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주가가 한참 오른 뒤에 ‘강력매수’가 나오면 개미(개인투자자)들은 상투만 잡으라는 소리인가요”, “리포트를 봐도 외국인과 기관의 매물받이가 되는 신세, 이제는 지겹습니다”
애널리스트가 작성한 증권 리포트에 당한 개미들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극에 달하고 있다.
투자의 ‘나침반’ 역할을 기대하고 리포트를 열었던 개미들은 ‘뒷북’, ‘아니면 말고’ 식의 내용에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더러는 이를 참고해 투자에 나섰다가 손실을 보게 된 경우도 있어 “리포트에 발목을 잡혔다”는 말도 나오는 상황이다.
▶‘갤노7’ 단종인데, 삼성전자 사라?= 최근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7’(이하 갤노트7)의 단종을 선언하기까지 목표주가가 롤러코스터를 탄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여기엔 기존의 전망이 빗나가면서 이를 만회하기 위한 증권사의 ‘뒷북’이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달 초 ‘갤노트7’의 발화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다수 증권사는 삼성전자의 중장기 이익 성장성이 유효하다는 점을 들어 ‘매수’로 일관했다. 이후 삼성전자가 시장 예상치를 웃도는 3분기 잠정실적을 발표한 지난 7일, 10개 증권사는 목표주가로 평균 190만2500원을 제시했다. 지난 8월 말 평균 181만원에서 10만원 가까이 올린 수치다.
다음 거래일인 10일에도 ‘장밋빛 전망’을 바탕으로 한국투자증권, 유진투자증권 등은 기존 수치를 상향해 최고 목표가인 210만원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날 미국 통신사인 AT&T와 T모바일이 미국 내 ‘갤노트7’ 판매를 중단하기로 하면서 주가는 1%대 하락했다. 다음날엔 삼성전자가 ‘갤노트7’ 단종을 선언하면서 주가는 하루 만에 8.04% 빠졌다.
앞서 판매사의 교환중단 소식은 언론의 발표가 있기 전부터 곳곳에서 감지됐다. 삼성전자 측이 교환해준 제품에서도 제품 결합이 나타났다는 말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속속 전해졌다. 이 같은 소식에 주목한 애널리스트는 찾기 어려웠다. 결국, 목표주가를 믿고 삼성전자를 사들인 투자자만 큰 손실을 보게 된 것이다.
이윽고 삼성전자가 3분기 영업이익 잠정치를 7조8000억원에서 5조2000억원으로 정정하자 증권사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베스트투자증권(200만원→190만원), IBK투자증권(190만원→180만원), 신한금융투자(200만원→185만원), 하이투자증권(200만원→190만원) 등은 일제히 목표주가를 내려 잡았다.
주가 전망이 ‘오락가락’하자 애널리스트의 ‘뒷북’ 보고서를 원망하는 개미들의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홍수를 이뤘다.
한 투자자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장밋빛 전망을 내놓다가 일이 터지고 나서 말을 바꿔봐야 뒷북 아니냐”며 “투자 리포트는 전망을 담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투자자도 “매번 이렇다 보니 증권사 신뢰가 땅에 떨어지는 것”이라며 “투자자가 손실을 본 뒤에야 슬그머니 올리는 리포트는 면피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개인은 외국인이나 기관과 비교해 정보 취득과 분석능력에 취약하다. 애널리스트는 이들 사이에서 정보비대칭을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같은 ‘뒷북’ 리포트는 투자 참고자료로서의 가치가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보다 앞서 ‘한미약품 사태’ 때도 개미들은 증권사의 ‘뒷북‘에 고초를 치른 바 있다.
▶한미약품, 한진해운 사태…줄줄이 ‘뒷북’= 한미약품은 지난달 29일 장 마감 후 미국 제넨텍과 경구용 표적항암제(HM95573)에 대한 1조원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다음날 오전 9시30분 베링거인겔하임이 표적항암신약 올무니팁 권리를 한미약품으로 반환하기로 했다는 공시를 냈다.
리스크를 따지지 않고 호재성 정보에 주목해 목표주가를 올렸던 주요 증권사는 악재성 공시에 우수수 목표주가를 내렸다.
하루 만에 목표주가가 10~30%대 쪼그라들자 투자자들도 패닉에 빠졌다. 제약ㆍ바이오 분야에 대한 정보를 전문가에게 의존했던 개미들은 계약 파기나 임상 실패 가능성에 대한 경고 없이 칭찬 일색인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가 낭패를 보게 됐다.
이 외에도 조선ㆍ해운업 구조조정에 대한 진단, 실적 전망 등에서도 번번이 나타난 ‘뒷북’ 사례에 골탕을 먹은 경험을 토로하는 개미들이 끊이질 않고 있다.
▶기승전 ‘매수’…매도 리포트 실종사태=각종 문제를 떠안은 기업이 속출하는데도 불구, ‘매도’를 외치는 리포트는 눈 씻고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투자자가 덜컥 매수를 했다가 떨어지는 주가에 당황할 때쯤에는 ‘아니면 말고’ 식으로 대응하는 격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이달 13일까지 이 업체 등록된 증권사 리포트 1만8676건 중 ‘매도’ 의견이 담긴 리포트는 단 1건(0.01%)에 불과했다.
그나마 ‘비중축소’를 외치는 경우도 22건(0.12%)에 그쳤다.
10건 중 8건(80.12%)는 ‘매수’를 외치는 리포트였다. 투자 의견이 모호한 경우에는 ‘투자의견 없음’(10.99%) 또는 ‘중립’(8.18%)을 내세웠다.
대다수 사례에서는 암울한 실적 전망이나 악재를 두고서도 “다음 분기에는 개선의 여지가 있다”, “장기적인 투자처로 적합하다”는 논리로 투자자를 붙들어 맸다.
이에 대해 애널리스트들은 영업전선에 내몰리는 풍토로 인해 고충이 많다고 항변한다. 증권사는 기본적으로 연기금이나 자산운용사 등 기관 자금을 유치해야 먹고산다. 리포트를 작성할 때도 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투자금을 유치해야 하는 법인영업 담당자나 기업 담당자를 만나 정보를 하나라도 더 들어야 하는 애널리스트의 현실을 고려할 때 ‘매도’를 외치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예기치 못한 악재의 경우에는 “마찬가지로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관련 징후조차 파악하지 않았거나, 그에 따른 부적절한 투자의견을 제시했다는 비판은 쉽사리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증권사가 개인을 외면하고, 현재와 같은 리포트 발간 행태를 고수한다면 시장 전체가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시장이 신뢰를 잃게 되면 결국 그 부메랑은 증권사들에 돌아가게 된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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