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보호보다 양적팽창 방점 2010년 후 예비심사 승인율 86% 시장개설 첫해 94%가 상장폐지 IT버블 ‘어게인 1996’ 우려 제기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 등이 코스닥 활성화 대책의 하나로 거론 중인 코스닥 상장 ‘문턱 낮추기’를 두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투자자 보호보다는, 상장 건수를 늘려 시장의 역동성을 키우려 한다는 지적이다.
시장 안팎에서는 곧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기대된 코스닥 활성화 정책이 ‘시장 신뢰 회복’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출범 21년차를 맞은 코스닥이 양적 성장보다 질적 성장에 역점을 둬야 고대하던 기관 수요도 이끌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시장 내에서 이견이 나타나는 지점은 코스닥 상장 문턱 낮추기다.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을 코스닥에 들이고, 시장을 활성화하고자 까다로운 진입요건을 조정하자는 게 골자다. 지난달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코스닥 진입요건 완화’ 발언에 대해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코스닥 상장요건 완화’로 호응하면서 제도 추진이 기정사실로 된 분위기다.
무분별한 상장이 투자자 피해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최근 거래소는 ‘문턱 낮추기’가 아니라 ‘허들 없애기’로 표현을 달리하고 있지만, 정책 방향은 매한가지다. 거래소 관계자는 “문턱을 낮추기보다는 상장 과정에 허들이 있는지 살핀다는 얘기”라고 부연했다.
최근 금융발전심의회에 참여한 학계 관계자 사이에서도 이에 대한 우려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발전심의회 한 위원은 “기관의 코스닥 투자를 이끌려면 양적 팽창보다는 시장 정화가 우선이지 않느냐는 얘기가 오갔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미 테슬라요건(미실현기업 상장요건), 기술특례상장, 스팩(SPAC) 등으로 일반 기업이 코스닥으로 진입할 길은 사방으로 열렸다고 주장한다. 또 기업들이 현 코스닥 상장체계에서 매출액과 수익성, 시가총액, 자본금 등 일정 요건에 들어맞기만 하면 얼마든지 증권시장에 입성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2010년 이후 코스닥 상장 예비심사 승인율은 85.9%로 상장을 희망한 기업은 ‘십중팔구’ 입성에 성공했다.
업계 관계자는 “코스닥이 그간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건 상장기업 수가 적어서가 아니다”라며 “무분별하게 들어와 어느 순간 시장에서 사라져버리니 투자자가 믿을 만한 시장 자체가 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상장 문턱을 대폭 낮췄을 때 과거 ‘버블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헤럴드경제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1996년 7월 코스닥 시장이 탄생한 이래 상장된 기업은 총 1978개사다. 이 중 718개사가 상장폐지됐다. 여기서 79.0%에 해당하는 567개사는 지난 1996~2003년 사이 상장됐다. 시장이 갓 조성된 데 이어 정보기술(IT) 버블을 타고 기업들이 너도나도 ‘상장 열차’에 올라탔던 시기다.
특히 시장 개설 첫해 상장된 기업의 상장폐지율은 94.2%에 달했다.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한 기업은 단 12개다.
이익요건 신설, 규모요건 상향 등 상장기준이 대폭 강화되고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기능이 개선된 시기와 비교하면 차이는 극명하다. 2004~2010년 상장된 414개 기업 중에서는 19.3%에 해당하는 82개사가 상장폐지됐다. 2011년부터 올해 11월 말까지 상장된 기업 중에서는 2.5%인 10개사가 상장폐지됐는데, 이 중 스팩이 7개였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단 시장에 많이 들여보내고 상황을 봐가며 시장에서 퇴출하겠다는 것은 투자자 입장에서 봤을 땐 무책임한 일”이라며 “투자자 신뢰를 잃으면 금융당국의 의도대로 시장이 발전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양영경ㆍ정경수 기자/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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