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12년 구형 재계 충격 총수 부재차원 넘어 ‘생존의 문제’ 우려 글로벌 위기때 역발상 투자 반도체 수퍼호황으로 결실 도전·투자 DNA 무너지면 기업의 미래 담보 못해 “대규모 투자 등에 대한 의사 결정 공백이 장기간 이어지는 상황은 그야말로 재앙입니다”
지난 7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 사건 결심 공판에서 징역 12년이 구형되자 삼성 뿐만아니라 재계 전체가 적잖은 충격에 휩싸였다. 이 충격은 단순히 그룹 총수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을 넘어 기업의 생존에 대한 우려로 번지고 있다. 대규모 인수합병 등 중대한 의사결정 공백이 장기간 이어질 경우 기업의 생존 자체를 담보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강하게 대두된다. 이런 우려는 정치권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명멸을 거듭하는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10년이라는 기간은 기업의 생사를 가르기에 충분한 시간으로 평가된다. 이는 멀리갈 것도 없이 지난 2분기 영업이익 14조원의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당당히 글로벌 1위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삼성전자의 역사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 2008년 4분기 삼성전자는 충격적인 740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었다. 당시 미국의 서브프라임발 금융위기로 전 세계 경제가 휘청일 때였다.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모두가 움츠릴 때 삼성은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2009년 신년 연휴에 당시 삼성전자 이윤우 대표가 조용히 승지원을 찾아 이건희 회장을 만나고 돌아온 뒤 그해 2월 느닷없이 ‘초격차 전략’을 선포했다. 삼성은 2년에 걸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23조원 이상 쏟아부었다. 그해 독일 반도체업체 키몬다는 파산했고, 삼성은 치열한 ‘치킨게임’에서 살아남아 11조원의 영업이익으로 화려하게 돌아왔다.
5년 전인 2012년도 삼성의 운명을 가른 한 해였다. 당시는 반도체 불황으로 세계 3위였던 일본의 엘피다가 무너질 때다. ▶관련기사 3·12면 이 때 서초동 사옥으로 매일 출근한 이건희 회장은 ‘초격차 확대’를 주문했다. 2위와의 기술 격차를 더 크게 벌려 압도적 1위를 차지하자는 주문이었다. 그해 삼성은 ‘갤럭시S’로 벌어들인 영업이익인 29조원의 절반이 넘는 금액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투자에 집중 투입했다. 지금 누리는 ‘반도체 수퍼호황’의 황금기가 이때 뿌려진 투자의 결실이었다.
이같은 삼성 반도체의 기적은 그룹 총수의 과감한 결단과 계열사의 자율 경영이 조화를 이루며 달성됐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반도체 수요 폭발을 예견한 최적의 투자였다. 하지만 지금의 삼성은 10년 후 또 다른 기적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게 전반적인 평가다.
삼성그룹 한 관계자는 “수십조원에 달하는 과감한 의사결정은 최고경영자(CEO) 선에서 나올 수 없다. 그룹 총수가 미래 생존을 담보할 먹거리를 고민하고 결단을 내리는 건 주지의 사실”이라며 “총수 부재로 과감한 도전을 하지 않는 기업에 과연 미래가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실제 삼성전자의 투자 시계는 멈춰 있다. 반도체 사업을 유지하기 위한 방어적 시설 투자에 그치고 있다.
삼성전자는 작년 11월 미국의 자동차 전자장비(전장) 전문기업 ‘하만’을 9조원에 인수한 후 올 들어서는 대형 인수ㆍ합병(M&A) 발표가 단 한 건도 없다. 미래 먹거리 발굴에 사활을 걸었던 삼성전자의 공격적 성향은 이 부회장 구속 이후 소극적 방어로 변모한 상태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은 그룹 총수의 과감한 선행 투자와 수년 후 이를 실적으로 증명받아 온 성공의 경험치를 가진 조직”이라며 “총수 공백이 10년 이상 장기화할 경우 삼성만이 가진 성공 DNA 자체가 사라지고, 이는 기업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증권시장을 통해 이뤄진 주주간의 ‘사적자치’의 결과물인데 이를 정경유착으로 몰고가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글로벌기업인 삼성의 경영인을 여론재판식으로 단죄한다면 삼성 입장에서는 차라리 한국을 떠나는 것을 고민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흠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은 “이런 식으로 처벌하면 앞으로 정부나 사회에 공헌하려는 대기업은 전부 사라질 것”이라며 “삼성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브랜드 기업인 만큼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순식ㆍ홍태화 기자/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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