대 의원(정의당, 비례)은 18일 “이번 회담에서는 장사정포 철수가 국방부 입장대로 의제에 오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북한 장사정포 철수는 군사 회담에 임하는 우리 측의 전략적 카드에는 포함이 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우리가 공개적으로 북한 장사정포 철수를 제안할 수 없는 입장”이라며 “만약 북한 장사정포 철수를 요구한다면, 역시 전방에 배치돼 있는 우리 측 자주포, 다련장로켓 등을 철수해야 하는데 우리 무기를 철수시킬 부지 확보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덧붙였다.

그는 “북한과는 달리 우리는 부지 비용이 엄청나다”며 “전방 무기들을 철수시킨다면 땅값 때문에 수도권 내에 두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둘째로, 이번 회담에서 장사정포 철수를 논의했지만, 남북이 관련 논의를 비공개하기로 합의했기에 어쩔 수 없이 밝히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군 내부 소식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남북이 이번 회담에서 관련 의제를 비공개로 논의한 뒤 관련 사실이 알려지자, 국방부가 ‘사실과 다르다’며 수습하는 모양새로 보인다”며 “실제로 북과 비공개 합의한 사항이 알려질 경우 차후 남북 군사회담에 미칠 파장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방부가 이런 상황에 놓여 있다면 부인은 하되 관련 보도에 대해서는 무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셋째, 국방부의 공식 반박에 해답이 있다는 해석도 있다. 즉, 공식 논의가 아닌 비공식 논의가 있었을 가능성이다.

국방부는 '장사정포 철수를 우리측이 제안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한 뒤에 추가로 '장사정포 철수가 이번 군사회담에서 의제에 오르지 않았다'는 해명을 덧붙였다.

이를 거꾸로 해석하면 장사정포 철수를 우리측이 공식 제안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공식 의제에도 없었다. 하지만 회담 중 비공식적으로 관련 내용에 대한 언급이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국방부가 '공식 의제에 없었다', '우리측이 장사정포 철수를 제안하지 않았다'는 2가지의 반박을 하면서 해당 보도에 대해 별다른 공식 대응을 하지는 못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군사분계선(MDL) 인근 북측지역에는 1000여문의 각종 포가 배치돼 있는데 이 중 사거리 54㎞의 170mm 자주포 6개 대대와 사거리 60㎞의 240mm 방사포 10여개 대대 330여문이 수도권을 직접 겨냥하는 것으로 군 당국은 평가하고 있다.

또한 일각에서는 북한 장사정포 중 가장 성능이 뛰어난 것은 사거리가 70~80㎞에 달해 군사분계선(MDL) 인근에서 발사하면 수원까지 사정권 안에 들어간다는 분석도 나온다.

아울러 최근 개발된 북한 신형 장사정포는 사거리가 150㎞에 달해 장사정포가 아니라 단거리 미사일 수준이라는 평가마저 뒤따른다.

북측 전방에 장사정포가 있다면 남측 전방에는 155㎜ 자주포와 주한 미2사단 예하 210 화력여단의 다연장로켓(MLRS), 전술지대지 미사일(ATACMS), 신형 M1에이브럼스 전차 등이 배치돼 있다.

우리 군이 자체 개발한 K-9 자주포의 사거리는 40~50㎞에 달하며, 특수 포탄을 사용할 경우 100㎞까지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군의 또다른 장사정포 대응 무기인 다연장로켓 ‘천무’ 사거리는 약 80㎞ 수준으로 알려졌다.

만약 북 장사정포 철수가 현실화될 경우, 우리 측 중화기 철수 논의도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