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사건 靑 요청 반영 의혹
지난 25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발표한 3차 조사 결과를 보면 대법원이 청와대와 구체적인 사건 내용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은 동기는 ‘상고법원’ 도입 때문인 것으로 파악됐다.
상고법원 도입은 양승태 대법원장이 재임 중 역점 사업으로 추진했다. 특히 2015년 의원입법 형태로 국회에 관련 법률이 발의되자 일선 법원장들도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캠페인에 일제히 나서면서 법원이 제도 도입에 지나치게 열을 올린다는 반발도 이어졌다.
별도의 상고법원을 설치해 1년에 4만건이 넘는 상고심 사건을 처리하면 대법원이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사건 처리에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반대로 상고법원 판사 임명권을 쥔 대법원장의 권한이 더 강화되고, 고위직 판사들의 인사적체 해소 방안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특히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 내용을 청와대와 교감한 부분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도리어 상고심 신뢰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이 가능한 대목이다. 실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전원이 같은 결론을 내는 ‘만장일치’ 판결을 2015년에 집중해서 내렸다. 같은해 상반기 전원합의체 선고 사건 11건 중 5건이 만장일치였고,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에서 소수의견이 실종되는 현상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여기에는 청와대가 ‘전원합의체에 회부해달라’고 요청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건도 포함됐다.
실제 대법원이 청와대 의중에 따라 원 전 원장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는지 이번 조사에서 밝혀지지 않아 앞으로 규명이 필요한 사안이다.
조사단은 ‘전원합의체 회부가 BH(청와대)의 주문에 따른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법원조직법 65조에서 심판의 합의는 공개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이 과정은 조사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결론냈다. 이 사건은 2015년 2월 12일 상고심 접수됐고, 같은해 7월 16일 선고됐다. 조사단은 여기에 대해서도 ‘다른 일반적인 사건에 비해 상당히 신속하게 선고됐다고 보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고 적었다. 다만 ‘주심인 민일영 전 대법관의 임기 만료일이 2015년 9월16일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정상적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조사단은 이밖에 ▷통상임금 사건 ▷과거사 관련 국가배상 사건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KTX여승무원 사건 등 사회적으로 관심이 쏠렸던 사안들도 ‘청와대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한 협조했던 사례’로 꼽은 법원행정처 내부 보고서 파일을 확인했다.
보고서 작성의 실무 책임자였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조사 과정에서 “평소 대국회 업무를 담당하면서 검사 출신 국회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국정운영에 도움이 됐다고 인식될 수 있는 판결들을 취합해보라고 지시했다”고 하면서도 “결과적으로 정부 여당에서 좋아할 만한 판결을 취합한 것일 뿐”이었다고 해명했다.
조사단은 “(보고서가)상고법원 입법안이 좌절될 경우 더 이상 청와대와 원만한 유대관계를 유지할 명분과 이유가 없고, 중립적 사법권 행사 의지의 표방이라 하더라도 심리적 압박은 가할 수 있다고 분석 및 보고하고 있다”며 “이는 임종헌 전 차장이 정부에 우호적인 판결이 있도록 협력해 왔고 비우호적인 판결이 나오지 않도록 조율하였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설령 그러한 협력이나 압박카드 활용이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청와대가 대법원이나 행정처가 그러한 역할을 실제로 수행하고 있음을 믿게 하고, 앞으로 더욱 심한 재판 관여 내지 간섭을 일으키게 할 수 있는 내용으로 그러한 문건을 당시 상고법원 입법 추진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행정처 차장이 직접 작성하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부적절한 것”이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좌영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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