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임시절 ‘청와대와 재판거래·판사 뒷조사’ 의혹…법원 고발땐 검찰 수사 불가피 양승태(70·사법연수원 2기)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와 교감하며 원세훈 사건 등 주요 재판 동향을 파악하고 교감한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났다. 청와대에 ‘맞춤형 판결’을 해주려고 시도하는 한편 일선 판사들을 불법적으로 사찰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형사처벌 의견이 이어지는 등 당분간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김명수<사진> 대법원장은 28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로 출근하면서 “이번 조사단의 조사 결과와 다른 의견이 있다는 것도 언론을 통해 잘 알고 있다”며 “합당한 조치와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법원이 직접 고발에 나서면 그동안 수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던 검찰도 본격적으로 나설 수 밖에 없다. 전직 대법원장이 퇴임한 지 얼마 안돼 수사를 받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법조계에서는 직권남용과 공무상 비밀누설, 공직자윤리법 위반 등이 적용 가능 혐의로 거론되고 있다. 차성안(41·35기) 판사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형사처벌을 검토하지 않는데 대해 “판사가 동료라고 면죄부를 준 것”이라며 비판하며 책임자들을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김명수 대법원장 [사진=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 [사진=연합뉴스]

지난 25일 발표한 ‘조사보고서’를 보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임종헌(59·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다.

임 전 차장은 2012년 법원행정처 핵심보직인 기획조정실장을 지낸 뒤 2015년부터 2년 동안 사실상 행정처 내 ‘넘버2’인 차장으로 일했다. 조사 결과 임 전 차장은 당시 대법원의 역점 사업인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하는 판사들의 뒷조사를 시키는 한편 대법원장의 권한집중을 우려하는 내용을 다룬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를 축소하라는 지시를 내린 당사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행정처 판사들에게 청와대가 관심을 가진 사건의 처리방향을 검토하라고 시키고, 직접 보고서를 여럿 작성하기도 했다.

실제 조사단은 임 전 차장에 대한 직권남용죄 적용 여부를 놓고 내부 논의를 거쳤다. 임 전 차장은 지난해 국제인권법 행사를 앞두고 판사들의 연구모임 중복가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고, 특정 단체 활동을 방해하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조사단 내에서는 임 전 차장이 국제인권법연구회 견제 내지 와해를 의도했다면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과, 중복가입 금지를 규정한 예규가 실제 존재하는 이상 해당 규정이 사문화됐다는 이유로 직권남용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의견이 갈렸다. 결국 조사단은 혐의 적용에 대한 결론을 유보하고 “조사단에서 형사책임을 묻는 적극적 조치로 나아가기에 충분치 않다”고 정리했다.

이밖에 임 전 차장이 윤리감사관실을 통해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인 차 판사의 개인채무 내역을 알아보도록 한 행위는 재산신고 근거인 공직자윤리법 위반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법원행정처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 주요사건 심리상황을 청와대에 전달한 행위 역시 형법상 공무상 비밀누설이라는 견해가 있다. 이 경우 구체적으로 전달된 정보가 법원조직법에서 공개를 금지하는 사항인지 여부가 쟁점이 될 수 있다.

임 전 차장에 대한 법리 문제를 정리한다고 해도 그 뒤에는 상급자인 당시 고영한(63·11기) 법원행정처장과 양 전 대법원장의 관여 사실을 밝히는 일이 과제로 남는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임 전 차장에게 관련 사항을 지시했는지, 그렇지 않더라도 내용을 보고 받고 묵인한 사실이 있는지가 파악돼야 한다. 하지만 당사자 진술이 없으면 이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법원행정처에 근무했던 한 판사는 “임 전 차장이 상고법원 도입을 앞두고 독단적으로 시킨 일이 많았다”며 “실제 처장이나 대법원장이 모른 사안도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법원행정처에서 검토한 보고서대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판결한 사례가 있고, 청와대와 의견을 주고받은 일련의 행위가 확인된 이상 양 대법원장이 관여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좌영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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