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배문숙 기자]이른바 ‘최순실 게이트’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한국 경제의 시름이 커지고 있다. 특히 후폭풍이 길어질 경우 예산안 법정 처리시한을 넘길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예산안 처리 지연으로 연초부터 정부 돈이 풀리지 않으면 우리 경제가 새해 벽두부터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순실에 묶인 국회…예산안 심사·처리에 ‘경고등’=지난 26일부터 사흘간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는 이른바 ‘최순실 청문회’로 변질돼 운영됐다. 황교안 국무총리와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각 부처 장관이 출석해 자리를 지켰지만 최순실 의혹 공방만 진행됐다. 2017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내용은 물론 거시경제 및 재정 여건에 관한 질의는 실종됐다. 400조원에 달하는 ‘슈퍼예산’이 편성됐지만 벌써부터 졸속심사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국회는 오는 31일부터 경제부처와 비경제부처 부별 심사, 소위원회 활동과 의결을 거쳐 내달 30일 전체회의에서 내년도 예산안을 의결할 계획이다.
문제는 최순실 게이트 파문이 언제,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지 예측조차 힘들다는 점이다. 예결위 종합정책질의에 이어 부별 심사 등으로 최순실 파문이 이어지면 최악의 경우 예산안 처리가 법정 시한을 넘길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헌법상 예산안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인 12월 2일까지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국회선진화법 도입으로 최근 2년간 예산안은 법정 시한 내 처리됐지만 올해는 이를 장담하기 쉽지 않다. 예산안이 12월 2일을 넘기면 그만큼 실제 집행이 늦어진다.
정부 관계자는 “예산안을 공고하고 자금배정 계획을 확정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고려해 헌법에서 매년 12월 2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토록 한 것”이라며 “이를 넘기면 언제 처리될지 기약조차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예산안 처리가 지연되면 당장 1월부터 집행돼야 할 예산의 발이 묶이게 된다.
산업 구조조정 등으로 일자리 사정이 악화되고 지역 경기마저 침체된 상황에서 나랏돈이 풀리지 않으면 우리 경제의 하방 리스크는 더 커지게 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경제 성장률은 2.6%로 이중 재정기여도가 3분의 1가량인 0.8%포인트(p)를 차지했다. 저성장 기조 속에서 재정이 그나마 버팀목 역할을 하는 셈이다.
지방 경기를 둘러싼 불확실성도 확대된다.
지방자치법 등에 따라 지방의회는 회계연도 개시 15일 전인 12월 15일까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하는데 국회 예산안 의결이 늦춰지면 지방재정 편성도 덩달아 지연될수밖에 없다.
기재부 관계자는 “예결위가 파행을 겪는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종합정책질의에서 예산안과 관련한 질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아직 부별 심사와 소위 등이 남아있는 만큼 예산안이 정상적인 심사를 거쳐 법정 시한 내 처리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동력 떨어진 관료사회…내년 정책·경기전망도 차질 우려=비단 예산안 처리에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대내외 악재가 산재한 상황에서 최순실이라는 대형 돌발 이슈까지 덮치면서 관가에는 그나마 남아있는 활력마저 급격하게 떨어지는 분위기다.
당장 기획재정부는 12월 중순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 발표를 앞두고 있어 지금의정국이 더욱 부담스럽다.
내년 경제정책 방향을 내놓으려면 청와대가 기본적인 틀을 제시해야 하는데 현재로써는 이런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정의 컨트롤타워가 부재하다 보니 경제정책 방향 수립을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부처 간 정책 조율도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경제정책 실효성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현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정책을 시행하기 위한 정무적인 동력이 사실상 바닥까지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경제를 견인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일자리 대책, 서비스 경제 발전 전략 등의시행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불거진 의혹들이 깨끗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대통령의 사람들’로 구성된 현 내각과 정책에 대한 불신이 계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해운 산업 구조조정, 가계부채 문제 등 국내현안뿐만 아니라 미국의 금리인상,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협상 등 신속하게 대응해야 하는 대외변수까지 산재한 점도 정부로서는 큰 부담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년 경제 성장률 목표치를 당초 3%에서 낮춰잡을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정부는 최근 어수선한 정국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공식적인 반응은 자제하고있다.
경제부처의 한 과장급 공무원은 “일단 내년 경제정책 방향 등 예정된 것들은 열심히 준비하고 있고 계획대로 진행할 것”이라며 “아무런 변동사항도 없다”고 강조했다.
다른 국장급 공무원은 “사실 최순실 이슈 등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다들 어떻게 진행될지 관심이 많지만 일절 언급을 꺼리고 있다”며 어수선한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일부 부처는 내년 초 고위공무원 인사 문제가 걸려있어 청와대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최근 사태가 터지면서 더 어수선해졌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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